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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E Oct 05. 2020

뮌헨은 야만의 도시

하지만 누구보다 야만스러웠던 건 나...

2019.10.05. 뮌헨으로 가는 길

    방학 기간 동안 교환학생들에게 열린 독일어 집중수업 시간이 끝나고, 가을학기 개강 전까지 남은 한 주는 교환학생들에게 허락된 최적의 여행 기간이었다. 따라서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년 전, 독일어 시험이 끝난 다음 날 저녁, 나는 기차를 타고 뮌헨으로 향하고 있었다.


    처음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교환교가 있는 밤베르크까지 플릭스버스를 이용해보긴 했지만, 여행이라 할 만한 것은 처음이었다. 거기에 그때의 버스표는 같은 학교에서 출발한 다른 친구가 끊어 준 거였으니, 모든 게 영 낯설고 무섭고.



    유럽에서 기차를 타는 것 역시 처음이라 길을 헤매거나 차를 놓칠까 봐 긴장했지만 막상 역에 도착해보니 별 것 없었다. DB 앱으로 미리 바이에른 티켓(*바이에른 대부분의 도시 및 몇몇 인접한 오스트리아와 체코 도시까지 연결하는 지역 열차 및, 독일 도시의 경우 시내 교통까지도 종일 무제한 이용 가능, 당시 1인 24.95유로)을 구매해둔 후 백팩을 하나 매고 들어가서 화면에 뜨는 플랫폼으로 이동. 환승지는 뉘른베르크. 거기서도 DB 앱에 뜨는 플랫폼으로 이동해 환승. 뮌헨 중앙역에 도착해서 만날 친구 Eva가 말해준 대로 트램을 타고(*마찬가지로 바이에른 티켓 이용) 뮌헨 북쪽 주거지역으로 이동하면 끝.


18년 가을의 Eva, 이화동 벽화마을에서.

    Eva는 이전 해 가을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왔던 독일인으로, 내 첫 언어교환 친구였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남자애처럼 짧게 친 머리를 하고 복학해서 늘 독강만 듣고 다니느라 우울했고, Eva는 외지에서 말도 안 통하는데 늘 신기해하는 시선을 받고 산다는 것이 외로워 우울했다. 서로에게 우울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일은 잘 없었지만, 그래도 굳이 따지자면 우리는 언어교환 파트너라기보다는 우울 메이트였다 (애초에 Eva는 한국어를 배울 의욕이 없었으므로 우리는 늘 영어로만 대화했었다). 나는 버벅거리는 영어로 이어지는 한국에 대한 험담을 끝까지 인내심 있게 들어주던 Eva를 많이 좋아했었는데, 망설이다가 연락해보니 Eva는 마침 옥토버페스트 기간이니 그의 집에 머물다가 그의 남자친구 및 그의 친구들과 다같이 가면 좋겠다고 말해주었다.    



    축제 주간이라선지 유난히도 시끄럽고, 바닥은 오줌인지 맥주인지 모를 액체로 흥건하며, 구석진 데마다 깨진 맥주병이 처량하게 나뒹구는 밤의 뮌헨.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날 기다리다가 폭 안아준 Eva는 수척해진 얼굴이었다. 들어보니 석사 논문을 쓰고 있으며(Eva는 뮌헨공대에서 나노어쩌고공학... 뭐 그런 걸 전공하는 대학원생이었다), 며칠 전부터 아파 사나흘 앓다 일어난 참이라고. 그는 같은 대학의 학생 몇과 플랫을 공유하고 있었는데 아늑하고 따뜻한 곳이었다. 현관 구분이 없는 플랫 입구에 워커를 벗어두자 Eva는 자신의 신발과 나의 것을 대어 발 크기를 비교하며 나를 귀여워했다 (그는 독일 여자 치고도 키가 크고,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조그만 소년 같은 모양새였으므로 늘 나를 그렇게 대했다). 그가 내주는 대로 루이보스 티를 마시고 있자니 웰컴 선물이라며 프레첼 모양 귀걸이를 건네주었다.


