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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레인 Dec 25. 2021

호주 시골 생활 적응기 - 2

나는 왜 호주 시골 한가운데서 만두를 빚고 있는가

나는 왜 호주 시골 한가운데서 메밀전을 부치고 있는가.. 


주주는 중국에서 지낸 적이 있는데, 호주와 중국의 사이가 급격히 나빠지고 코로나로 인해 상황이 나빠지면서 호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중국을 몹시 그리워하는데, 시골 생활에서 파이만 먹었을 주주를 생각하며 종종 한국 음식들을 나누게 되었다. 


시드니에서 가져간 메밀부침 가루에다가 부추를 팍팍 넣어서 메밀전을 부쳐먹었다. 간장에 식초 조금, 후추 조금 뿌려서 줬는데.. 주주가 환장하고 엄청 맛있게 먹었다. 

내게 소스의 비법이 뭐냐고 계속 물어보는데.. 10번을 말해줘도 정말 그게 다냐며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이 호주 시골에는 아시안 음식점이 없다. 그냥, 대부분 파이집 혹은 선술집.. 피시 앤 칩스 집이라고 생각하면 쉬울 것이다. 아시안 음식을 먹으려면 1시간 30분 정도 운전해서 다른 동네에 가야 하는데, 그곳은 정말 쓰레기 같은 음식이라고 주주가 말해줬다. 충분히 짐작이 된다... 


비빔밥 먹고 싶어 하는 주주를 위해서 냉장고 속 재료들 털어서 비빔밥을 만들었다. 

주주는 연신 어메이징! 을 외치면서 밥을 열심히 비벼 먹었다. 고추장 챙겨가길 잘한 것 같다. 


내 임무는 한국 음식은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이라는 것을 주주에게 세뇌시켜주는 것. 


조그만 동네인데, 일정 시간에는 차가 엄청 막히고는 한다. 그럴 때는 뭔가 좀 어이없다랄까. 


이 시골 동네에 와서 놀랬던 건.. 이 동네 슈퍼 델리가 생각 이상으로 제법 괜찮다는 것이었다. 

치즈 코너도 괜찮았고, 안주들이 동네 곳곳이 훌륭하게 깔려있었다. 입맛 저격.. 


시드니에서 국시 장국을 가져가서 주주가 좋아하는 메밀국수로 시원하게 소바를 해 먹었다. 

이 동네에서 하얀 무를 찾을 수 없어서 무는 생략 했지만 맛은 꽤 괜찮았다. 


다만, 주주가 내가 가져간 고추냉이가 생고추냉이가 아니라고 투정해서 한대 칠 뻔. 

입맛은 완전 고급이고 까탈스러운 주주지만 내 음식은 맛있게 먹어준다. 저번에는 김치에 김, 밥을 두 그릇이나 먹어서 얘는 한국 사람인가 싶을 정도였다. 김치도 맛나게 잘 먹는 주주, 기특해. 


이 동네 로컬 와인들. 정말 이런 특색 있는 것들이 너무나도 좋았었다. 

이 동네에서 나는 유기농 계란들, 와인들, 치즈들.. 너무 완벽하게 좋았다. 


일이 끝난 이후에는 바다에 가서 한참을 앉아있다가 오고는 했다. 

하, 내가 이런 호주 깡촌 시골 동네까지 와서 일하다니.. 기가 막히기도 했지만..

언제 내 인생에 이런 기회가 있을까 싶어서 뭔가 내가 굉장히 행운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주주와 카레도 해 먹었다. 주주가 좋아하는 목이버섯 듬뿍 넣어서 김치와 함께. 

근데! 주주의 몸에 두드러기가 났다. 원인은 카레.. 


앞으로 우리 집에서는 카레 금지. 


툭하면 혼자 차 끌고 밤바다 가서 감상하고는 했다. 

주주 외에는 친구 하나 없는 동네이지만 외롭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이 혼자만의 시간이 내겐 너무 소중하니까. 


드라마 보면서 밤에는 치즈랑 와인. 

미쳤군. 


왜 혼자서도 이렇게 잘 사는 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기가 막혔다. 그동안 걱정했던 것들이 무색했을 만큼, 나는 시골 생활에 너무나도 잘 적응하고 있었다. 


