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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레인 Nov 13. 2021

호주 전체 지역의 도자기 오픈 스튜디오 데이

호주의 도자기 스튜디오

피곤하지만 참으로 즐거웠던 날.

이 날의 감동과 즐거움을 기록으로 남겨두기 위해서 일기 형식으로 이렇게 글을 쓴다.


대학을 졸업한 후, 새로운 개인 스튜디오가 절실히 필요했었다. 당시 일하던 아트 스튜디오의 매니저의 제안으로 그 스튜디오의 레지던시 아티스트가 되었었다. 한국말로 쉽게 말하자면 입주 예술가!


문제는 1년이 안 되는 시간 동안 작품을 많이 하지 못했고, 스튜디오에 정을 붙이지 못하였었다. 나보다 훨씬 나이 많은 기 센 멋진 아티스트 호주 언니들 가운데서 깨갱 거렸다고 해야 하나. 또, 새로 시작한 대학원 공부는 얼마나 휘몰아치던지.. 정말 글 쓰느라고 미치는 줄 알았다.


비록 올해 작품 활동은 많이 못하였지만 5개의 전시회에 참가하였으며, 큐레이터로써 3개의 전시회를 진행시켰고, 4개의 아트 프라이즈에서 상을 수상했었다. 아무것도 안 한 것 같으면서도 꽤나 알차게 보냈던 2021년이었다. 그 와중에 호주 시드니는 대략 3개월 동안 코로나로 거리 제한이 생겨서 나는 3개월 동안 스튜디오 근처도 가보지 못했었다. 3개월, 그 3개월 동안 대체 그곳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는가.


아까도 말했다시피, 나는 기 센 3명의 호주 언니들과 시드니 시티 근처의 시청 건물에 딸린 아트 스튜디오의 공간을 공유했었다. 기 센 언니 중의 한 명인 R은 하필 우리 학교 건축과 교수님이셔서 자동적으로 주눅이 들고, 쫄았었다. 물론, 그녀는 항상 내게 이모처럼 친근하게 대해준다. 얼마 전에 내 논문을 읽고 체크해주신다고 말씀해주셔서 나도 모르게 진절머리를 쳤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괜찮아요..

이분과 좀 더 가까워진 계기는 한국 드라마 '빈센조'였다. R 언니의 인생 드라마가 빈센조라고 하셨는데.. 빈센조가 2주 결방했을 때, 나한테 왜 드라마가 2주씩이나 결방하냐고 심각하게 말씀하셔서 뭐라고 답해드려야 할지 몰랐었다...


그리고 K 언니. 이 언니, 진짜 세다. 카리스마 장난 아니다.. 만나보면 내가 무슨 말하는지 알게 될 거다.

제일 어려웠던 사람 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알면 알수록 잔정이 많고, 속 깊은 언니였다. 어느 날, 내게 한국 때밀이 수건을 100장을 사셨다면서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하라고 해주셨다.. 이 언니 분명 백인이신데, 어떻게 때밀이 수건을 아는지 의문이었다. 알고 보니 20여 년 동안 호주에 있는 한국식 목욕탕에 다니셨다고 한다. 아... 컬처쇼크였다. 시드니에 한국 목욕탕 나도 안 가봤는데..


R언니와 K언니와 대화할 때면 내가 한국 사람이라는 것에 대해서 반성을 하게 된다. 내가 이렇게 이들만큼 한국을 잘 알고 사랑했던 적이 있던가.........................................


남은 다른 언니는 워낙 무뚝뚝하고 엄청 예민하신 분이셔서 그 분과 같은 공간에 있을 때, 솔직히 나도 그리 편치는 않았었다. 내 존재가 혹여 방해가 될까 봐 스튜디오에 작업하러 왔다가 그 언니 계실 때는 일부로 집에 일찍 돌아가고는 하였다. 언니가 작업에 집중할 때면 종종 인사를 하지 않을 때도 있었는데, 그냥 바쁜가 보다.. 하고 내 일을 했다. 그러다가 눈 마주치면 인사하고, 뜨거운 물을 끓여서 한국 차를 나눠서 마시기도 하였다. 이 언니가 다른 곳으로 옮기시고.. 내 친구 엘리자베스가 내 스튜디오 옆으로 들어왔다. 하트 이모티콘 없이는 부를 수 없는 그 이름, 엘리자베스. 내 대학교 동창인데, 엄청 조용하고 침착한 사람이지만 내면이 참 강하다. 엘리자베스가 우리 스튜디오로 들어온 후, R언니와 K언니는 너무 행복해했다. 물론, 나도 행복하다! 다른 사람이면 아마 난 그리 행복하지 않았을 것이다, 엘리자베스라서 행복한 거다!


