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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동행

by 돌부처

타닥. 타다닥.


송진을 머금은 장작이 비명을 지르며 타들어 갔다. 건조한 마찰음만이 폐가의 앙상한 서까래 사이를 울리고 있었다. 화전민이 버리고 간 썩은 초가집. 얽기섥기 엮인 수숫대 지붕 틈새로 검은 눈발이 들이치는 거처였다.


"......"


겐지는 말없이 검신(劍身)을 문지르고 있었다.


그는 칠흑색 옻칠 갑주를 벗어젖힌 채, 다부진 상반신을 모닥불 열기 앞에 드러냈다. 사내의 왼쪽 가슴, 심장이 뛰는 자리에는 불길한 검은색 거미줄 문양이 피딱지처럼 들러붙어 있었다. 그는 기름 먹인 무명천으로 그 부위를 신경질적으로 문질렀지만, 살갗 깊숙이 똬리를 튼 먹물 자국은 흐려지지도, 지워지지도 않았다.


"가죽을 벗겨내도 소용없다."

첸이 콧방귀를 뀌었다.


도사는 두꺼운 수정 돋보기를 눈두덩이에 바짝 대고 제 가슴팍을 훑고 있었다. 겐지의 가슴에 새겨진 것과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동일한 저주의 낙인이 그의 마른 갈빗대 위에도 기생하고 있었다.


"단순히 피와 살에 스며든 독이 아니야. 혼 자체에 지져진 낙인이지."


첸의 목소리에는 낭패감은커녕 끔찍한 호기심이 진득하게 묻어났다. 그는 짐승 뼈로 만든 붓대에 붉은 주사(朱砂)를 묻혀 가죽 서책 위에 미친 듯이 글귀를 갈겨썼다.


[실험체 403, 404, 405호. 세 혼령이 끔찍하게 뒤엉킨 현상 기록. 사슬이 이어지는 거리는 십 장(十丈) 안팎. 그 선을 벗어나면 맥박이 끊어질 듯 요동치며 심장이 썩어 들어가는 고통이 뒤따름.]


"역겨워."


연이 거친 마른침을 뱉어내며 흙벽에 뒤통수를 기댔다. 소녀의 안색은 달빛에 바짝 마른 송장처럼 창백했다. 무리하게 무구를 부린 탓에 단전은 텅 비어버렸고, 핏줄을 파고든 차가운 사슬의 기운이 숨통을 짓누르고 있었다.


"그래서, 이 흉측한 꼬라지가 언제 끝나는 거냐고 물었다."


연이 시퍼런 눈을 치켜뜨며 첸을 노려보았다. 시체 썩은 내를 풍기는 저 늙은 도사가 모든 화근이었다. 저 영감이 굳이 무덤 파기를 고집하지만 않았어도, 그 불길한 구덩이를 들쑤시지만 않았어도 명줄이 이렇게 고약하게 꼬이지는 않았을 터였다.


"사라지는 기한? 평생이다."


첸이 돋보기를 거두며 덤덤하게 내뱉었다. 그는 혀끝으로 붓털을 핥아내며 연의 핏자국으로 얼룩진 몰골을 응시했다.


"우리 셋의 명줄은 불에 달궈진 쇳물처럼 한데 들러붙어 버렸지. 말하자면, 그 영석 요물이 우리 셋의 몸뚱어리를 하나로 착각한 게야. 무당들의 케케묵은 입을 빌리자면... 지독하게 얽힌 업보라고나 할까."


"아가리를 찢어주지!"


겐지가 칼집의 코등이를 걷어차며 몸을 일으켰다.


콰당!


장정의 묵직한 발놀림에 썩은 마룻바닥이 맥없이 비명을 질렀다. 무사의 두 눈에서 형형한 살기가 요동쳤다.


"내가 가야 할 길엔 피비린내가 기다리고 있다. 네놈들의 한가로운 수작질에 어울려줄 여유 따윈 없어."


겐지는 거칠게 옻칠 갑주를 집어 들었다. 그가 향해야 할 곳은 이 얼어붙은 북방이 아니라 남풍이 부는 항항(港缸), 뱃길이 열려 있는 남쪽 끝자락이었다. 그러나 첸은 이죽거리며 비열한 냉소를 터뜨렸다.


"가 보시지. 서른 발자국을 떼기도 전에 네놈의 염통이 먼저 펑 하고 터져 죽을 테니."

"......무엇이 어째?"

"직접 몸으로 증명해 보란 소리다. 아까 강둑에서 네놈의 내장을 쥐어짜던 그 아찔한 감각을 잊지는 않았겠지."


겐지의 턱뼈가 부서질 듯 맞물렸다. 얼어붙은 강바닥에서 감내했던 그 끔찍한 괴로움이 뼛속을 타고 역류했다. 심장 전체를 누군가가 시뻘겋게 달군 무쇠 집게로 파내어 비틀어 짜는 듯한 참혹한 감각. 평생을 전장의 진창에서 구르며 살이 찢기고 뼈가 으스러지는 타격마저 훈장처럼 이겨내 온 그였지만, 아까의 고통은 껍데기를 넘어 혼을 두들겨 부수는 듯한 재앙이었다.


"목을 치면... 사슬도 끊어지나."


겐지의 거친 손아귀가 장도의 칼자루를 역수로 틀어쥐었다. 그의 뱀 같은 시선이 첸의 펄떡이는 목줄기에 꽂혔다. 저 놈의 숨통을 일격에 끊어내면 이 끔찍한 그물망도 바스러질지 모른다는 짐승 같은 셈법이었다.


