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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레인 Dec 25. 2021

호주 시골 동네 적응기 - 1

파이 사랑의 시작

몇몇 안 되는 독자님들, 잘 지내셨는지?

필자는 그동안 글 하나 쓸 여유 없이 미친 듯이 바빴었다. 친구들의 메시지들에도 제시간에 일일이 답장하지 못하는 날들이 많아서 아마 그들을 서운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시골 동네에서 나름 유명하다는 와인과 치즈, 초콜릿을 왕창 사 왔으니 그들이 부디 너그러이 이해해주고 용서해줄 수 있기를 바라며! 


시드니 도시에서만 살다가 난생처음으로 겪어본 호주 시골 생활에 대한 우려는 슈퍼 익사이팅으로 바뀌었다. 인생에서 매우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으며, 하루하루가 몹시 신기하고 재밌었다. 시드니에 돌아온 이후, 이 이야기들을 얼른 나누고 싶어서 크리스마스 이후, 친구들과 약속을 잡기도 했다. 브런치에도 얼마나 글을 쓰고 싶었는지 모른다. 시드니에 돌아온 후, 이틀을 잠만 푹 자다가 마음에 이제야 여유가 생겼다. 


대학원 학기가 끝난 후, 호주의 유명한 아티스트 분이 같이 일하자는 연락이 왔다. 아트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으며, 스튜디오가 있는 시드니에서 좀 떨어져 있는 호주의 어느 듣도 보도 못한 시골에 가서 일하게 되었다. 페이도 나쁘지 않았지만 무엇보다 이 세계에서 내 이력서에 아주 좋은 기회였으니까. 


엄청난 걱정을 하면서 부랴부랴 현재 일하고 있는 갤러리의 슈퍼바이저에 조심스럽게 양해를 구했고, 슈퍼바이저는 쿨하게 다녀오라고 말해줬다.(현재 필자가 일하고 있는 갤러리는 시드니의 코로나 펜데믹으로 인해 닫혀있는 상태이다. 사무실 업무만 했었고, 내년에 다시 오픈할 계획이다.) 왜냐면 하필 그곳이 슈퍼바이저가 자란 동네 바로 옆이라서 그의 어린 시절의 감성을 자극한 것 같다. 응?... 모르겠다, 모든 일이 빨리 진행되고 풀렸었다. 걱정한 일들이 무색했던 만큼. 


시드니에서 대략 운전해서 3시간 30분 거리에 위치하고 있고, 위의 지도에서 보는 것처럼 사방이 저렇게 광활한 초원으로 둘러싸여진 호주의 작은 시골 마을이다. 만약 차가 없다면 탈출 불가능한 곳...


이런 길들이 꽤 오래 쭈욱 펼쳐져 있는 고속도로를 한참 달리고 나면 마을 하나가 보인다. 1860년에 영국에서 온 백인들에 의해 설립된 마을이며, 2016년 호주 시드니의 인구 조사에 의하면 1663명의 인구가 이 마을에 살고 있다. 대략 5년 전이니 아마 현재는 인구가 좀 더 늘은 것 같다. 인디언, 동양인이 거의 없는 완벽한 백인 동네라서 그런지 필자는 조금 그 동네에서 튀었다. 시드니에서 멜버른 가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어서 여행객들이 많은 마을이며, 관광하기에 아주 좋은 휴양지이다. 현재는 시드니의 유명 셰프들이 이 마을에 와서 많은 맛집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맛집이 좀 있다지만 듣도 보도 못한 호주 시골로 가면서 어떻게 걱정을 안 할 수 있었을까.. 

각종 라면과 햇반, 김치, 고추장, 김 등을 챙겨갔다. 사진에 있는 건 새발의 피.


사실 호주에서 이 정도 운전은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락다운 이후로 오랜만에 하는 장거리 운전이기에 중간에 몸이 막 쑤시고는 했었다. 좀 쉬었다가 가기도 하고.. 자연 감상도 하고..


