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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국국어교사모임 Jan 26. 2021

코로나19 이후, 학교의 미래를 고민하다

이욱 청주 오송고 forsky00@hanmail.net

2020년 3월에 학교가 맞았던 혼란은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한 번도 가 보지 않았던 길을 타의에 의해 걸으며 우리 교사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어려움을 견뎠다. 코로나19로 시작된 학교의 변화는 지금까지 유지해왔던 수업의 모습을 파격적으로 바꾸었다. 혼란스런 시기를 겪으며 앞으로 학교는 어떤 모습으로 변해 갈지를 생각하며 한국교원대학교 교육정책학과 김성천 교수와 만났다. 김성천 교수는 김상곤 전 교육부총리 시절에 교육부에서 정책 전문가로 활동을 했다. 


코로나는 학교에 무엇을 주었나? 

이욱: 코로나19 사태가 우리 교육에 끼친 영향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성천: 먼저, 기회의 측면에서 보자면 과거에 말로만 있었던 에듀테크나 원격교육 같은 미래 교육 담론들이 빠르게 도입되었다는 측면에서 파괴력이 있었습니다. 위기의 측면에서는 우리 교육의 민낯이 드러났습니다. 교사의 수업 편차에 의한 학습의 질 관리가 어려워졌고 교육 불평등 현상이 더욱 심화되었습니다. 하지만 깨달은 사실도 있습니다. 혁신 교육에서 강조해 온 학습공동체, 수업에 대한 전망을 공유하고 협력하는 문화의 가치가 중요해진 것입니다. 

이욱: 이 상황과 관련하여 교육행정 분야에 대한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김성천: 행정을 이야기하면서 항상 감사, 규제, 지침, 통제 같은 용어를 많이 씁니다. 이런 말들이 많이 쓰인다는 것 자체가 기본적으로 불신의 체제 속에서 움직여 왔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다 보니 단위 학교의 자치를 보장하고 교사가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춰 주지 못했습니다. 이런 행정 우위 체계를 학교를 지원해 주는 체제로 바꿔야 할 필요가 있는 겁니다. 예를 들면 학교는 어떤 업무를 처리할 때 항상 지침을 중심으로 진행을 합니다. 이러한 지침 중에는 정말 필요한 지침들도 있지만, 수정이 필요하거나 불필요한 지침들도 많습니다. 과도하게 지침들이 양산되어 교사나 학교의 창의성, 자발성, 역동성을 제한하는 결과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에 적용해 보면 중앙정부, 질병관리본부의 판단을 따라야 하는 구조에서 교육 자치, 학교 자치가 위축되는 요소들이 있었습니다. 당장 위기 상황에 대응하려다 보니 모든 사례를 중앙에서 통제할 수 없어 현장에 자율성을 부여해야만 처리되는 일도 생겼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예산 활용 문제가 그렇습니다. 자율성 위축과 자율성 확대가 섞인 상황이었습니다. 

이욱: 학교 자치, 학교의 자율성을 강조하셨습니다. 학교는 교육청이 전면등교 지시를 내려 줄 것을 기대하고, 교육청은 학교에 전면등교 여부를 결정하라며 서로 떠넘기는 듯한 모습도 일부 보였습니다. 교육 자치를 이루기 위한 학교의 책임은 어디까지라고 생각하십니까?

김성천: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한 자치가 벌어지는 상황이 문제입니다. 이를 ‘선택적 자치’라고 합니다. 자치는 전문성과 신뢰성에 민주성이 결합이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아직 우리에게는 이러한 경험 체계가 미비합니다. 관성처럼 상급 기관의 지침대로 일해야 편한 마음이 있습니다.

자치를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인 책임을 구성원인 교사, 학부모, 학생이 함께 부담하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어려운 길이지만 이래야 전문가로서 자존심을 지키고 우리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편한 타율’보다 ‘피곤한 자율’을 추구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중등교사의 교직 문화를 복종과 유능으로 설명하는 연구가 있습니다.복종은 상급 기관, 관리자의 지시를 이행하는 것을 말하고, 유능은 수업을 잘하고 싶어 하는 욕구를 의미합니다. 이때 유능함은 개인 차원을 넘어서야 합니다. 같은 교과, 같은 학년 선생님들이 함께 수업을 잘해야겠지요. 저는 전문성, 신뢰성, 민주성이 바탕이 된 집단 지성의 유능함으로 교직 문화를 바꿔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사 학습공동체를 구성하는 것도 그 일부입니다. 