웰컴 프레젠트와 Eva의 방


    도란도란 안부를 나누고 있자니 루이지라는 이름의 플랫메이트가 다가와 몇 마디 말을 붙였다. 내가 루이지에게 June이라는 이름으로 날 소개하자, Eva는 내게 영어 이름이 생겨 다행이라며, 너의 이름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몰라 늘 난감했었다고 말했다. 너무 안도하길래 순간 띠용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옥토버페스트 기간의 뮌헨(숙소를 구하기 거의 불가능하다고 한다)에 나를 재워준 것도 고맙고 여태껏 쭉 좋아하는 친구였으니 만큼 그냥 어색하게 웃으며 넘겼다. 하하... 그럴 수 있지....... 내 이름 발음하기 어렵지...... 루이지는 다음 날 갈 옥토버페스트에 자신이 10대 때 입던 던들Dirndl(*독일-오스트리아 전통의상. 옥토버페스트에 참여할 때 입는다.)을 빌려주겠다고 했다. 프레첼 귀걸이에 던들까지. 이로써 옥토버페스트룩을 모두 수집했다.


    Eva의 플랫메이트 한 명이 방을 비운 동안 루이지의 남동생과 그 친구들이 그 방을 쓰고 있다는데,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그 남동생은 내가 처음 들어왔을 때는 베란다에서 친구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곱슬머리에 건들건들해 보이는 그는 나와 악수하고 통성명을 하면서도 동양인인 나를 매우 신기해 했다. 나의 존재 자체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동양인 여자(인 내)가 그의 사적인 공간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이 너무 새로운 듯했다. 그는 방에 들어가나 싶더니 갑자기 유카타 비슷한 옷을 걸치고 나와서는 나한테 자랑하듯 보여줬다. 네덜란드에서 샀다고. 왜 네덜란드에서 일본 옷을 샀냐고 물으니까 자기도 모르겠다고. (띠용222)


    플랫 화장실은 유럽의 많은 집이 그러하듯 욕실과 분리되어 있었는데, 변기와 마주보는 문에는 천장의 위치에서 화장실을 찍은 컨셉의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캡쳐샷 같이 처리된 3x6개의 네모난 사진들은 하나같이 화장실 좁은 칸 내에서의 키스, 섹스, 구강성교 등의 소재를 담고 있었다. Eva는 화장실 위치를 보여주다가 포스터를 흘깃 보고는, 너는 좀 불편할 수 있겠지만, 그냥 재밌는 사진들이니 신경 쓰지 말라고 말했다. 그가 한국에 와 있을 때에도 한국에서는 몰카 사건이 한창 화두였는데. 나도 몇 번 그에게 한국의 페미니즘 웨이브와 스파이캠 문제를 설명한 적 있는데. 새삼 그때 그는 한국에서 지내면서도 그런 걸 하나도 실감하지 못했구나 싶었다. 그러니까, 그래서 독일에서 화장실 몰카는 현실성 없이 웃기기만 한 농담이 될 수 있는 걸까.


    간단히 씻고 나선 Eva의 방에 그의 남친이 놀러 올 때 종종 쓴다는 여분의 매트리스를 깔고 누워 Eva와 대화를 나누었다. 독일인들은 왜 그렇게까지 카드 쓰는 걸 싫어하냐고 물어봤더니, 개인정보를 너무도 중요시하기 때문이라고. 신용카드, 체크카드, 교통카드 같은 걸 이용한 결과로 자신이 어디에 갔고 무엇을 샀는지 기록이 남는다는 게 싫다고. (그래서 교통카드도 없다. 주마다 다르겠지만 바이에른에선 시내교통 무료 이용 대상자면 걍 신분증을 보여주면서 타는 게 전부고, 검사도 설렁설렁이라 무임승차도 충분히 가능하다.) 내 개인정보를 공공재 취급하는 평범한 한국인인 나로서는 무슨 우발적 살인 저지르고 도망가는 사람도 아니고 뭘 그렇게까지 신경 써...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그들의 눈엔 내가 조지 오웰의 소설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보이겠지. 팁 문화는 Eva도 동의하는 비합리의 극치. 그런 이야기들을 나누다가 사실 나도 독일에 왔더니 좀 외로운 것 같다고, 작년 너의 마음을 알 것 같다고 말하고 싶어졌지만 말하지 않았다.