우린 갑자기 그동안 없었던 단체 대화방도 만들어서 대화도 수시로 활발하게 서로 하기 시작했고, 심지어 크리스마스에 한국 식당(나는 거의 한국 식당을 가지 않아서 어디가 맛있는지 잘 몰라서 언니들이 알아서 한국식 비비큐 잘하는 곳으로 데려가 주기로 하셨다... 응?... 그래, 나 반성해야 해...)에 가서 넷이서 같이 밥 먹고 놀기로 하였다. 그 전에는 절대 이런 거 없었는데..... 하여튼, 엘리자베스가 오고 우리 스튜디오가 너무 환해지고 즐거워졌다. 넷이서 앞으로 할 일들에 계획을 많이 세우며, 갑자기 급 활발해지고 생기가 넘치는 곳이 되었다.


그중 하나, 호주 도자기 협회의 '오픈 스튜디오'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다. 13일, 토요일에 우리들의 스튜디오를 대중에게 개방했다. 그리고 시청 건물 앞에서 작은 마켓을 열었다.


아침 10시부터 4시까지 스튜디오를 개방했다. 그 전날, 미친 듯이 가서 내 스튜디오 청소한 건 안 비밀..

어질러놓은 것도 아티스틱한데, 왜 치우냐며 K언니가 놀리기도 하였다.


그동안 여러 가지 도와주신 일들이 고마워서 뇌물로 R언니와 K언니에게 한국 소주와 매취순을 바쳤다.

오늘 저녁에 언니네 집에서 행복해하고 있는 설중매를 보니 뿌듯했다. 인증숏은 필수다.



이렇게 시청 건물 안에 마켓을 차렸다.



10시가 되기도 전에 사람들이 와서 구경하기 시작했다.

나는 올해 만든 것들이 워낙 없어서 몇 년 전에 만든 것들까지 창고에서 꺼내와서 판매했다.



웨스턴 스코티쉬 테리어. 왔던 손님들 중에 최고로 이뻤었다.

날 언제 봤다고 착 달라붙어서 애교를 부리는지.. 너무 행복했었다. 짧은 다리가 너무나도 매력적이고 귀여웠던 아이였다. 정말 꼭 키우고 싶더라.



그 전날에 치웠는데도 이 정도로 더럽다니.. 부끄럽다.

하여튼, 이곳이 내 스튜디오이다. 올해 마지막 과제만 끝나면 더 치우고 정리해야지.



SNS로 영상까지 만들어서 광고한 보람이 있다. 아주 많지는 않았지만 지속적으로 계속 하루 종일 사람들이 들려서 즐거웠던 하루였다.



생각보다 수입이 꽤 짭짤했던 하루.

솔직히 내 것 하나도 안 팔릴까 봐 걱정했었다. 그래서 하나님께 중간만 팔리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했는데, 기도를 들어주셨다.



언니들 커피 셔틀도 하고..

카페에 김치 토스트라는 게 있어서 먹어봤는데, 대박.. 대박 맛있다. 또 먹고 싶다.

카페 사장님에게 오늘은 치즈가 많이 먹고 싶어요..라고 말했는데, 듬뿍듬뿍 치즈를 넣어주셨다.


다이어트? 나 이거 안 먹었으면 오늘 쓰러졌다..


김치는 치즈랑 빵이랑도 어울리고, 라면이랑도 어울리고, 밥이랑도 어울리고..!!!

역시 김치는 내 소울 푸드다.



전기 가마가 있는 방.



엘리자베스 꺼 도촬 했다. 내가 사고 싶었는데, 팔려서 아쉬웠다. 엘리자베스가 더 이쁜 거 만들어주기로 했다.


올해 정말 열 일하는 엘리자베스.. 올해 여기저기서 상도 꽤 많이 받았다.