이욱: 온라인 수업에서 교사별 수업 편차는 언론과 학부모들이 많이 언급하는데, 선생님이 보기에는 어떻습니까?

김성천: 선생님들 안에서 전문성 격차가 두드러져 보였습니다. 힘들고 어렵더라도 직접 수업 콘텐츠를 생산하는 선생님이 있고 이른바 수업 ‘관리형 교사’ 유형이 되어 다른 사람이 만든, 예를 들면 이비에스의 수업 콘텐츠를 활용하는 선생님이 있습니다. 1학기는 갑자기 닥친 위기 상황이었음을 감안하여 관리형 교사가 이해되는 면이 있었지만, 이 사태가 장기화된다면 이런 유형들은 교사의 정체성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겁니다. 전국 단위에서 몇몇 교사가 강의하고 그 영상을 시청하는 형태가 계속된다면 학교와 교사의 존재 이유에 대한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공교육의 신뢰와도 연결이 되고요. 현재도 원격수업에 대한 여론을 보면 학부모들이 학교 수업에 많이 불만스러워합니다. 특히, 중하위권이나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 학습 관리가 어렵다고 많이 이야기합니다. 

이욱: 교사 간 격차 문제 해결을 위한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김성천: 수업 전문성 격차는 그전부터 있었습니다. 그 차이는 학교가 수업, 평가 방법, 교육과정에 대한 비전을 교사들과 공유한 적이 없었기에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교사가 어떤 학교로 발령을 받으면 곧바로 교실에 투입되어 수업을 합니다. 축구 선수가 작전을 모르는 상태로 투입되어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현재의 구조에서는 유능한 교사가 투입된다고 해도 제한된 범위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소진되기 쉽습니다. 이것은 교사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학교 문화, 체계의 문제로 접근해야 합니다.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교사의 차이를 교사의 개인기로 풀어 갈 것이 아니라 학교 차원에서 문제 상황을 분석하고 각 부분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이는 교사들이 협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위기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학교 단위의 논의와 합의를 통한 공동 규범이 만들어지고 공동 실천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래야 문제가 발생했을 때 서로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포용하고 협력할 수 있다는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학교 안 학습공동체가 중요합니다. 

이욱: “교사 개인 차원이 아닌 학교 차원에서 대응해야 한다”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사실 1학기에 아직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교사들에게 “필요한 장비를 지원해 줄 테니 신청하고 장비가 오면 바로 온라인 수업을 해라. 방법은 여기 매뉴얼을 참고해라”는 말에 당황한 교사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1학기에 온라인 수업이 진행되면서 에듀테크에 기반한 수업이 시험적으로 이루어질 때 학교마다 분위기가 많이 달랐습니다. 어떤 학교는 교사 간 정보 공유가 활발히 이루어지지만 일부 학교는 “튀지 말아라”, “당신이 그렇게 하면 나는 어떻게 하느냐”는 여론이 생겼다고 합니다. 이러한 차이는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김성천: 이번에 에듀테크를 빨리 접목한 교사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분위기가 일부 있었습니다. 이전에 혁신학교를 바라보는 시선도 마찬가지였는데요. 우리 교직 사회에 일명 ‘끌어내리기 문화’가 있습니다. 누가 혁신적인 제안을 했을 때 협력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못마땅하게 여기는 구성원이 있지요. 그러다 보니 어떤 학교에서는 학습공동체를 다른 교사의 눈치를 보며 숨어서 하는 가슴 아픈 일도 있다고 합니다.

학교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 같은 돌발 상황을 이겨 낼 뛰어난 능력을 갖춘 보석 같은 선생님들이 있습니다. 이분들을 무대 위로 빨리 올려서 이분들이 가진 가치관과 능력과 노하우를 전수받고 협업 체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 분들이 입을 닫고 개인기로 홀로 상황을 돌파하는 안타까운 구조가 만들어지게 됩니다. 같이 발전해 나가려는 태도가 절실합니다. 

이욱: ‘코로나 시대를 지나는 학교’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하신 말씀을 바탕으로 생각했을 때 학교와 교사는 어떤 부분에 중점을 맞추어야 할까요?

