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교도관의 이야기-
Holiday(쉬는 날)
남자는 쉬고 싶었다.
Bee Gees의 “Holiday”는 그가 참 좋아하는 노래였다. 젊을 때 학교 다니며 마주친 길가의 레코드 가게에서 우연히 들은 그 노래는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노란 은행나무 밑에 고풍스럽게 자리 잡은 음반 가게에는 머리를 멋지게 기른 분위기 있어 보이는 젊은 아저씨가 있었다. 어느 날 음반가게에 들어가 노래 제목을 알아냈다. 그 노래를 듣고 흥얼거리며 창으로 비추는 나른한 햇살 속에서 뒹굴뒹굴 책을 보는 것이 그가 좋아하는 일상이었다. 가끔 분위기 있는 아저씨가 이정표처럼 있는 그 음반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담긴 음반을 사고, 그걸 들으며 햇살 비추는 방에서 책을 읽는 것, 그것이 그가 늘 하던 일이고 앞으로도 계속하고 싶은 일이었다.
남자는 가난했다.
그래서 계속 쉬지 못하고 일을 하러 가야 했다.
음악을 듣고 책을 읽으며 소일하던 학교생활을 마치니 갑자기 경제위기가 닥쳐왔다. 대학을 졸업해도 이제는 쉽게 직장에 들어가기 힘들었다. 배운 기술이 없었고 합격한 시험이 없었으며 그저 음악을 들으며 책을 보는 것이 시간을 보냈으니 월급 준다고 불러주는 곳이 없었다.
그래서 남자는 동네 도서관에 가서 공무원 시험 준비를 했다.
도서관을 오가다가 만난 도서관 토박이가 남자에게 "교정"이란 곳을 알려주었다. 그곳이 비교적 쉽게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책을 좋아하는 남자는 "교정"이란 말에 혹했다.
책을 좋아해서 교정 보러 들어간 곳이 책 교정이 아닌 철장 안의 사람들을 교정 보는 곳이었다. 교정국 공무원이라고 했는데 글 쓰는 교정과는 상관없는 곳이었다. 담장 안 교도소 철장은 쉬는 날이 없었고 계속 지키는 사람이 있어야 했다. 그곳에서 남자는 종종 야근을 해야 했다. 야근하는 내내 추웠다. 플라스틱 페트병에 뜨거운 물을 담아 끌어안고 책을 보았다. 근무시간에는 좋아하는 음악을 들을 수 없는 것이 아쉬웠다. 야근이 끝나면 비번, 다시 한 숨자고 나면 야근이 시작되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다달이 돈이 들어왔고 책과 음악 앨범을 사는 것 이외에 지출이 없었는데도 늘 통장은 바닥이 보여 찰랑거렸다. 매일 일하러 가는 것 같았는데 월급 통장의 잔고는 쉬이 늘지 않았다.
어느 날 야근이 끝나고, 비번 근무가 갑자기 잡혔다. 철장 안의 사람들을 다른 교도소 철장으로 보내는 이송 근무였다.
“재수 없다”라고 남자는 생각했다.
"나도 좀 쉬게 해 주세요"라고 팀장에게 찾아가 이야기했다.
나이 들어 머리가 희끗희끗한 팀장은 고참 선배와 바둑 두면서
"너는 쉴 군번이 안된다"라고 말했다.
"정 쉬고 싶으면 계단에서 굴러서 병원에 가던가"라고 앞에 고참 선배가 마저 이야기했다.
‘내 근무 순번도 아닌데.’ 별로 가고 싶진 않았지만, 선배들에 등을 밀려 떠밀리듯이 호송 버스에 올라탔다. 포승줄이 제대로 묶였는지 쳐다보다가 좌석 아래 떨어진 부러진 클립을 보았다. 고개 숙여 집으려는 순간, “자리에 앉아”라는 선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뜻 날카로운 시선이 자리에 앉은 수용자들 사이에서 나타났다 사라진 듯도 싶었다. 포승줄에 묶인 사람들 사이에 자리 잡고 앉아 꾸벅꾸벅 졸았다. 집에 가서 뜨끈한 온돌에서 자는 꿈을 꾸었다. "병원 침대에서 자는 것도 나쁘지 않지"라고 꿈속의 남자가 중얼거렸다.
꾸벅거리던 고개가 떨어지는 찰나, 뭔가 뜨끈한 느낌이 뒤통수로부터 전해져 왔다. 그대로 고꾸라졌다. '엄청 피곤했나 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에 있는 선배가 뭐라 소리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냥 바닥에 엎드려 누웠다. 몸이 무거웠고, 일어나기 싫었으며 그냥 이대로 자고 싶었다. 눈앞이 희미해져 갔고 이마 위로 뜨뜻한 것이 흘러 눈에 들어가는 듯싶었다. 눈을 꼭 감았다. 시끄러운 알람 벨 소리 같은 소음이 머릿속에 울렸다.
"이송 중이던 미결수 10여 명이 교도관을 제압하고 탈주하여 서울 인근으로 도주해 그중 일부가 서울 시내 한 가정집에서 인질극을 벌인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인질범 중 한 명은 Bee Gees의 "Holiday" 노래를 경찰에 틀어달라고 요구했다는 소식입니다. 지금 인질범은 가족 중 맏딸을 인질로 잡고 창밖을 쳐다보며 소리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속보 전해드리겠습니다."
한숨 자고 난 남자는 병원 침대 위에 있었다. 머리에 둘둘 붕대가 감겨 있었다. 6인실 병실 한가운데 텔레비전 화면에서는 탈주범들이 인질을 잡고 경찰과 대치하고 있었다.
“Holiday 음악을 틀어달라” 막다른 골목에 몰린 탈주범들이 소리쳤다.
‘나도 그 노래 참 좋아하는데’ 남자가 생각했다. ‘노래 제목처럼 쉬고 싶었지’
“유전무죄, 무전유죄”라고 탈주범들이 외쳤다.
‘나도 돈이 없었지’ 남자는 생각했다.
‘부자였다면 있었다면, 나도 참 많이 쉬었을 거야’
화면에서는 경찰이 탈주범들이 인질을 잡은 주택으로 진입하는 장면이 보였다. 인질범이 총을 쐈고 곧이어 경찰특공대의 총에 맞아 고꾸라졌다. 뉴스 속보가 계속 진행되는 동안, 가난해서 마음 편히 쉬지 못했던 남자는, 모처럼 병원 침실에 누워 텔레비전을 보며 쉬었다. 뜨거운 물이 담긴 페트병 대신에 나른한 햇살이 들어와 병실을 데워주었다. 기분 좋은 졸림이 남자가 누워있는 침대에 내려앉았다. 살짝 졸면서 남자는, 문득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남자는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Holiday 음악을 들으며, 그만의 휴일을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