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승규 Feb 12. 2022

전쟁과 휴머니즘.

살아있는 생명을 죽여본 적이 있으십니까?


모기나 파리 같은 곤충 말고요.

하다 못해, 낚시터에서 잡은 물고기라도 손질해 보신 적 있으십니까?

토끼나 닭은 어떠신가요?


칼이 피부를 뚫고 들어가기 전의 저항과 갑자기 푹 들어가는 느낌.

손끝에 전해지는 경련과 뼈에 닿는 느낌과 우두둑거리며 부러지는 느낌과 소리.

내장을 들어낼 때의 비린내와 따뜻함.

털과 껍질을 벗겨낼 때의 혐오스러운 느낌.

생명의 기운을 잃어가는 초점을 잃은 눈.


어렸을 때 저는 죽은 생선도 만지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제가 공군에 들어가서 훈련을 받으면서 살아있는 닭, 토끼, 뱀 등을 칼이나 맨손으로 잡아 죽이고, 손질하고 먹는 경험을 반복하다 보니 생선 손질쯤은 그냥 하게 되더군요.


그렇다고 유쾌하고 즐겁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마지못해 하지요.

제가 하지 않으면 할 사람이 없으니까 합니다. 군인들이 전쟁터에서 사람을 죽이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혐오스러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인간의 전쟁 수행 양상은 점차적으로 소위 박애주의자들이 말하는 인류애적인 방법으로 발달해 왔다는 사실을 말하고자 함입니다.


냉병기 시대에는 전쟁터에서 살아남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일단, 전투라는 것이 적을 찌르고 베고 꿰뚫고 자르고 때려서 부러뜨려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투석기/화살/석궁/노/창/칼/철퇴/끓는 물과 기름/불/돌/몽둥이 등 모든 전투 무기의 사용방법은 현대에 사는 우리가 가축이나 생선을 죽이는 방법과 그리 다르지 않았습니다.


죽어가는 사람들은 아주 극심한 고통을 맛보아야만 했습니다.

영화에서 나오듯 단번에 목이 잘리거나 팔이 잘리는 게 아니라, 갈라진 복부에서 삐져나온 내장과 오물을 자기 손으로 움켜쥐고 괴로워하거나 반쯤 잘려 덜렁거리는 자신의 팔다리, 목을 움켜쥐고 버둥거리면서 비명을 지르다 죽거나 하는 게 다반사였습니다.

전투현장에서 즉사하지 않더라도 과다출혈이나 쇼크, 또는 감염에 의한 패혈증 등으로 서서히 고통스럽게 죽어야 했습니다.


다행히 승자 편에 섰더라도 부상자들은 발전하지 못한 의학 때문에 팔다리를 절단하거나 장애를 입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었습니다. 그마저 살아남는 것은 열 명 중 한두 명에 지나지 않았죠.

그때는 살아남는 자들이 드물다 보니 전쟁터에서 휴머니즘 따위는 거론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승자 측의 용맹과 전투 결과 전리품과 노예 등이 화제였을 뿐이죠.

정말 말 그대로 죽은 자는 말이 없었습니다.


그나마 화약과 총포가 발명되면서부터 전투는 휴머니즘적이 되어 갔습니다.

근육대 근육이 부딪치고, 서로의 근력에 의지해 싸우는 게 아니라, 과학의 발전에 따른 무기의 위력에 따라 원거리에서 싸우는 게 가능해졌고, 우리 편은 다치지 않으면서 적을 살상하는 게 가능해졌고, 그만큼 전투의 승패에 따른 사상자의 교환비는 극적으로 커져갔습니다.

마찬가지로 군진 응급 의학도 발전해 갔습니다.

현대의 응급의학과 외과, 감염내과 등은 전쟁의 피를 통해 발전했습니다.

크리미아 전쟁과 미국 남북전쟁을 통해 외과 수술은 비약적으로 발전을 했고,

19세기 말 20세기 초 미생물학의 발전과 감염 연구, 살균제의 발명,

그리고 2차 대전중의 수많은 인체실험과 실제 임상 경험, 그리고 페니실린으로 상징되는 항생제의 발달.


결정적으로 기계과학의 발달로 전장에서 병원까지의 신속한 후송을 가능하게 해 준 자동차/항공기/선박 기술의 발달은 과거라면 전장에서 그냥 죽었을 수많은 거의 대부분의 부상자들을 살려냈고, 심지어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다시 완쾌되어 전장으로 되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반면에 이렇게 전쟁터에서 큰 부상을 입고, 마음이나 몸에 큰 상처를 입고 고향으로 돌아온 상이용사들을 보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후방의 시민들은 전쟁이 얼마나 잔인한 것인지를 직접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1차 대전 말기의 비행선을 이용한 후방 전략 폭격과 2차 대전 초기부터 실시된 적의 전쟁수행능력 자체를 말살하기 위한 전략 폭격과 통상로 봉쇄를 통한 총력전을 수행해서 시민들은 전쟁의 참상을 몸으로 직접 느끼게 된 것이죠.


실제로 전쟁은 휴머니즘적으로 전쟁터에서의 사상자 교환비를 극적으로 만들어가면서 살아남는 사람이 많아졌는데 말이죠.


다만, 후방의 민간인 피해가 극적으로 늘어났을 뿐입니다.


그러면서 무기의 위력을 민간인들이 직접 체험한 겁니다.


유산탄이나 소이탄, 네이팜탄은 핵무기보다 덜 고통스러울까요?

신체 내에 박히면 갈라지는 덤덤탄은 핵무기보다 더 인도주의적인 건가요?


이런 질문을 던져 봅니다.

작가의 이전글 나의 장례식에 대한 소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