김성천: 에듀테크는 도구이지 목적은 아닙니다. 에듀테크로 구현되는 수업과 현실 수업의 원리는 다르지 않습니다. 수업은 교사와 학생의 관계성을 기반으로 해서 질문과 참여를 유도하고 삶과 결합해야 합니다. 여기에 에듀테크가 결합하고 아니고는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다만, 대면 수업에서 이뤄지는 상호작용의 질과 온라인 수업에서 상호작용의 질은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이 국면에서는 온라인 수업의 노하우를 공유하는 게 필요합니다. 수업에 쓸 수 있는 여러 도구를 활용하는 방법이나 아이들이 토론할 수 있게 만드는 플랫폼, 온라인상에서 활용 가능한 평가 방식, 수업에 대한 학생의 반응에 피드백을 하는 방법이 시행착오를 거쳐서 축적되고 있습니다. 이론적 지식이 아니라 실행을 바탕으로 쌓인 노하우, 이런 경험들을 “암묵지”라고 합니다. 지난 한 학기 동안 소중한 암묵지가 쌓여 왔습니다. 이를 교사 내면에만 두지 말고 끄집어내서 공유해야 이 상황을 헤쳐 나가는 무기가 됩니다. 

이욱: 수업에서 학생과 상호작용하는 것을 강조하는 것에는 모두가 동의합니다. 얼마 전 교육부 장관도 온라인 학습 상황에서 생기는 교육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실시간 쌍방향 수업을 확대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온라인 수업 방식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김성천: 수업의 효율성은 교과의 속성, 수업의 주제에 따라 녹화, 블렌디드(혼합), 실시간 방법이 고려되어야 합니다. 현재 시점에서 더 중요한 것은 ‘교사가 직접 수업 콘텐츠를 제작하느냐’, ‘기존의 자료를 활용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에듀테크의 가장 큰 장점은 실시간 피드백이므로 학생들의 수업 결과물에 대해 교사가 피드백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온라인 상황에서 학생 간 소통이 어려운 것도 문제입니다. 배움은 교사와 학생 사이에서도 일어나지만, 학생과 학생 사이에서도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핵심은 온라인에서도 교사와 학생, 학생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촉진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합니다. 

이욱: 교사가 직접 수업을 만들 수도 있지만, 고3 학생들에게는 수능 강의가 이미 이비에스에 마련되어 있습니다. 아이들의 특성을 반영한 수업은 교사가 잘할 수 있지만 수능만을 위한 수업이라면 이미 만들어진 수업을 넘어서기 어렵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김성천: 극단적으로 말씀드리면 수능 같은 표준화된 평가 도구에 초점을 맞춰서 교육과정이 편성된다면 교사가 필요 없을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교사는 어떤 역할인가에 대한 문제이기도 합니다. 이 고민에서 “가르친 자가 평가를 하는 방법이 옳다”는 교사별 평가 담론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우리 사회에서 공정성이란 담론이 강화되었습니다. 공정성은 다양성을 전제해야 하는데 지금 우리는 한 줄 세우기식으로 공정성 개념을 쓰고 있어 아쉽습니다.

수능을 없애는 것은 현재의 국민 정서상 어렵습니다. 그래서 수시와 정시를 철저히 분리하는 방법을 도입해야 합니다. 수시에는 수능 최저 등급을 반영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수능 문제 유형을 오지선다형에서 벗어나 논·서술형으로 하는 방안, 등급을 5단계로 줄이는 방안이 연구되고 있습니다.

이비에스는 아이들의 맥락을 고려한 수업을 만들 수 없습니다. 아이들의 배경을 알고 교사와의 관계성에 기본을 둔 수업은 학교에 계신 선생님들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각 개인이 가진 능력을 교육과정, 수업, 평가에서 이끌어 내는 주체는 이비에스가 아니라 ‘학교’라는 공동체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사교육이나 전국 단위 명강사가 할 수 없는 영역을 학교에 있는 선생님들이 해 주셔야 합니다. 

미래 사회에 학교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욱: 지금까지 코로나19 사태가 학교에 끼친 영향에 대해 말씀을 들었습니다. 코로나19 사태가 미래 교육을 빠르게 불러왔다는 말도 한편에서 나오고 있는데요.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또 그 미래에는 어떤 인재가 필요하겠습니까?

김성천: 앞으로는 학벌이나 학력주의는 약해지리라고 봅니다. 또 수능이라는 표준화된 한 번의 시험으로 평생이 결정된다는 인식이 흔들릴 것입니다. 따라서 평생교육과 직업교육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어 고등교육 전반에 변화가 있으리라고 봅니다.

