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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레인 Apr 22. 2022

전시회에서 겪은 표절 시비

호주 백인 예술계에서 살아가는 아시안의 유치한 주절주절

내가 기획하고 준비했던 전시회가 무사히 잘 끝이 났다. 지난번 전시회에서 마음고생이 심했던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모난 사람 하나 없이 (굳이 따지자면 내가 모났었다!) 잘 진행할 수 있었다. 다만, 호주 사람들 특유의 느린 진행 과정이 내 속을 답답하게 한 것 빼고는 말이다. 한국인 특유의 '빨리빨리'에 대해서 내려놓아야만 하는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아무 일이 없었던 것만은 아니다. 드라마틱한 내 인생에 어울리게끔, 또 재미있지만 어이없고 좀 씁쓸하고 슬픈 일도 있었다. 지난번 전시회에서 표절 시비를 받았었던 적이 있다. 내 작가 J가 세라믹으로 음식을 만들었었는데, 어떤 여자(막상 시비를 거신 그분은 남의거 그대로 통으로 베끼시는 분이라서 작가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가 J가 자신의 작품을 카피했다고 내게 아주 미친듯한 메시지가 왔었다. 솔직히 세라믹으로 음식 만드는 사람들은 정말 몇만 명의 아티스트들이고 아무리 봐도 표절이 아니라서 주변에서 미술계에 있으신 분들에게 다 물어보았는데, 어이없다는 반응이었다. 게다가 우리 작가가 그분보다 1년 더 빨리 작품을 만들었다. 이것을 차근차근 설명해드리니, 그때는 다시 발끈하면서 이게 다 큐레이터의 잘못이라더라.. 그 작가를 선택한 게 나라서 내가 그분을 카피했다고 우기는 것이다. 


심지어 그 여자가 내 슈퍼바이저에게 나 자르라고 편지까지 썼더라, 그 여자. 


당시에는 굉장히 모욕적이었고, 그 유치한 방식들에 치를 떨었다. 심지어 인종차별까지 느끼기도 했다. 왜냐면 똑같은 문제를 가진 백인 호주인들에게 아무 말도 못 하고 항상 친절하게 행동하면서 막상 이민자인 J와 내게 이런 트집을 잡아서 행동하는 게 빤히 보였으니까. 어쨌든, 내 슈퍼바이저는 그 여자는 진짜 멍청하다며 완전히 무시했고, 오히려 보란 듯이 더 J를 옹호해주기까지 했다. 그래서 그 여자는 더 약이 바짝 올랐었고, 나를 개인적으로 잘 모르는 호주 미술계에 있는 사람들에게 내가 그 여자는 내가 그 여자 작품을 훔쳤다고 소문내서 몇몇 호주 아티스트가 나를 끊기도 하였다. 끊는 건 좋은데, 사실 확인도 안 하고 그랬다는 게 정말 상처였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배운 것들이 아주 많았던 시간들이었다. 그 일을 겪은 후, 내가 왜 호주에서 악착같이 박사 학위를 따고 더 공부를 해야 할지에 대해서 명확해졌더라. 


백인들 천지(혹은 영어가 모국어라서 이미 마인드가 백인)의 호주 미술계에서 나 같은 아시안이 그들보다 평균적으로 높은 '학위' 조차도 없었다면 그들이 나를 얼마나 무시하고 핍박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아찔했다. 



내 아티스트의 도자기 작품

내 전시회에 있었던 작품 중의 하나인데, 도자기에 조개를 붙였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표절 시비가 났다. 이번에도 내 주변 미술계 사람들 거의 대부분 상식적으로 이해를 하지 못했다. 누구보다도 표절에 예민한 나인데, 이건 정말 백번 천 번 아무리 봐도 표절은 아니었다. 작품에 조개 사용하면 다 표절이구나.. 이번에 표절 시비 낸 사람은 자신이 조개를 창조했나 보다. 


특히 카피했다는 원본 보고 뿜었다. 전혀 비슷한 것이 없다. 