    낯선 잠자리에 적응이 안 되어 눈을 감은 채 반쯤은 잠들고 반쯤은 잠에서 깬 상태로 5시간을 흘려보냈다. 아침 5시 반, Eva가 샤워하고 아침을 만드는 동안 나도 후다닥 샤워를 끝마치고, 프레첼과 빵 몇 종류에 버터와 주키니페스토와 잼과 누텔라 등등을 대충 발라 아침을 먹고, 던들을 입고 화장을 마치고 부랴부랴 집을 나섰다. 행선지는 Eva 남친 치아크(Tiark)가 사는 아파트. 좀 늦은 것 같다며 서두르기에 나도 덩달아 마음이 급해졌는데, 막상 그의 방에 들어가서 보니 치아크와 그 친구는 아직 준비가 덜 된 상태였다. 어영부영 그들과 인사를 나누고 옥토버페스트가 열리는 Theresienwiese로 걸었다. 아침을 안 먹어서 배고프다던 남자들은 길가에 열린 가게에서 맥주 한 병과 프레첼을 사서 걸으며 후딱 해치웠다.


    조금 뒤 테레지엔비제 앞으로 가자 개장하기까지 아직 한 시간 가량 남은 상태였음에도 입장 대기 줄이 꽤나 길었다. 치아크의 남동생 칠(Till이라고 썼던 것 같다. 그래서 발음이 칠이었는지 틸이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형제의 이름은 독일인들이 느끼기에도 매우 특이한 이름인 듯했다)과 만났다. 키는 껑충했고, 금발 곱슬머리에 연하늘색 셔츠. 남들처럼 전통복인 가죽바지는 입지 않았지만(그런 바지는 개인적으로 좀 보기 흉하다고 생각한다) 포인트로 20세기의 학생처럼 스카프를 매고 있었다. 왜 이런 것까지 기억하냐면 걔가 내 또래였는데 웃는 얼굴이 넘 귀여웠어서... 곧 그들의 친구라는 (Eva도 처음 보는) 십수 명의 친구들과 합류했다.


    목적지는 하커-프쇼어(Hacker-Pschorr) 양조장의 부스. 뮌헨 옥토버페스트 6개의 대형 천막 중 하나로, 우리가 위치한 남쪽 입구(가 맞는지 위치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에서 약 10분 거리에 있었다. 그들의 목표는 경쟁이 치열한 그 천막에 무사히 테이블을 잡는 것. 지도를 보며 상세하게 작전계획을 짰다: 문이 열리자마자 냅다 뛰어라. 이 천막과 이 천막을 지나 꺾으면 하커다. 끝. 거기서 문이 열릴 때까지 한 시간쯤 누군가 가져온 민트향 술을 뚜껑에 따라 한 잔씩 나눠 마시고, 도란도란 수다를 떨었다. 내 취향도 아닌 분홍색 던들을 입고 잘 모르는 인간들 사이에 갇힌 나(INFP)는 좀 움츠러들어 있었는데 하필 비도 드문드문 내리고 쌀쌀한 날씨라 처량하고 뻘쭘했다.


뒤에 있는 게 평범한 독일 남자 손이니 얼마나 큰지 알겠지

    9시 정각, 문이 열렸다. 줄의 중간쯤에 서있던 우리들은 뒤에서 밀려드는 사람들에 짓눌리다가 문이 열리자마자 대뜸 달리기를 시작했다. 아직 사람들 얼굴도 눈에 익지 않아서 그냥 우리 무리에 있었던 것만 같은 사람들을 따라 헥헥거리며 한참을 전력으로 달리다 보니 텐트가 나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상당히 비어 있던 테이블 중 적당한 걸 골라잡고 뒤늦게, 혹은 먼저 온 일행들과 합류해서 맥주를 주문했다. 옥토버페스트의 맥주는 기본 12유로를 웃도는 사악한 가격이지만, 대신 거대한 잔에 1리터를 가득 담아서 준다. Eva가 말하기로는 옥토버페스트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매우 고되기 때문에 보통 팁을 후하게 주는 편이라고 한다.


