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는 분들이 항공사의 운항승무원(이하 조종사)와 객실승무원(이하 승무원)간에 알콩달콩 이야기도 많이 하고, 식사도 같이 하고, 해외에서는 같이 투어도 하고 밤에는 호텔 라운지에서 술도 같이 마시고... 막 그러다가 로맨스가 벌어진다고 생각하십니다.
저한테도 그런 거 물어보시고, 농반 진담반으로 "승무원 소개해달라"고 하시는 분들도 심심찮게 있습니다.
주로 영화나 드라마에서 조종사들과 승무원들이 연애도 많이 하고 그렇고 그런 일도 많이 하니까 real world에서도 그런 가보다 하고 오해를 많이 하십니다.
그런데 의외로 그런 일 별로 없습니다. 아니 거의 없다시피 드뭅니다.
일단 같이 부딪칠 일이 없습니다. 같은 비행기를 1시간~10여시간 타고, 같은 호텔에서 몇일을 묵고 하는데 부딪칠 일이 없다?
1.조종사/승무원 따로 브리핑하고 비행기로 가기 전 약 5분간의 조종사/승무원 합동 브리핑 때 만납니다. 비행시간, 기상상황, 비상시 절차 등만 이야기하고 비행기로 가기도 바쁩니다.
2. 비행기에 가면 서로 비행을 위해 준비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에 "음료수 뭐 마실건가? 식사는 언제 제공하면 되는가?"에 답하고, 자기 할 일 하기도 바쁩니다.
3. 준비가 끝나면 사무장님이 들어와서 보안점검표 서명받고, 조종실 문을 잠그면 그 다음부터는 정해진 절차대로 하지 않으면 문을 안열어주는 등 조종실 출입이 까다로워집니다.
4. 비행중에는 객실내 특이사항이 없거나 손님 관련 지상의 통제본부에 요청할 일이 없다면, "밥들어간다, 음료수는 뭐가 마시고 싶냐?" "손님들이 화장실 가고 싶어한다. 좌석벨트 사인은 언제 끌건가?"
조종사는 "조금 있다가부터 많이 흔들릴 거다. 서비스를 중단하고 다들 앉아라", "좌석벨트 사인은 켜둘테니 조심해서 서비스해라", "배고픈데 밥먹을 수 있냐?", "(졸리니까)커피 한잔만 달라" 정도 입니다.
대면하고 이야기할 상황이 아니고 인터폰으로 통화해야 하니 많은 이야기를 하기도 힘듭니다.
5. 착륙후에는 "객실 특이사항있었냐?" 없으면 "수고하셨다. 잘 들어가시라",
아니면 호텔에서 키 받은 후 "푹쉬고 갈 때 봅시다"라고 하고 헤어집니다.
이야기 할 일이 없습니다.
호텔 식당에서도 같이 식사안합니다. 같이 술마시는 건 더더욱 않습니다.
서로 내외하는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는
1. 운항승무원들도 랜덤으로 매칭이 되기 때문에 몇년만에 한번 만나기도 합니다. 심지어 같은 기종인데도 10년넘게 단 한번도 같이 비행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승무원들은 팀으로 1년씩 같이 비행하지만, 그 특정팀이 특정 조종사들과 같이 비행하지 않고 랜덤으로 매칭이 되니 서로 잘 알지 못합니다.
조종사와 승무원이 알아도 안면만 있거나 언제 한번 같이 비행을 한 것 같은데... 정도의 기억입니다. 그러니 공통적인 대화가 안됩니다.
2. 2500명의 개성이 다른 운항승무원과 7000명이 넘는 개성이 다른 객실 승무원이 있습니다.
랜덤으로 만나면서 상대방의 특성이나 성격을 모르다 보니 어떤 사람의 농담이나 칭찬이 어떤 사람에게는 분위기 파악을 못하는 대화이거나 성희롱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함부로 이야기를 하기 힘듭니다.
3. 2번과 마찬가지 이유, 그리고 동양권 여성 객실 승무원 유니폼의 특성상 장시간 쳐다보는 행동이 오해를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쳐다보는 것도 삼가하게 됩니다. 대화는 더더욱 안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있을 경우 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한국인의 정서상 같이 대화를 하는게 꺼려집니다.
4. 보안상의 이유로 손님이 탑승시작하기 직전부터 손님이 모두 하기하기 전까지 조종실 문을 잠그고 출입시에는 여러가지 절차를 거쳐서 출입하게 합니다. 조종사들이 조종실 밖으로 나가는 것은 교대하고 객실에서 쉴 때와 화장실 다녀올 때 뿐인데,
교대후 객실에서 쉴 때는 잠자기 바쁘고, 화장실 다녀올 때는 조종실에 조종사는 1명 밖에 없기 때문에 볼 일만 보고 들어갑니다.