어느 날, 주주가 쨔쟌!!! 이러면서 내게 아침을 해준 적이 있는데.. 그때 삶은 계란에 뭔가를 듬뿍 뿌려댔었다. 필자는 퍽퍽한 삶은 계란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순간 인상을 팍 찌푸렸었는데, 한입 먹고 웬걸.. 완전 신세계였다. 주주가 뿌려준 건 두 카라는 이집트 향신료 재료였는데, 그 이후부터 내 아침은 뉴트리셔널 이스트(영양 효모)와 두카(Dukkah)를 잔뜩 뿌린 삶은 계란과 요구르트가 되었다. 


파 기름 내고 굴소스 넣어서 계란 볶음밥도 해 먹었다. 김치랑 환상이었다. 

다행히 주주가 김치를 싫어하는 호주인이 아니라서 얼마나 감사한지. 


호주 시골 한가운데서 만두도 빚었다. 하아.. 

주주가 만두 빚는 법 가르쳐달라고 징징거려서 시드니에서 만두피랑 숙주랑 부추 등의 몇 가지 재료들을 사 가지고 갔었다. 만두피가 100장이었는데, 둘이서 수다 떨면서 2시간 만에 만두 백개를 다 빚어서 냉동실에 얼려놓았다. 


어쩌다 보니 주주 어머니랑 화상 통화까지 하게 되었다. (대체 왜....)

주주 어머니는 집에서 김치를 직접 담그신다면서 내게 레시피도 알려주셨는데, 뭔가 좀 한참 잘못되어서 몇 가지를 바로 잡아드렸는데 무척 고마워하셨다. 


주주는 만두 빚는 것을 무척이나 재밌어하였다. 채식 만두, 김치 만두, 고기만두 등을 만들었는데, 주주는 무척이나 감격하였다. 맛도 생각 이상으로 매우 감격스러웠다! 


호주 친구와 만두를 빚는 특이한 경험을 했던 엄청 뿌듯한 날이었다. 


인스타그램에 저 만두 빚는 동영상을 올렸는데, 대학교 친구들로부터 왜 자기들과는 만두를 빚지 않았냐는 엄청난 항의 메시지들을 받았다! 아니.. 니들이 한 번도 안 물어봤잖아! 


어쨌든, 시드니에서 또 다른 친구들과 만두를 빚어야 할 듯싶다. 


주주는 내게 이 시골 동네에 내려와서 아시안 음식점을 해보라며 부추겼다. 아놔.. 

내가 그러려고 5년을 뼈 빠지게 대학에서 공부했냐고! 


동네 베이커리에서 갓 구운 빵에 질 좋은 버터를 발라서 먹고.. 


나랑 같이 일하는 또 다른 친구의 아들이랑도 놀고. 

그녀와도 점점 친구가 되어가는 중이다. 내 한국 음식들을 탐내는 그녀 E.. 

특히, E는 유자차에 꽂혀서 내가 시골 가면서 챙겨갔던 내 유자차 큰 병이 금세 빈 통이 되었다.

어느 날, E에게 간단하게 주주에게 해줬던 메밀국수 소바를 해줬는데.. E는 너무 행복해하면서 한 그릇을 다 비어내었다. 내가 음식을 해주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내게 시드니 가면 내가 좋아하는 한국 음식들을 다 사다 달라는 그녀. 


알고 보니 그녀..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앞에서 가장 유명한 레스토랑의 오너였다. 


헐. 


주주는 밤에 내게 넌지시 말했다. 나 때문에 걱정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리고는 내가 마음이 사려 깊다고 말해줬다. 


... 주주가 내게 마음을 많이 써주는구나, 라며 고마워하려는 찰나..


주주의 걱정은 내가 김치를 유리병에 담아서 E에게 나눠주는 모습을 보고.. 

귀한 만두를 E에게 나눠줄까 봐 걱정이었다고 한다. 응?....


장난인가 생각했는데, 주주는 정말 진심이었다. 


우리가 한번 만두를 먹으면 한 사람당 10개씩 삶는데, 금방금방 없어지는 만두를 보고 주주는... 

할 말 하지 않겠다. 진짜 꼬집을 뻔. 


주주를 안심시키며 내년에는 같이 350개 빚기로 하였다. 

아이고, 내 팔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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