10시가 되자 무대에 기타와 드럼을 연주하는 할아버지들이 등장했다


    10시쯤 되자 어디선가 음악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10시 반쯤 되어선 흥이 나서라기보다는 흥을 내고 싶은 느낌으로 근처에서 누군가 한 명씩 테이블에 올라가 춤을 추다가 바로 경비에게 끌려 내려왔다. 조금 더 지나니 연주 대신 스피커에서 독일에서 지내면서 많이 들은 제목 모를 오래된 팝송이 나왔는데, Woo! Ha! Woo! Ha! Would you be my girl~ 하는 후렴구를 모두가 떼창하는 건 몇 번을 들어도 신난다. 약간 구석기시대 사람들이 사냥 나서기 전에 기합 넣는 것 같고. 주위는 매우 시끄러워서 사람들과 대화를 하려면 아주 큰 소리로 고함을 치는 수밖에 없었다. 내 옆에는 치아크의 친구의 친구가 얼마 전에 우연히 만났다는 한국계 영국인 형제가 앉았는데 그들이 서툴게 구사하는 한국어로 어색하게 몇 마디 얘기하다 보니 할 말이 떨어졌다.


    12시쯤 되어 맥주를 한 잔 더 주문했다. 화장실은 줄이 무척 길었는데, 한 번 들어가려면 한 1시간 정도는 줄을 서 있어야 했다. 갔다가 돌아와보니 Eva가 나를 위해서 고기완자 비슷한 게 든 맑은 스프를 주문해주었다. 매우 짰다. 하지만 따끈한 게 절실하긴 했었기에 무슨 맛이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Salty! Salty! 고함을 지르며 열심히 먹었다. 옆에서 치아크의 친구가 하얗고 길쭉하고 뜨거우며 껍질을 벗겨 먹어야 하는 바이스부어스트Weissburst를 시켜먹던데 독일에서 지내며 너무 많은 고기와 너무 많은 소시지를 보다 보니 슬슬 고기가 징그러워 보이던 나는 시도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면 주위는 어느 새 난장판. 술에 취한 독일 사람들의 주변에선 난폭한 에너지가 춤추는 것 같다. 과격하고 위험하다. 나는 독일에서 만난 내 친구들을 사랑하지만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 에너지에 젠더를 따지자면 두말할 것 없이 남성적인 에너지다. 그 발산이 대개 폭력적이란 면에서. 독일인들, 특히 독일 남자들은 술에 취하면 붉어진 얼굴로 고함을 지르고 폭력을 휘두르고 병을 부수고 담배를 뻑뻑 피우고 인사불성으로 날뛴다 (다행히 천막 내에선 금연이며 조금만 눈에 띄는 짓을 해도 경비원이 사납게 제지한다). 억센 독일어도 거친 분위기를 형성하는데 한몫한다. 끊임없이 고함지르고 춤추고 떠드는 사람의 벽 속에서 어울리려니 술기운이 필요해서 나도 연신 맥주만 들이켰다.


    그 후의 기억은 흐릿한데, 나 역시 인사불성으로 취했기 때문인 것 같다. 아니 주위에 보이던 모든 사람들보다 내가 더 취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천막 내 화장실 변기를 부여잡고 열심히 토하고 있었고, 한 번 줄을 서면 1시간을 기다려야 하니 나오자마자 다시 줄을 서서 들어가 또 토를 했다 (그럴 거면 대체 왜 나왔던 거지). 나와서 인파를 뚫고 돌고 돌아 겨우 다시 테이블로 돌아가니 틸이 대체 어디에 갔었냐며 나를 붙들었다. 치아크와 Eva가 나를 찾아서 벌써 2시간째 돌아다니고 있다고. 내가 폰도 두고 사라졌었다면서. Eva는 나를 보자 안도하면서 많이 걱정했었다고, 네가 어디 위험한 일 당한 건 아닐까 싶어서 경찰에 신고도 하려 했다고 (그러나 경찰들이 고작 한두 시간 사라진 일로는 신고를 받아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옥토버페스트에서 빠져나오니 시간은 어느덧 오후 여섯 시가 가까운 시각.