그저 조개 모양을 만들어서 도자기에 붙인 게 크게 문제가 되었을 뿐. 


그래, 아이디어 카피할 수도 있다. 근데, 조개를 미술에 사용하면 다 카피인가. 

이건 솔직히 아이디어 축에도 못 끼잖아... 



호주의 유명한 주유소 체인인 쉘 주유소

호주의 유명한 주유소 체인인 쉘 주유소의 로고이다. 쉘 주유소가 표절 시비 내신 그분에게 소송해도 할 말 없으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생각에 이 로고는 그분의 작품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쓰였다. 하여튼, 전시회 작품에서 조개로 트집 잡히다니.. 


이번에는 누구냐고? 작년에 내게 표절로 시비 걸었던 그 여자의 남자 친구였다. 남자 친구인가.. 쨌든. 

할 말 하지 않겠다. 이번에도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았는데, 호주 미술 잡지에 우리 작가가 자신을 표절했다고 까는 글을 써서 그게 출간이 되었다. 응?....


호주 미술계에서 나름 지위가 있으신 파워가 있으신 분이었고, 그런 분이 왜 그 멍청한 여자의 스폰서인지(혹은 진짜 사랑인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되지만.. (솔직히 그 여자가 이쁜 것도, 재능 있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서로 가정도 있는 분들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왜 이래.) 본인 인생이니 그다지 관여하고 싶지는 않다. 그 여자의 농간이든 아니든, 나이도 있으신 분이 왜 젊은 아티스트들에게 이러시는지 굉장히 슬펐었다. 


그분이 표절에 대해서 표절의 피해자처럼 쓴 글을 실은 잡지가 출간된 날은 대략 5일 전이었고, 이 날은 하필 그 작가의 생일이었다. 작가의 이름은 실명으로 언급되지 않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인스타에 그분의 글을 옹호하며 비난을 시작했다. 잡지에 이름이 직접적으로 실리지 않았을 뿐, 바로 우리 작가가 자기 작품 카피했다고 사람들에게 다 말하고 있다. 


아마 사진도 보지 못한 대중들은 고작 '조개' 때문이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 못하겠지.. 

작가는 무척이나 수치스러워했으며, 슬퍼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고작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이었고, 따뜻한 핫 초콜릿을 사서 주는 일뿐이었다. 그날은 정말 힘없고 권력 없는 나 자신이 싫더라. 




내가 지난번에 일을 하면서 아주 부당한 일을 겪었는데, 그 일을 겪을 때에 그분 이름을 들었었다. 솔직히 이번 표절 문제도 억지라는 생각이 아주아주 많이 든다. 


인종차별을 겪을 때, 대부분 나에게 그러는게 '교육을 제대로 못 받은' 사람들이었다. 워낙 못 배우고 무식하니까 인종차별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영어와 백인의 피부색 말고는 우월한게 전혀 없다고 생각하는 부류이니까. 자존감이 낮아서 그런거지. 왜 인종차별 문제들을 겪을 때마다 '그분' 이름을 대면서 그분께 나를 이른다고 멍청한 여자들이 이러는지 진짜 언젠가 그 분에게 그 이유를 꼭 여쭤보고 싶다. 나는 사실 그게 제일 충격이었어. 그걸 깨달은 순간, 그분과 사이가 완전히 틀어졌다. 


작가랑 이분은 아주 오랜기간 가까이서 함께 일을 했었는데, 개인적은 문제도 서로 없던 것으로 알고 있다. 다만, 이 작가가 최근 아주 잘 하고 있었는데.. 그분에게는 그게 위협적으로 꼬이셨구나라고 밖에 안 보인다. 

우리는 이분 다음 세대의 이 분야의 젊은 사람들인데, 그냥 자기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이렇게 싹을 잘라버리려고 애써 노력하시더라. 이런 분들 때문에 몇몇 사람들은 질려서 호주 미술계를 떠나고, 자기 작품을 하는 것을 두려워하게 된다. 그분의 이러한 행동에 대해서는 오래전부터 들어서 익히 알고 있었다. 연말에 호주 미술계에서 이분의 이러한 행동을 겨냥한 책이 나온다고 출판된다고 한다. 얼마나 분하면 글쓴이가 책까지 썼나 싶다. 