지금까지는 평생교육이라는 개념이 꽃꽂이 같은 교양교육에 머물렀고 직업교육은 공공 부문과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고는 잘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는 이 부분이 활성화될 겁니다. 그렇게 되면 경쟁이라는 한 단어로 우리 교육이 설명되는 것에 변화가 일어나고, 대학 역시 서열화에 매몰되어 대학별 특성이 고려되지 않던 환경에 변화가 생길 겁니다.

이미 사회에서 요구하는 인재상이 바뀌고 있습니다. 과거 선진국을 따라가야 하는 추격형 경제체제에서는 뛰어난 암기력을 가진 주입식 교육을 잘 받은 순응적 인재가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글로벌 경쟁이 격화된 지금 상황에서는 창의성과 문제 해결력, 협업 능력을 가진 인재가 필요합니다. 청년들은 취업난에 허덕이지만, 기업은 쓸 만한 인재가 없다고 이야기하는 불균형 현상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학력의 개념을 다시 정의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역량이라는 말을 쓰는 데는 교육이 사회 변화를 주도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이욱: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반영된 내용을 말씀하시는 듯합니다. 말씀하신 미래 사회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교육의 방향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듣고 싶습니다.

김성천: 먼저 지금의 표준화된 체제를 바꿔 학생 개인별로 고유성을 발현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어 줘야 합니다. 두 번째로 학교 울타리 안으로 한정되던 배움의 범위를 학교 밖으로 넓혀야 합니다. 세 번째로 현재 분리된 유, 초, 중등 교육과 평생교육을 융합하는 것을 고민해야 합니다. 유연하고 다양한 교육 체제가 필요합니다. 

이욱: 선생님이 생각하는 미래 교육의 핵심 가치는 무엇입니까?

김성천: 문재인 정부에서 포용 국가라는 비전을 제시하면서 포용성이라는 복지 담론을 만들었는데 포용만 가지고는 포퓰리즘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포용성 담론에 혁신성, 다양성, 유연성을 결합해야 합니다. 여기서 유연성은 학력, 자격, 경력의 호환 체제를 말합니다.

미래 교육은 국제화(Global)에 있지 않고 지역(Local)에 있습니다. 현재 지방자치단체들이 모순된 모습을 보여주는데요. 지역 소멸을 걱정하면서 정작 지역에 남은 학생들보다 수도권에 있는 상위권 대학에 진학한 학생들을 우대합니다. 지역 밖으로 유출된 인재들을 지원하는 건 옳지 않습니다. 유능한 인재들에게 지역의 가치를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지역에 남아 지역의 경제, 문화 활성화에 이바지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줘야 합니다. 그런 인재들을 기르려면 교육과정의 지역화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지역 교육과정, 마을 교육과정을 통해서 학생들이 자기 고장에 애착을 갖게 해야 합니다. 대학과 지역 산업체가 계약학과 같은 방법을 통해 산학 연계를 하는 방법도 고려할 만합니다. 

이욱: 미래 교육의 방점은 지역에 있다는 말이 인상적입니다. 학교 울타리 밖에서도 배우는 ‘넘나들며 배우기’를 말씀하셨는데 학교에서 이것을 구현하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김성천: 첫 번째로 규모가 있어야 교육과정을 다양하게 할 수 있기에 교육청 단위의 움직임이 필요합니다. 농어촌에 있는 개별 학교에서 고교학점제를 하기에는 한계가 명확합니다. 세종시교육청을 보면 학교에서 열기 힘든 교과를 교육청에서 개설하고 학생들이 수강하게 합니다. 그동안은 교육청에서 학교에 예산을 주고 학교에서 업무를 처리하게 했지만, 다른 방법을 썼습니다. 2015 교육과정에는 교육감이 지정하는 지역사회 학습장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교육감이 대학, 공신력 있는 법인, 지방자치단체를 학습장으로 지정하면 지정된 단체의 강사가 학교에 찾아오거나 학생들이 지정된 단체를 찾아가 배울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학교에서 곤란해하는 교사 수급 문제가 자연스럽게 풀립니다.

