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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규 Jan 05. 2023

대한민국은 2차대전의 승전국이 될 수 있었을까?

2019년 1월 5일 페이스북 포스팅.

요즘 점선 아래와 같은 글이 돌아 다닌다.


1945년 8월 15일 기준 광복군 총원 354명!!!

무려 354명!!!

3개 보병중대도 안되는 병력!!!


그 중 최정예 50명이 조선에 낙하산으로 투입하면 교전을 치루어야 할 한반도 주둔 일본군.


즉, "조선(주둔)군"은 19사단(나남), 20사단(서울), 원산 영흥항 요새사령부, 진해항 요새사령부, 조선헌병대이었고,

태평양 전쟁 개시후에는 한반도 본토에 17방면군으로 개칭되어 9개 사단이나 주둔하였고,

제주도에는 38군 예하 3개 사단이 주둔 중이었다.


이들은 10만이 넘는 병력으로 최신예 하야테 전투기와 치하 중전차 등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이들을 상대로 이미 패전이 임박한 1945년 2월에 작전을 기안하고,

원폭이 떨어지기 전날인 8월 5일에  출동명령이 떨어졌는데,

50명이 투입된들 무슨 발언권을 얻을 수 있는 전과를 올렸겠는가?

이들이 어벤져스와 져스티스리그라도 되었는가?


유럽전선에서 자유폴란드군은 최초 8만5천명 4개 사단이었고, 대전 말기에는 20만명으로 영국본토방공전, 이탈리아 몬테카시노 전투, 무르만스크전투, 마켓가든 전투 등에서 막대한 희생을 치루며 혁혁한 전과를 거두었다.

그랬음에도 소련 치하의 위성국으로 전락했었다.


자유프랑스군은 어떤가?

유고슬라비아의 파르티잔과 체트닉 등은?


우리는 이미 50년 가까이 일본의 통치 하에 있었기에 독립군이 거의 소멸되었다는 내부 사정은 있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내부 사정일 뿐...


독일, 일본과 싸우면서 최소 수만~수천만의 희생자를 낸 연합국의 입장에서는 조선의 독립을 보장해준 것만도 임시정부와 이승만 등의 뛰어난 외교적 결실이었다.


겨우 50명이 패망 1달도 안남은 시점에 침투하는 것으로 전후 발언권을 갖고 아시아를 호령하는 초강대국이 될 수도 있었다고 안타까워 하는 것은 거의 망상 수준이 아닌가!!!


설사 원폭이 투하되지 않고, 일본 본토 진공작전인 올림픽 작전과 코로넷작전이 수행되었다고 해도,총원 354명의 광복군이 한반도에서 게릴라 전을 펼치는 동안 100만명이 넘는 사상자를 바쳤을 연합군 입장에서 광복군 국내정진대의 활약(?)이 눈에나 찼겠는가?


안타까움은 안타까움일 뿐,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조국을 되찾지 못한 원인을 살펴보고 교훈은 얻지 못하고, 그저 현실도피적 망상에 사로잡혀서 위안을 한들 그게 우리 민족과 대한민국에 무슨 도움이 되는가?


이것이야말로, 쫄딱 망했다가 주변의 도움으로 겨우 일어난 집안이 "그때 로또만 1등 당첨되었더라면 우리가 이동네 제일가는 부자가 되었을텐데"라고 뇌까리는 것과 뭐가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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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명 독수리

1945년 2월, 미국 전략첩보국 관계자와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 대장 이범석이 비밀리에 만나

광복군과 미군이 연합하여 공동으로 수행하는

비밀 작전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미군이 광복군을 훈련하고 장비를 지급하여

한반도 내에 투입, 후방에 전선을 형성하는 비밀 작전

일명 '독수리 작전'이 수립된 것입니다.


중국 산시성(陜西省)에서 50명의 광복군은

미국 전략첩보국 사전트 소령의 지휘 아래

혹독한 잠입 전투 훈련을 받았습니다.


1945년 8월 5일, 훈련으로 투지를 다지고.

우리 손으로 조국을 해방하겠다는 일념으로 불타는

청년들에게 침투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8월 10일, 한반도 안의 모든 적을

일망타진하겠다는 기백으로 출전한 우리 광복군에게

뜻밖의 전면 철수 명령이 내려왔습니다.


바로 일본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되어

더 이상의 지상전은 필요 없다는 판단으로

독수리 작전이 취소된 것입니다.


뼈를 깎는 훈련을 마치고 눈앞에

조국을 두고 퇴각해야 했던

젊은 광복군들은 피눈물을 흘렸습니다.

일본의 항복으로 해방의 기쁨을 누렸지만

빼앗긴 주권을 스스로 찾지 못한

아쉬움은 너무나 컸습니다.


만약 독수리 작전이 성공했다면?

그래서 우리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일본 패망 후

전후 처리에 발언권을 가질 수 있었다면?


만약 그런 과정을 거쳤다고 해도

그 이후에 역사는 아무도 판단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쩌면 대한민국이 아시아를 호령하는

초강대국이 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큰 아쉬움이 남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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