얼마 전, 어떤 백인이 나에게 "네가 과연 호주 미술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며 비아냥 거린 적이 있다. 그래, '호주인'들이 속한 미술계에서 아시안은 어렵다는 거지. 피해의식 때문인지, 진짜라서 그렇게 느낀 건지 나는 그렇게 받아들였다. 대부분 아시아 사람들은 호주에서 아시안 미술을 취급하거나 아시안 전용 갤러리에서 일하고는 한다. 혹은 아시안 미술 전문가로 일을 많이 한다. 아시안으로 분리되어야 하는 내가 이 한가운데에 있으니.. 솔직히 힘들더라. 내가 이 길을 잘 선택한 건가, 나는 끝까지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정말 많이 들더라. 무엇보다 내가 들은 그 비아냥, 그게 지금 내가 겪는 현실이다. 


이번 일은 부분적으로 내 문제이기도 해서 생각이 많은 날들이었다. 

과연 내가 호주 미술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들과 고민들이 있었다. 


나는 누가 나를 무시하거나 내가 하는 일들이 안된다고 말하면 그걸 목표로 삼아서 악착같이 반드시 해내는 청개구리 심보가 있다. (ENTJ의 똘끼...) 

그들이 지금 바라는 건, 포기하고 떠나는 거겠지.

누구 좋으라고? 끝까지 버틸 거다. 난 심보가 못돼서 그들이 바라는 일은 절대로 못해준다. 

끝까지 버티는 사람이 이기는 거니깐. 


소수의 사람들이 이럴 뿐, 호주 미술계에서 여전히 좋은 친구들이 많다. 

어쩌면 그래서 내가 여태껏 이렇게 할 수 있는거겠지. 



슈퍼바이저가 문득 내게 말하더라.

"엘레인, 개인적으로 조만간 시간 있니? 우리 같이 뭐 좀 만들자. 나 작품에 조개로 아주 도배를 하겠어."



이날, 이런 씁쓸한 마음으로 걷다가 길에 보이는 젤라토 가게에 들어갔는데 대박 맛집이었다. 

직접 만든 젤라토인데, 얼마나 쫀득쫀득한지 감동이었다. 집 근처에 있으면 몇 통 사 왔을 텐데, 운전하는 동안 녹을까 봐 사 올 수가 없어서 아쉬웠다. 


먹으면서 이런 인스타 스토리나 올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웃긴 행위이지만 나름 속은 좀 풀리더라. 

웃긴 건 그분, 내 모든 인스타 스토리 꼭 확인하고 있더라. 뭐가 찔려서?

한국말 못 하지?! ㅋㅋㅋ 다음번에는 대놓고 영어로 나도 글을 써줘야겠다. 


알아듣고, 찔리고, 무언가라도 생각이라는 것을 좀 하실 수 있도록. 

아니, 깨끗하게 무시하고 내 자리에서 내 일에 최선을 다하는게 답일까. 



그래도 내 속이 안 풀렸는지.. 집에 가는 길에 호주 유명 젤라토인 메시나에 운전해서 1.5리터 아이스크림 한 박스를 집에 사갔다. 생일인 그 작가에게도 젤라도 바우처 하나 사서 선물해줬다. 


너도 단거 먹고 속 풀어.. 


제발, 내 살 좀 뺄 수 있도록 스트레스 안 받으면 좋겠다! 


결론은.. 이 일은 이걸로 끝이다. 하지만 너무나도 씁쓸한 경험이었다. 

이 일 이후로 완전 번아웃 되었었다. 그냥, 다 너무너무 질려서. 


그래도 나는 오뚜기 같은 사람이니까 7번 넘어져도 8번 일어나야지. 

단거 먹고 얼른 다시 일어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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