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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삶 Jul 07. 2021

여름, 추억

내가 좋아하는 여름의 하늘, 구름, 소나기 내음.


여름, 추억

내가 좋아하는 여름의 하늘, 구름, 소나기 내음. 


학교 다니던 시절, 한여름 햇빛이 쨍쨍거리는 운동장에서 농구를 하고 있을 때 갑작스레 비가 쏟아진다. 운동장 한구석에 농구공을 던져두고 학교 건물로 비를 피해 뛰어간다. 계단에 앉아 비가 내리는 모습을 가만히 본다. 시원스레 땅을 두들기는 소나기 소리가 듣기 좋고, 흙먼지 냄새가 쏟아지는 빗소리에 섞여서 콧속으로 들어온다. 여름의 냄새, 무더운 여름날 소나기가 내릴 때 문득 떠오르는 어릴 적 여름의 냄새이다. 그 소나기는 여름의 뭉게구름이 먹구름으로 변하면서 내린다. 여름날의 구름은 다양한 모습을 지녔고 가만 보아도 재미있었다. 어릴 적 보던 만화 “미래소년 코난”에서 스쳐가는 한 장면처럼, "하늘 높이 뭉게 꿈이 피어나는" 것 같이 하늘로 치솟아 오르는 구름을 보는 것이 좋았다. 그리고 그 구름이 소나기가 되어 내리면 그 흙내음이 좋았다.

아주 어릴 적 어머니를 따라 시골 외갓집으로 가는 완행열차 창을 통해 바라본 하늘은 푸르렀다. 가끔 여름 하늘의 커다란 뭉게구름이 만들어낸 그늘이 기차를 가렸다. 창가로 바라본 풍경 속에 다양한 뭉게구름이 보였다. 저것은 용을 닮았고 저것은 뱀을 닮기도 했고 때로는 그 구름이 사자가 되어 내가 탄 비둘기 열차를 따라 달리기도 했다. 비둘기가 고개를 끄덕이듯 느리게 달리는 완행열차 안은 닭을 보자기에 싼 할머니, 야채 꾸러미를 매고 있는 아주머니로 붐볐다. 떠들썩한 객차 속에서 사람들은 아무 자리에나 철푸덕 앉아 세상사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시골장에 나가는 아낙네와 처음 만나는 흥겨움 속에 이야기를 나누는 어머니 옆에서 어린 내가 할 일은 하늘의 구름을 보는 것밖에 없었다. 이제는 사라진 비둘기 완행열차 안에서, 천장에 선풍기 한 대만 돌아가는 뜨거움 속에서, 여름 더위를 쫓아내지도 못하고 약 올리듯 스쳐만 가는 여름 바람과 그 바람을 따라 흐르는 다양한 모양의 구름이 좋았다. 때로는 기차가 아닌 이제 막 버스 떠난 시골 버스 정류장에서 여름 하늘을 보기도 했다. 멀리 보이는 산등성이에 걸린 구름 하나. 여름 비가 내린 뒤 하늘은 여전히 흐렸고, 그 구름 하나만 사귀는 연인이 팔짱을 끼고 붙어 있는 것처럼 산허리에 매달려 있었다.

시간이 지나 대학생이 되어 서울에 올라와 느린 완행열차에서 고속열차를 타듯 편리한 지하철을 타기 시작했다. 그 지하철에서는 당연히 구름을 볼 수 없었다. 가끔 한강 위를 지나는 2호선 열차에서 한강 위에 떠다니는 이런저런 구름들이 내가 모르는 새 스쳐갔다. 황사와 미세먼지로 뿌옇게 변한 하늘은 더 이상 나에게 여름 하늘의 구름 보기를 허용하지 않았고, 미세먼지 섞인 비가 내리면 행여나 머리 빠질세라 피해 다니기 바빴다. 여름의 폭우는 출퇴근을 어렵게 하는 골칫덩이일 뿐이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코로나19로 세상이 어려운 여름 초입. 문득 회사 뒤편 산 아래 산책길을 걸어본다. 5월 말부터 한창이던 금계국이 아직 다 지지 않았고 황금색에 질리지 않게 붉은 패랭이꽃이 군데군데 피어있다. 산 같지 않은 작은 뒷산에는 어릴 때 보던 뱀딸기가 보이고 기찻길 옆에서 흔히 보던 하얀 망초가 무리를 지어 예쁘게 어우러진다. 그 위에 푸른 나무는 여름을 맞아 풍성하고 나무 위에 펼쳐진 뭉게구름이 군대 사열식 마냥 떼 지어 흘러가는 가운데 어디서 날아오는지 모를 새털구름이 그 사이를 비집고 흘러간다. 오랜만에 보는 풍성한 여름 하늘이다. 어릴 때 외갓집에 가는 길에 완행열차에서 보던 푸른 여름 하늘의 구름, 흙내음이 물씬 풍기는 소나기를 내려주며 더위를 식혀주던 여름의 구름 뭉치들이 보였다.


가을 하늘은 맑고 청량하다. 푸른 하늘이 마치 우주와 같이 펼쳐져 있다. 하지만 마냥 너른 푸르름 속에서 아무것도 없이 심심하다. 겨울 하늘은 이제 미세먼지가 뒤덮여 푸른 하늘을 보기도 어렵다. 봄은 꽃샘추위가 반복되면서 변덕스럽다. 그에 비해 여름 하늘은 푸르면서도 다채로운 뭉게구름이 피어나서 많은 이야기들을 만들어낸다. 토끼가 호랑이 구름에 쫓기기도 하고 때로는 용이 승천해서 소나기를 내린다. 예상치 못한 소나기는 어린 시절로 돌아가게 만드는 시골의 흙내음을 뿌려준다. 소나기를 따라 흙내음을 맡을 수 있는 여름은 비둘기호 완행열차를 타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세상사에 시달려 어깨가 처지고 허리가 굽어가는 어른의 시절, "푸른 하늘 저 멀리 새 희망" 있다는 것을 알려주던 어릴 적 만화를 생각나게 하는 여름 하늘의 구름. 그래서 난 여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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