두 번째로 교사가 지역의 물적, 인적 자원을 활용할 수 있는 연결 고리를 교육청과 지방자치단체가 마련해야 합니다. 현재의 순환 근무 체제 속에서 선생님들이 지역의 특색을 알고 활용하는 게 어렵습니다. 일부 교육청이나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선생님이 전입해 오면 학교 교육과정과 연계할 수 있는 지역의 주요 시설을 소개하는 시간을 운영하는데, 이 사례가 널리 퍼지면 좋겠습니다.

세 번째로 지역 단위 프로젝트 수업을 도입해야 합니다. 지역의 주요 현안을 학교 수업으로 가져와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는 수업을 한다면, 삶과 연계한 수업이 됩니다. 더 나아가서는 학교에서 교과목 개설권을 가져와 지역에 맞는 교과목을 만들어 지역에 대한 깊은 이해가 가능하도록 해야 합니다. 학교 자치의 핵심은 교육과정의 자치이고 교육과정 자치의 핵심은 교과목을 학교에서 만드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학교가 지역사회와 따로 있었다면 이제는 생태적인 관점에서 지역사회와 학교가 상생하는 모형을 연구해야 합니다. 

이욱: 지역의 여러 자원을 학교가 활용하면 학교교육이 다양해질 수 있겠습니다. 그러면 학교가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부분은 무엇일까요?

김성천: 학생들에게 지역 공동체가 지역을 가꾸는 모습을 학교에서 보여 주면 지역에 대해 자세히 배운 학생들은 성인이 되어 자연스럽게 자신의 전문성을 지역을 위해 활용하게 됩니다. 받은 만큼 환원되는 선순환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욱: 교사가 자기 지역을 잘 알아야겠습니다.

김성천: 지역마다 자원이 다양한데, 지역 네트워크가 핵심입니다. 그런데 이때 교사 자격증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요. 특성화고에 있는 산학 겸임 교사 체계를 일반고에도 적용하면 됩니다. 진로 교과 중에서 교원 자격증이 있는 사람이 가르칠 수 있는 과목군과 교원 자격증이 없어도 가르칠 수 있는 과목군으로 나누고요. 교원 자격증이 없는 사람이 가르치는 과목군은 평가 체계를 단순화하여 이수/미이수로 만드는 겁니다. 이런 과목을 학교에서 일정한 비율로 한정하면 학교마다 특색이 있으면서도 안정적으로 교육과정을 운영할 수 있습니다. 

이욱: 지금 학교 모습과 비교해서 많이 발전된 청사진이 그려지네요. 그런데 이렇게 교육과정을 하려면 학교의 재량권이 확대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까지 해 온 체계를 학교가 벗어나기도 쉽지 않아 보이고요.

김성천: 지금까지는 국가가 만들어 주는 교육과정이었고 수능에 종속된 교육과정이었습니다. 학교에서 노력할 필요가 별로 없었고, 전가의 보도처럼 수능을 내세워 교육과정을 편성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이러한 관성이 깨졌습니다. 이런 방법으로 대학 진학률을 높이는 데 한계가 뚜렷해졌기 때문입니다. 최근에는 학교 안에서 학생들의 요구, 다시 말해 진로 수요를 파악하여 이 요구를 수용하는 쪽으로 교육과정을 고민하는 구조가 생겼습니다. 

이욱: 여러 교사들이 교육과정의 변화와 수업의 혁신을 시도하다가 진학 문제 앞에서 예전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많이 봤습니다. 일부 학생과 학부모들이 이전의 교육 방식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김성천: 사교육이 조장하는 불안 마케팅과 과거 자신들이 경험한 학교를 생각하다 보니, 학생과 학부모에게 그런 경향이 있습니다. 부모 커뮤니티를 활성화하여 깨어 있는 학부모들이 다른 학부모를 설득해 나가도록 교육청과 학교가 여건을 만들어야 합니다. 교육 혁신에 학부모를 든든한 우군으로 만드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욱: 그렇다면 이렇게 변화하는 교육 환경을 위해 교사, 혹은 교사 공동체가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일까요?

김성천: 선생님들이 수업을 사유지로 여기는지, 공유지로 바라보느냐의 차이가 있습니다. 잘되는 학교의 교사들은 수업을 철저히 공유지로 봅니다. 수업을 자신만의 폐쇄된 영역으로 보지 않습니다. 수업은 공유하고, 나누고, 도움말이 오가야 한다는 인식이 중요합니다.