그녀가 자기 자신만의 것을 찾아서 부럽다.


올해 나는 많이 헤매었지만 내년에는 정말 기대가 된다. 이것도 다 과정이니까.



너무 마음에 들어서 하나 내가 데려왔다. K 언니랑 서로 작품 교환했다!



가장 대중적인 R 언니의 작품들. 사용감이 너무 좋아서 내 주변 지인들에게도 선물하고 싶다.

R 언니랑도 서로 작품 교환했다. 언니가 만든 그릇은 참 편안하고 심플하고 예쁘다.



창고에서 부랴부랴 가져온 아이들. 하아..

내년에는 정말 정말 정말 나도 멋있는 거 많이 작업할 거다. 이미 다 계획이 있다고.



카리스마 있다.



오늘 날씨가 바람 불고 추워서 엘리자베스에게 붙었다.



스튜디오를 방문한 달마티안. 달마티안이 주인을 너무너무 사랑하더라.. 부럽다.

달마티안 주인분이 내게 작품을 사 갔다. 원래 안 팔려고 안 내놓은 작품인데, 꼭 사고 싶으시다고 하셔서 좋은 가격에 팔았다.



떠나보내면서 "사진 한 장만 찍을게요!!! 마지막이니까!!!" 하니까 달마티안 주인분이 웃으시더라.

초록이, 내 초기 작품. 우리 오래 같이 있었다. 안녕, 새로운 주인과 행복해. 사랑 많이 받길 바라.



정말 순하고 예뻤던 손님. 내가 만져주고 갈려니까 짖고 난리가 났었다. 가지 말라고.



대학 친구들이 찾아와 줬었다! 모니카, 컬스티, 아리아랑 아리아 파트너.

일부로 이렇게 와주고.. 너무 감사했었다. 근데, 다 같은 시간에 와서 너무 정신없었다!


저 사진은 아리아가 청바지로 직접 만든 가방이라는데, 신기해서 찰칵.



빈손으로 와도 되는데! 목욕 용품 선물 받았다.

감사합니다!



오늘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났었다. 처음 보는데도 긍정적인 덕담 많이 듣고.. 또, 작품도 사주셔서 너무 감사했었다. 내가 하는 작업들에 대해 궁금해하셨고, 도자기 클래스 운영에 대해 문의도 많이 해주셨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앞으로 매니저랑 좀 더 상의해봐야겠다.


인스타로 오후에 메시지도 하나 받았다.


안녕, 엘레인. 아침에 당신의 금 페인팅 작품을 좋아했던 사람이에요. 당신은 사람을 대하는 것에 있어서 관대했어요. 저에게 작은 도자기를 선물로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당신의 친절에 감사드립니다.


나야말로 감사하죠! 데려가 주신 내 작품, 부디 많이 사랑해주세요!

이렇게 메시지를 주시고 마음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내 작품들 데려간 사람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왠지 나도 뿌듯했고, 목표가 생겼다. 정말 다시 한번 작품을 더 잘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그릇들 데려가면서 너는 재능 있다면서 앞으로도 유심히 지켜보겠다는 호주 아저씨와 아주머니..

내 그릇 데려가면서 너무나도 좋아서 어쩔 줄 몰라했던 게이 커플.

처음 봤는데, 나한테 칭찬을 엄청 많이 해주고 내 작품 데려가 주신 친절한 젊은 백인 커플.

내 작품 사가면서 꼭 배우고 싶다며 내 클래스 정보 물어봐준 사람들...

그 외에도 내 작품을 구입해주신 분들.. 커피 셔틀 하고 점심 사러 간 사이에 내 작품 열심히 팔아준 언니들과 엘리자베스.


생각보다 수입이 짭짤해서 언니들에게 앞으로 마켓 자주 하자고 할 것 같다. 기대 안 했는데.. 너무 재밌었고 즐거웠다. 새로운 사람들 만나고 대화하는 게 즐거웠다.


이젠 과제할 시간. 괜찮다.

3000자만 쓰면 된다. 할 수 있다. 저번에는 하루 만에도 했었다.... (미친 거지..)


과제 끝나고.. 이제 숨 좀 돌릴 수 있는 방학이다. 열심히 작업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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