객실승무원들도 손님들을 보살피거나 휴식하기 때문에 특별히 눈이 마주치지 않거나, 이벤트가 없는 한 대화도 잘 하지 않습니다.
5. 속으로는 몰라도 겉으로는 남들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고 눈치를 보고, 남들과 달리 튀는 것을 억압하고, 허울뿐이기는 하지만 유교적 윤리관이 남아 있는 나라여서, 직장내 연애와 미혼/기혼을 막론하고 자유로운 연애나 성생활에 대한 공감대가 없는 나라 사람들이고,
남의 이야기를 하기 좋아하기 때문에 서로 직종이 다른 경우 이야기를 하거나 어울리는 게 쉽지 않습니다.
6. 성에 대해 개방적이거나 일종의 레크리에이션이라고 생각하는 나라가 아니고 외형적인 엄격함과 도덕성을 강조하기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습니다.
7. 대부분의 조종사들은 부기장도 30대 중반이기 때문에 기혼자가 대부분입니다. 평균 이상의 외모를 가졌고,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남자들에게 인기가 높고 연애해보고 싶은 대상인 젊은 승무원들이 기혼자와 어울릴 일이 없습니다. 다늙은 기혼 조종사들 말고도 승무원들에게 대쉬하는 잘생기고 젊고 좋은 직장 다니거나 여유있는 싱글 총각들이 많습니다.
젊은 총각 조종사들과 미혼 승무원간은 간혹 썸씽이 벌어지고, 결혼도 종종 이루어지지만 비행 중에 수다를 떠는 경우는 못봤습니다. 아무래도 심술궂은 기장님과 사무장님 그리고 고참들 눈치가 보이기도 하고, 그렇게 이야기할 시간도 별로 없고, 남들 보는 눈도 따갑습니다.
미혼자간의 썸씽이나 연애는 주로 한국에 돌아온 후 비행이 없는 날 이루어지는 걸로 압니다.(실상은 제가 총각으로 있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릅...ㅠ.ㅠ)
다시 되돌아가서 그럼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왜 맨날 조종사하고 승무원하고 연애하고 데이트하고 그러냐고요?
아니! 대한민국 영화/드라마 한두번 보셨나요?
의학드라마는 병원에서 연애하는 거고,
법조드라마는 법원에서 연애하는 거고,
심지어 군대드라마도 군대에서 연애하는 게 주 내용인데 항공 드라마는 뭐가 다르겠습니까?
주인공들의 로맨스가 없으면 안되는데요. 더욱이 조종사나 승무원이나 튀는 직업이잖아요.
네? 미국 영화나 드라마는 안 그런다구요?
에헤~~ 덴젤 워싱턴이 주연한 "flight"나 70년대에 나온 "airport" 시리즈에서도 그렇게 연애하는 걸로 나오고요, 미드 "Pan Am"
심지어 의학 드라마인 "E.R"이나 "GREY's ANATOMY"에서도 동료간에 연애하잖아요.
그러니까 그런 오해를 하시는데 그런 일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일반적인 다른 직장보다 적어요.
물론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니까 직장내 연애가 단 1건도 없는 건 아니지만 일반적인 직장보다 훨씬 적습니다.
오죽하면 제가 이런 글을 다 올릴까요. ㅠ.ㅠ
덧) 사진마다 설명있습니다. 참고하세요.
내가 부기장 때 방영된 드라마인데도 구혜선 부기장 내가 기장이라면 가만 두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왕싸가지. 현실성 0.00000000001%. 터키 이스탄불 아타튀르크 공항 주기장에서 747 점보기가 그자리에서 바로 이륙하는 장면이 이 드라마의 백미.
1970년대 미국 여객기에서 발생하는 재난을 승무원들이 슬기롭게 극복하는 연작시리즈 영화 AIRPORT.
1970년작. 기종은 B-707
기장인 딘 마틴과 승무원과의 로맨스도 나옴.
거액의 생명보험을 들고 사제폭탄을 갖고 탄 남자 때문에 벌어지는 해프닝. 결국 우여곡절끝에 폭탄은 터지지만 안전하게 착륙
Airport 1975에는 B-747이 나옴.
덴젤 워싱턴 주연의 FLIGHT. 시작 부근에 객실 승무원과 뜨거운 밤을 마약과 술로 지새우고 나는 장면이 나옴.
아침에 덴젤 워싱턴은 술과 마약에 쩔어 누워있고 샤워하고 난 승무원이 옷입는 장면. 결국 덴젤 워싱턴은 이 일로 감옥감.
2011~2012년 항공산업의 절정기였던 1960~1970년대의 상징이었던 미국의 팬암 항공사가 배경인 미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