교사는 임용 후 5년 차까지 급격히 성장하고, 5년 이후에는 학생과 관계 형성법을 터득하고 교과 내용을 상당 부분 파악하면서 자신감이 생깁니다. 그런데 이 시기에 그대로 굳어져서 화석화가 되면, 속된 말로 ‘꼰대’가 되고 맙니다. 꼰대가 되지 않으려면, 교사는 수업을 나누고 성찰을 계속해야 합니다. 5년 차 이후에는 경력이 쌓인다고 해서 교사의 수준이 높아지지 않습니다. 

이욱: 선생님 말씀처럼 수업 공유의 필요성을 느끼는 교사가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동료 교사와 대화를 해 보면 학생에 관한 이야기는 많이 하는데 수업에 관한 이야기는 자주 하지 않습니다. 교육청에서도 학교 안에서 수업 공유를 활발히 하기 위해 ‘전문적 학습공동체’를 장려하지만 학교에 따라 편차가 무척 큽니다.

김성천: 학습공동체는 혁신학교에서 자발적으로 시작한 모형입니다. 그 후에 교육청 정책으로 들어오면서 ‘전학공’이란 개념으로 보편화되었습니다. 문제는 형식적으로 실천하는 학교들도 느는 것입니다. 학교의 선배 교사들이 학습공동체로 성장한 경험이 없어서 그 쓸모를 알지 못하고 ‘교사들이 모여서 논다’고 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학습공동체에는 먼저 수업을 공개하고 구성원들을 이끄는 영향력 있는 리더가 필요합니다. 교사들이 의무로 채워야 하는 학교폭력과 성교육과 같은 연수 시간을 학습공동체로 해서 제도가 의미 없어지기도 합니다. 

이욱: 그렇다면 내실 있는 학습공동체를 만드는 방법은 무엇이 있겠습니까?

김성천: 학습공동체가 성공하려면 첫 번째로 구성원 사이에서 철학을 공유해야 합니다. 학교 일로 바쁜 가운데에서도 굳이 모여야 하는 당위성을 찾아야 합니다. 이 모임을 통해서 학교도 성장하고 개인도 성장한다는 의식이 구성원들 사이에 만들어지는 것이 가장 먼저입니다.

두 번째로는 우선순위입니다. 야간자율학습이나 방과후학교를 중요하게 보면서 정규 수업에 대해 고민하는 학습공동체는 뒤로 미루는 문화를 바꿔야 합니다. 학교의 우선순위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이 필요합니다.

세 번째는 선생님이 학습공동체를 안전하다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선생님들이 어떤 말을 해도 수용이 가능한 공동체를 만들어서 선생님들의 신뢰를 얻어야 합니다. 수업에 대한 자신의 민낯이 드러나도 괜찮은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으면 자신을 포장하는 경우가 생기게 됩니다.

학습공동체를 만들 때 전체 교사의 참여가 부담스럽다면 우선 뜻 맞는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수업을 보고 생각을 나누는 문화가 쌓여야 합니다. 학교 안에는 각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분들이 있습니다. 이분들이 각자 배운 전문성을 풀어내고 다른 교사들과 공유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야 합니다.

운영 기술도 필요합니다. 처음에는 관계를 형성하고 선생님들의 성장하고 싶은 욕구를 충족할 수 있게 수업을 화두로 큰 모임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 뒤에 관심사나 교과에 따라 분화시켜 나가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혁신적인 수업은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 

이욱: 이제 교사의 본질인 ‘수업’에 초점을 맞춰서 이야기를 들었으면 합니다. 선생님이 생각하는 수업 혁신은 지향점을 어디에 두어야 할까요?

김성천: 혁신은 완성형이 아니고 진행형입니다. 지금까지 해 오던 수업에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부터 출발합니다. 여기에서 변화가 시작됩니다. 여기에 주체성과 자발성이 더해져 확산이 되면, 혁신이 진행됩니다. 사람은 항상 편안함을 추구하게 되어 있습니다. 수업도 지금까지 해 온 대로 하는 것이 가장 편합니다. 수업 혁신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성찰의 과정이 있습니다. 그리고 교사가 가르친다고 해서 학생이 자동으로 배우지는 않기에, 배움의 원리를 고민하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여러 가지 수업 방식들이 많이 도입되었지만 좋은 수업의 본질은 삶과 어떻게 결합하는지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학생이 배움을 계기로 자신의 삶을 바꾸는 실천을 하게 하는 길을 고민해야 합니다. 