내가 왜 이런 시골로 가나 기도 막혔고. 

정말 시골에 가서 살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었다. 


새벽 5시 30분에 시드니에서 떠나서 달린 끝에 도착한 새로 머물 집 근처의 유명한 파이집. 

이 건물이 이 마을에서 가장 아름답고 오래된 역사적 건물인데, 2003년부터 이곳에 파이집을 시작했다고 한다. 커피와 키쉬(파이지에 계란, 베이컨, 야채 등을 넣고 구운 것) 맛이 꽤 괜찮았다. 


으음, 완전 호주 시골집! 그래도 정을 붙여야만 하는 곳.


나와 같이 지내게 된 강아지들. 


왼쪽의 작은 체구의 강아지는 버스터인데, 티베트 스페니얼이다. 

얼마나 작고 귀여운지.. 실제로 보면 정말 인형 같다. 아기 같은 외모와 달리 버스터는 10살의 노견이다. 

버스터는 예전 주인에게 학대 아닌 학대를 받다가 구조된 개인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비 오는 날이면 안절부절못하고 낑낑거린다. 처음에는 낯을 많이 가렸지만 이젠 제법 친해져서 항상 내 가까이 와서 날 지켜주는 버스터. 눈치도 빠르고, 사람 말도 제법 알아듣는다. 


그리고 저먼 복서 불도그인 제퍼. 덩치는 어마어마하게 크지만 아직 13개월밖에 안된 아기이다. 

처음 만났을 때는 내게 엄청 짖어대고 텃세 부리더니.. 이젠 장난감을 슬그머니 내게 내밀고는 한다. 

"너 안 바쁜 거 알아. 당장 지금 나랑 놀아, 비취!!!"라고 눈으로 항상 내게 말한다.. 


주주네 집에서 함께 지내게 되었는데, 주주는 이 동네 로컬들이 간다는 온갖 맛집들을 내게 일일이 다 손으로 적어주었다. 그중 주주가 강추한 파이 카페에 갔는데, 와.. 사랑에 빠져버렸다. 


파이가 이렇게 맛있을 줄이야. 


이곳은 트럭 운전사들이 많이 지나가는 길이라서 손으로 먹을 수 있는 파이가 발달된 듯싶다. 


어쨌든, 주주는 동갑내기의 호주 여성이다. 쭉쭉 뻗은 시원시원한 몸매에 금발의 소유자.

주주의 이름 발음을 내가 잘 못해서 그냥 주주라고 부르기로 했다. 주주라고 부를 때마다 주주는 자기의 새로운 이름이 너무 귀엽다며 깔깔깔 깔깔 웃다가 넘어간다. 

그래.. 지금 많이 웃어둬.. 


주주 덕분에 이 동네 파이 맛집은 전부 다 트라이해본 듯싶다. 

첫 일주일 동안 아침은 무조건 파이를 먹었고, 5분 거리의 바닷가를 산책했었다. 


다양한 종류의 파이들은 내 눈을 돌아가게 만들었고, 호주에 와서 이렇게 맛난 파이는 처음이었다. 덕분에 살도 쪘지만 나름 행복하고 풍요로운 시간들을 일하면서 보낼 수 있었다. 다이어트는 내년부터. 


며칠이 지난 후, 주주와 함께 점심으로 일식을 주문해서 먹기도 했다. 우리의 첫 점심이라며 주주가 너무 기뻐했었다. 그동안 맛집 찾아다닌다며 주주만 두고 간 내가 너무 야속했었나 싶고.


맛집도, 주주도.. 알아가는 중. 


제퍼는 수시로 내게 놀아달라며 장난감을 물고 왔다. 상대를 안 해주면 내 다리 위에 자기 얼굴을 올려다 놓고 가만히 내 얼굴을 쳐다보았는데, 정말 이 세상 귀여움이 아니었다. 인형보다 더 인형 같았던 너무 이쁜 제퍼. 