"그 반대다."


첸이 탁한 가래를 삼키며 비웃었다.


"셋 중 하나의 심장이 멎으면, 나머지 둘의 내장도 잇따라 터져 나가지 않을까?"

"......!"


연과 겐지의 호흡이 싸늘하게 굳어버렸다.


"혼이 한데 얽혔다고 똑똑히 일러주지 않았나. 세 심장에 켜진 촛불 중 하나라도 불이 꺼지면, 이어진 심지들을 타고 나머지 불씨들도 줄줄이 사그라지는 이치야. 살고 싶으면 넌 내 목숨을 지켜야 하고, 저 눈먼 계집의 목숨도 죽기 살기로 감싸야 해."


첸은 구역질이 밀려올 만큼 뻔뻔하게 어깨축을 흔들었다. 지옥보다 더 악랄한 굴레였다. 당장 서로의 목줄기를 끊어내지 못해 안달 난 세 짐승이, 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서로의 피 한 방울 흘리지 않도록 방패막이가 되어야 하는 기구한 처지.


"수작질 마..."


연이 갈라진 목청을 쥐어짜며 중얼거렸다. 허나 여지없이 흔들리는 그녀의 두 눈에는 부인할 수 없는 끔찍한 광경이 맺혀 있었다. 자신의 명치와 도사의 가슴, 저 사나운 백정의 심장을 세 갈래로 엮어낸 시퍼런 기운의 실타래가 마치 하나의 핏줄처럼 생명의 맥박을 나르며 진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 이 폐가에서 늙어 뒤질 때까지 다 같이 살란 거냐!"


연이 부서진 발톱을 세우며 악을 썼다.


"단 하나의 방도만이 존재하지."


첸이 피 묻은 서책을 접어 품에 갈무리하며 기립했다. 그는 외풍을 막아놓았던 썩은 방문을 거칠게 발로 찼다. 북풍에 실린 검은 눈보라가 비명처럼 들이닥쳐 모닥불의 숨통을 위협했다. 도사의 길고 창백한 손가락이 칠흑빛 북방의 장막을 섬뜩하게 가리켰다.


"백두산."


돋보기 알 뒤편에 도사린 그의 눈빛이 광기로 번들거렸다.


"이 저주의 발원지. 그 영석의 기운을 토해낸 산군(山君)의 숨통을 마저 도려내는 거다. 굴레를 씌운 짐승을 죽여야만 이 빌어먹을 사슬도 바스러지지."


산군.


절대자의 이름이 폐가를 울리자, 연의 등줄기가 서늘하게 굳어버렸다. 피가 식는 듯한 공포와 참담함이 동시에 끓어올랐다. 그 시체의 산을 간신히 도망쳐 나왔건만. 제 발로 그 무간지옥 한복판에 다시 대가리를 밀어 넣으란 소리였다.


"하! 거기가 어떤 수라도인지나 알아?"


연이 피를 토하듯 절규했다.


"내 머릿속에 똑똑히 새겨진 사실이다. 거긴 거대한 무덤이지."


첸이 감정이 싹 가신 싸늘한 목소리로 내뱉었다.


"여기서 비참하게 말라 죽거나, 기어 올라가서 산군의 숨통을 뜯어내거나. 갈림길 따윈 처음부터 없었어."


겐지는 대꾸 없이 장도를 칼집에 꽂아 넣었다. 남쪽 바다를 향하던 사내의 발걸음은, 당장 하루를 더 연명하기 위해 저주받은 북쪽 산맥으로 꺾이기 시작했다. 세 명의 끔찍한 학살의 구덩이를 향해 억지로 묶여버린 셈이었다.


"내가 길을 열겠다."


겐지가 가장 먼저 몸판을 돌렸다. 사내는 일말의 주저나 미련 없이 부서진 문틀을 넘었다. 검은 눈보라 속으로 삼켜지는 그의 널찍한 등허리는 바위처럼 단단하고 요지부동이었다.


"참 성격 급한 자로군."


첸이 혀를 차며 누런 봇짐을 어깨에 메었다. 도사는 연에게 시선 한 자락 베풀지 않은 채 흙바닥을 밟았다. 그저 앞서가는 개의 뒤를 따르라는 듯 무심한 턱짓만이 전부였다.


"따라올 거냐, 말 거냐? 저놈과 거리가 벌어지면 심장이 터지는 발작이 다시 네 통점을 짓이길 텐데."

비루하고 비참했다.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모멸감에 피눈물이 솟구쳤다. 그러나 치졸하게도 살고 싶다는 짐승 같은 본능이 그녀의 몸뚱이를 일으켜 세웠다. 연은 꺾인 무릎의 고통을 악물며 일어섰다. 진흙에 처박힌 방울을 거머쥔 채 찢어진 치맛자락을 동여맸다.


"올라가."


연이 피 끓는 목소리를 토해냈다.


"올라가면 그만이다."


세 구의 일그러진 혼들이 검은 눈보라의 심연 속으로 자박자박 걸어 들어갔다. 서로의 목숨을 앗아내지 못해 안달 난 학살자들이, 그 누구보다 서로의 등을 필사적으로 지켜야만 하는 기생 관계로 전락했다. 눈밭 위로 질척하게 새겨진 세 갈래의 발자국은 일제히 북풍이 우는 산맥을 향해 뻗어 나갔으나, 그 흔적만큼은 결코 한데 섞이는 법 없이 각자의 앙상한 길을 외롭게 걷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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