이욱: 학생들의 삶과 결합되는 수업이라는 말이 마음에 와닿습니다. 그런 혁신적인 수업을 만들기 위해 교사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나 태도는 무엇이 있을까요?

김성천: 수업의 고수들을 보면 항상 좋은 동료들과 상호작용을 합니다. 탁월한 교사는 혼자 뛰어나기보다 자신이 속해 있는 학습공동체 안에서 성장해 나갑니다. 그리고 그 공동체에 들어온 목적을 달성한 후에도 떠나지 않고 지켜 나가면서 자신이 받은 경험을 전수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또 하나는 끊임없는 학습입니다. 시간을 정해 놓고 모여서 꾸준히 공부하는 시간이 쌓이면 차원이 다른 성취를 이루게 됩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투자가 필요합니다. 문제집만 보는 것이 아니라 교육과정, 수업, 문학, 사회 쟁점에 관심을 두고 시간을 들여 들여다봐야 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자기 영역을 만들고 다른 교사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교사를 업로드 유형, 다운로드 유형, 다운로드도 하지 않는 유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교사들이 자신이 실천한 것들을 공유하고 나누는 업로드 교사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욱: 마지막으로 전국의 국어 선생님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을 해 주셨으면 합니다.

김성천: 제가 만나 본 학교 혁신 현장에 대체로 국어 선생님들이 계셨습니다. 그 이유를 국어라는 교과의 특성상 문학을 기반으로 인문, 사회를 넘나드는 다양한 분야의 독서가 바탕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짐작합니다. 그리고 전국국어교사모임이라는 전통이 있는 모임에서 사회의 변화, 학교의 변화, 수업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문화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역사 속에서 도산 안창호, 남강 이승훈, 이오덕 선생님처럼 우리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교육에 헌신하여 교육으로 사회를 바꿔 나간 선구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존경받는 교육자가 사회의 리더 역할을 했던 겁니다. 그러나 현재를 보면 교육이 사회를 이끌기보다 세상이 교육을 걱정해서 안타깝습니다. 어느 순간 우리의 교육 운동이 사회를 이끌어 나가기보다 교원의 이익에 매몰되지 않았느냐는 고민을 해 봅니다.

당부드리고 싶은 말씀은 교원 사회의 자정 운동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문가로서 존재하고 사회에서 인정받기 위해서는 교직 사회 안에서 문제가 일어났을 때 자정작용을 일으켜 줄 장치가 필요합니다. 교직 문화 역시 문제를 만든 사람을 견제할 수 있는 형태로 바뀌어야 합니다. 수업 전문가에게 요구되는 최소한의 기준이 마련되었으면 합니다.

교육 전문가, 수업 연구자, 교육 가치를 확장해 나가는 운동가의 정체성이 전국국어교사모임을 통해서 형성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교육과정, 수업, 평가를 실현해 나가는 팀 단위의 혁신을 기대합니다. 

김성천 선생님과의 인터뷰를 통해 지금 무엇이 문제이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배웠다. 특히, 교사 개인 차원이 아닌 교원 공동체가 함께 문제에 대응해야 한다는 말, 학습공동체로 수업을 혁신하자는 이야기는 지혜롭게 보였다.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인터뷰 내용을 정리하면서 영화 <인터스텔라>의 홍보 문구가 생각났다. 어떻게 보면 우리 교육이 위기가 아닌 적이 없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전염병이 학교의 일상적인 관성을 완전히 깨뜨린 것은 분명하다. 교사 개인으로 접근해서는 이 상황을 풀기 어렵다. 문제 상황을 서로 나누고 해결책을 함께 고민하는 방법이 필요하다. 교사들이 더 좋은 수업과 더 나은 학교의 모습에 대해 생각을 공유하는 방향으로 관성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문제 상황이 닥치고 교육부, 교육청의 지시를 기다리다가 막상 현장에 맞지 않는 지침이 나왔다며 실망하는 일이 반복되지 않았으면 한다. 몇몇의 정책 결정자와 행정기관이 주도하는 변화가 아니라 교사를 비롯한 학교 내부에서 시작되는 변화가 시작되기를 소망한다. 


글쓴이 소개

학생들과 세상을 삐딱하게 보는 걸 좋아합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제일 쉬운 건 대안 없이 비판하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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