아몬드 크루아상 덕후인 주주의 기준으로 시드니에서 제일 맛있다던 아몬드 크루아상. 


주주가 알려준 집 근처 와이너리에 시간 났을 때에 방문했었다. 


이곳에서 직접 만든 치즈와 와인. 치즈는 그럭저럭.. 와인은 굿이었다. 

시드니로 돌아오면서 엄마에게 이곳 와인을 사줬는데, 엄마가 너무 좋아하셨다. 덤으로 엄마 친구분들도 좋아해 주셔서 다시 시드니로 갈 때는 와인을 한가득 가져갔었다. 


와인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곳에서 지내면서 다시 즐기기 시작했다. 

나도 양조장 하고 싶다. 응? ㅋㅋㅋ 

아이디어 정말 너무 많은데. 


와이너리 풍경을 보니 속이 트였다. 


주주랑 같이 살기 시작하면서 서로 조심한 부분도 있지만 좀 어려운 부분들도 분명 있었다. 왜냐면 정말 오랜만에 가족이 아닌 누군가랑 살았기 때문이다. 신기하고 맛있는 음식 지식을 공유하고 이야기하면서 첫 주는 주주와 함께 천천히 이곳에서 적응했던 것 같다. 생각보다 꽤 괜찮았고 재밌었던 시골 생활이었다. 


다시 주말에 시드니로 가는 길에 농장에서 체리 한 움큼 사서 운전하면서 하나씩 먹으면서 갔다. 

비 오는 날 운전하니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날씨가 심하지 않아서 할만했었다. 


파이를 잔뜩 사 와서 집에 와서도 내내 파이만 먹었던 것 같다. 


시드니에 와서는 친구 소개로 오랜만에 소개팅.. 

결과는 별로였다. 나랑 안 맞는 분.

난 음식 엄청 가리는 남자, 피곤하고 힘들어... 

내 인생에서 음식이 나에게 얼마나 중요한데! 


나름 남자는 대화를 이어나가려고 본인의 10여 년 전 사진까지 보여주며 말을 이어 붙었건만..

그냥, 내가 비취인 걸로.


또, 내가 치즈 케이크 먹는 거 보고 치즈 케이크가 얼마나 몸에 나쁜지 설명해주는데.. 듣다가 입맛이 떨어져서 저거 반 먹고 말았다. 먹으면서 음식 사진도 찍고 싶지 않았을 정도.. 


진짜 오랜만에 체할 뻔했다. 


올해의 마지막 전시회. 호주의 12명의 큐레이터들과 시드니 시티의 치펜데일의 갤러리에서 함께 했다. 참여시켜주셔서 감사해요 대빵 큐레이터 언뉘.


지난달에 내가 일하는 갤러리에 찾아와 줘서 이 전시회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해준 큐레이터 언뉘를 보고 감명 깊었다. 우리 같은 과목 공부하면서 스친 적 있다던데.. 난 기억이 안 나. 그래도! 지금이라도 이 언뉘랑 친구 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특이했던 전시회. 저 네모난 상자를 채우는 게 내 미션이었다. 그리고는 라이팅....


너무 배고파서 내 10여 년 단골집인 이치방 보시 라멘집으로 직행.

슬프지만 맛이 너무 많이 변했다. 이곳도 이젠 발길을 끊을 때가 되었나 보다. 


주말 이후, 차에 흙을 싣고서 또다시 시골로 갔다. 

뭔가를 계속 만들어야 하는 게 내 숙명이니까. 응? ㅋㅋㅋ..


이런 곳들을 달리고 달렸다. 


길을 잘못 들어서 갔던 옆동네. 이곳에서 또 파이 먹고........... 다시 그 시골집으로 직행. 

그리고 또 새로운 경험들과 이야기들이 시작되었다. 


어쨌든, 이 곳에서 당분간 나의 파이 사랑은 계속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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