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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레인 Apr 06. 2022

호주 시드니의 패딩턴 지역에서 큐레이터로 전시회를 열다

Ceramics and Emotions, 전시회 준비 과정들

호주 시드니의 패딩턴 지역에서 큐레이터로 전시회를 열게 되었다. 

원래 작년부터 기획했던 전시회였는데, 시드니가 코로나로 인해 도시가 락다운 되면서 미뤄졌었다. 그래서 올해 1월에 다시 한번 날짜를 잡고 기획했었지만.. 기존 우리 갤러리 건물이 팔리는 바람에 또다시 미뤄졌었다. 


그러다가 좋은 장소를 찾게 되어서 이렇게 다시 전시회를 열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처음부터 기획하고 큐레이터로 일한 이 전시회에서는 호주 신진 작가 10명이 참여했으며, 이번에는 지난번 전시회와는 달리 무척이나 순조로웠다. 아니, 진행 과정은 분명 순조로웠는데.. 일이 좀 있기는 했다. 차마 웃지만은 못할 그 일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다루는 걸로. 


그럼에도!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전시회였다. 


생전 내게 절대 화를 안내는 마음이 넓은 슈퍼바이저의 도움과 이 재능 있는 작가들이 없었더라면 아마 이 전시회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감사합니다 모두들, 같이 일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정말로. 


호주 시드니 시티 옆의 패딩턴이라는 땅값 비싼 동네에 위치한 아담한 갤러리였다. 



Artist Tika Robinson's artwork

10명의 아티스트들을 통제하는 건 솔직히 쉽지 않았다. 지난번 글에도 다뤘듯이 유독 좀 느린 호주 사람들 특유의 진행 과정에 속이 답답하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날짜가 다가왔을 때, 모두들 하라는 대로 잘 따라와 줬고 차근차근 아주 잘해줘서 감사했었다. 


1에서부터 10까지 사소한 일들조차도 관리하고 진행하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작년 전시회처럼 속 썩이는 무책임한 미친놈은 아무도 없었기에 감사한 마음으로 아주 재밌게 일을 했었다. 


세라믹을 다루는 전시회라서 작품들 무게가 상당했는데, 작가 중 한 명인 티카 로빈슨의 경우에는 조수석에 작품을 싣고 왔다. 처음에는 솔직히 좀 무서웠었다, 너무 디테일한 사람의 형체가 조수석에 있으니깐! 


저 작품들 옮기는데, 진짜 너무너무 무거워서 고생 꽤나 했었다. 

혹여라도 깨질까 봐, 남에게 쉽사리 맡길 수도 없었다. 



한국에서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호주 미대에서 힘들게 배운건 페인트칠이다. 특히 작품을 올려놓는 저 선반을 하얗고 깨끗하게 칠하는 걸 잘해야 한다. 그리고 못질.. 벽에 못 자국 감쪽같이 메꾸는 법 등등.. 


누가 그랬는가, 큐레이터는 그림 걸고 설명만 해주면 되는 우아한 직업이라고. 

큐레이터는 미술계에서 모든 것을 할 줄 알아야 하는 노비이다 노비. 

우아한 노비. 


기본적으로 글도 잘 써야 하고, 전시회 기획도 창의적으로 해야 하며.. 작가들의 작품에 공감해주고 소통해줘야 하며(솔직히 무슨 일을 하든지 사람 상대하는 게 제일 힘들다.) 작품 설치 작업은 기본으로 할 줄 알아야 한다. 즉, 공구와 친해야 한다. 


내가 작가로 전시회에 참여할 때는 그냥 작품만 휙 주고 가면 그만이었는데, 막상 큐레이터로 일해보니까 해야만 하는 일들이 너무너무 많아서 때로는 멘털이 무너질 뻔도 했었다. 그럴 때마다 우리 슈퍼바이저가 그랬다. "엘레인, 완벽하게 잘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 말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내 성미에 그게 절대 용납이 안된다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왼쪽 끝의 남자애는 라끌랑이라는 내 대학교 친구인데, 이날 도와주려고 일부로 시간 내서 와서 큼지막한 힘쓰는 일들을 해줬었다. 고마워 라끌랑... 


3년을 얼굴만 알고 지내다가 졸업하기 바로 직전에 친해진 라끌랑. 


지금은 코로나에 걸려서 누워있는 라끌랑. 도라지차라도 끓여서 갖다주고 싶지만 혹여라도 라끌랑 남자 친구가 오해할까 봐, 응?... 어쨌든, 누군가 라끌랑 너를 챙겨주겠지라고 생각하며 패스. 


라끌랑이 다 나으면 꼭 같이 밥 먹어야겠다. 평소에 고마운 마음을 많이 표현 못해서 미안한데, 맛있는 거 같이 먹으면 알아주려나 내 마음. 



생전 얼굴 처음 보는 대학교 후배님들이 오셔서 경험한답시고 도와주셨었다. 

토끼들 같아서 무척이나 귀여웠던 아이들. 


덕분에 설치 작업은 하루 만에 끝낼 수 있었다. 



내가 이 날, 재빨리 도미노를 시켰어야 했는데.. 생각이 짧았었다. 나를 포함해서 모두들 피곤한 모습이 보였기에 카페인이 필요하다고 판단해서 각자의 취향대로 커피를 사서 친히 배달했다. 미안해, 내가 올해 전시회들에서 더 작품 많이 팔고 커미션 받으면 크게 밥 사줄게.  



모두의 도움으로 하루 만에 설치 작업이 순조로이 잘 끝났다. 큐레이터의 부족함으로 한때는 총체적 난국이었지만 침착하게 아무렇지 않은 척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일을 하니까 또 금방 해결되었다. 



이날, 와인은 스폰받았다!!! 

대략 50병 정도 준비했는데, 남은 와인 별로 없어서 아쉬웠다. 

저 와인, 개인적으로 무척이나 맘에 들었다. 


코스트코에서 사 온 프레즐이랑 유기농 말린 무화과. 

와인 안주로 딱이었다. 


조금씩 야금야금 사이사이에 마시고 먹은 건 안 비밀. 



전시회 한쪽 구석에는 관객들이 도자기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전시회 설명서를 접고 또 열심히 접었다. 

고사리 같은 내 손으로 직접. 



마음이 뭔가 묘했다. 결국 하긴 하는구나라고. 

설레기도 하고, 많이 긴장되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할 수 있었던 건.. 주변의 도움과 서포트 때문이다. 

감사합니다 모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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