    미안하다고 연신 중얼거리며 Eva의 손을 붙들고 다시 플랫으로 돌아온 나는 화장도 지우지 않고서 아기처럼 14시간을 꼬박 잠들어 있었다. 내 인생을 통틀어도 그렇게 오래 잠을 잔 적이 거의 없는데, 마신 술의 양을 떠나 정말 피곤하긴 했던 모양이다. 아침 8시. 나같은 거랑 친구 해 주는 사람이 대체 어디에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참회하며 매트리스 위를 뒹굴거렸다. 눈을 뜬 Eva한테 배시시 웃으며 또 미안하다고 했더니 Eva는 다시금 아니라고, 네가 무사했어서 다행이라고 따뜻하게 말해주었다. 얘는 정말... 천사인가? 내 생애 끼칠 수 있는 민폐란 민폐는 그 전날 다 끼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후딱 세수만 하고 둘이 아침 산책을 나섰다. 독일 하늘답게 구름은 두텁게 끼었지만 공기는 유난히도 깨끗했고 가을이 훌쩍 다가온 것처럼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밤새 비가 내린 탓에 도보는 까맣게 젖어 있었다. Eva가 자주 간다는 빵집에 들러 아침으로 먹을 빵과 케익을 몇 개 골랐는데, 내가 사겠다고 억지를 부리며 폰 케이스 뒷면을 열었더니 어라... 카드가 사라져 있었다. N26 마스터카드는 물론이고 신분 증빙용으로 들고 갔던 국제학생증도 없다. 내가 당황하는 사이에 Eva는 자신의 돈으로 결제를 마쳤고... 망연해진 나를 데리고 다시 플랫으로 돌아왔다.


    아침을 먹으며 내 카드를 찾아 옷가지를 뒤적였지만 점점 옥토버페스트 천막 어딘가에 흘리고 왔다는 사실만 분명해질 뿐이었다. 그날 당장 잘츠부르크와 할슈타트로의 여행이 예정되어 있는 상황이었는데, 그마저 취소하고 돌아가야 할 판. Eva가 현금을 좀 빌려주겠다고 하는데, 더이상 폐를 끼칠 수 없어서 우선은 아니라고 손을 내저었다. 다행히도 아침을 해치우고 가방을 뒤져보니 고대 학생증 카드가 나왔다. 아 사랑해요 고대! 그 날만큼 고대 마크가 반가웠던 적이 없었다.


    Eva의 배웅을 받으며 플랫을 나왔다. 그날 아침 혹시 몰라 취소해뒀던 플릭스 버스 표를 재예매. 독일의 거의 모든 대중교통은 빨리 예매할수록 가격이 저렴해지는 만큼 티켓은 그사이 가격이 꽤 올라 있었다. 그래서 샀던 티켓을 또 사느라 허비한 돈이 한화로 따지면 한 만 원쯤 되려나. 물론 카드 재발급 비용은 더 나왔다. 역시 멍청하면 몸과 지갑이 고생한다. 멍청이 옆의 착한 친구도...


    옥토버페스트의 맥주는 시중의 맥주보다도 도수가 살짝 높은 편(보통 7도 내외. 독일의 일반 맥주는 대개 5도 내외)이라는 사실은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는데, 아마 알았더라도 나는 똑같이 멍청하게 쉼 없이 벌컥벌컥 도수 높은 맥주를 들이키고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결론: 밖에서 술을 마실 땐 좀 자중하자. 외국에선 특히.


    




    물론 멍청이의 여행은 뮌헨에서 끝나는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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