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준 작가 <작아져서 점이 되었다 사라지는> @아트선재센터
* 유튜브 영상의 스크립트입니다. 영상은 아래 링크를 참조해주세요.
전시회 보는 법 | 이희준 작가 | 작아져서 점이 되었다 사라지는 | 아트선재센터 | 이규태 작가 | PAPER PICKER https://youtu.be/ULBrmI7ajpg
안녕하세요. 내가 사랑한 미술관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경로를 통해서 전시 소식을 접하고 수많은 전시 중에서 어떤 전시를 직접 보러 가시나요? 저는 주로 인스타그램 등의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전시 정보를 얻습니다. 저처럼 전시 보는 걸 좋아하는 개인 계정들과 국공립 미술관, 크고 작은 갤러리들의 공식 계정을 팔로우해두면 새로운 전시 소식이나 전시를 다녀온 분들의 후기를 빠르게 접할 수 있는데요. 저는 다른 사람들의 후기나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올려주는 전시 설명보다는 전시 전경이나 작품 사진을 보고 제 취향에 맞거나 취향이 아니더라도 흥미로워 보이는 부분이 있으면 전시를 직접 보러 가는 편입니다.
작년에 인천 롯데 갤러리에서 열린 이규태 작가의 개인전 <Paper Picker>도 이미지로 먼저 작품을 접한 뒤 직접 보러 갔던 전시인데요. 작품을 실제로 보기 전까지는 작품 크기가 그렇게 작을 줄은 상상도 못했답니다. 작품 대부분이 굉장히 작은 부분까지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어서 크기가 적어도 A4 사이즈보다는 클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대부분의 작품이 손바닥만하더라구요. 그렇게 작은 화폭 안에 섬세한 묘사가 가능하다는 점이 정말 놀라웠습니다. 작품을 직접 보고 나서야 사인펜으로 그린 부분과 색연필로 그린 부분의 질감 차이를 발견할 수 있었는데 매끈하고 차가운 사인펜의 질감과 약간 거칠지만 따뜻한 색연필의 질감이 대조적이면서도 어울리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작품을 직접 보고 나면 기념품을 사고 싶어도 살 수 없을 때가 있는데 이 전시가 그런 경우였습니다. 엽서나 포스터를 사려고 보니 엽서는 엽서 크기에 맞추느라 그림의 일부가 잘리고 포스터는 너무 큰 사이즈로 작품을 확대시켜놔서 원작을 보았을 때와 너무 다른 느낌이 들더라구요.
얼마 전 삼청동의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린 전시 <작아져서 점이 되었다 사라지는>을 보고 제가 전시를 보는 일련의 과정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는데요. 전시는 에드윈 A. 애보트가 지은 최초의 SF 소설 <플랜랜드>를 중심으로 권현빈, 노은주, 이희준, 황수연 등 네 명의 작가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평면과 입체라는 개념, 그리고 사람들이 이것들을 인지하는 방식 등을 다룬 단체전입니다. <플랫랜드>는 편평한 2차원의 세계 플랫랜드에 사는 주인공이 1차원 라인랜드와 3차원 스페이스랜드 등 다른 차원의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는 이야기인데요. 전시 제목 ‘작아져서 점이 되었다 사라지는’ 또한 2차원에 속한 주인공이 3차원의 구가 바닥에서 위로 올라가는 모습을 보고 '동그라미가 점점 작아져서 한 점으로 보이다 결국 사라진다'고 묘사한 장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네 명의 작가들 중에서도 특히 이희준 작가의 회화 작업을 보면서 평소에 제가 전시를 보는 방식을 재발견할 수 있었는데요. 이희준 작가는 미스 반 데어 로에가 설계한 바르셀로나 파빌리온과 일상적인 장소인 수영장 등의 사진을 찍고 이를 흑백으로 해상도를 낮춰 프린트한 다음 사진을 자르고 일부러 어긋나게 이어 붙였습니다. 이는 3차원에 존재하는 건축물을 2차원에 속하는 회화로 전환시키려는 시도로 볼 수 있는데요. 색을 빼고 해상도를 낮추고 사진을 어긋나게 이어 붙인 것도 회화적인 요소를 더 극대화 시키기 위한 의도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는 이를 캔버스 삼아 다양한 형태를 가진 원색의 도형을 프린트물 위에 그렸습니다. 도형들을 자세히 보면 어떤 부분은 굉장히 두텁게 칠해져 있어서 회화라기보다는 부조에 가깝다고 느껴질 정도인데요. 2차원에 속하는 회화가 부피를 가지게 되면서 3차원에 존재하는 조각으로 바뀌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이희준 작가의 작품에서는 2차원의 평면적인 요소와 3차원의 입체적인 요소가 양방향으로 전환되면서 2차원과 3차원의 경계가 허물어집니다.
제가 전시를 보는 일련의 과정을 살펴보면 2차원의 이미지로 전시 전경이나 작품을 접한 뒤 직접 전시장을 방문해 3차원 공간에 놓인 원작을 감상하며 이미지와 실재 간의 차이를 발견합니다. 사진을 찍으며 2차원 이미지로 전시를 기록하고 전시를 다 보고 나서는 기념품으로 재생산된 작품들을 보면서 다시 한번 원작과 이미지 간의 간극에 대해 생각하죠. 이렇게 전시를 보다 보면 하나의 작품이 2차원과 3차원을 넘나들며 얼마나 다양한 형태로 존재할 수 있는지, 그 형태에 따라 같은 작품이라도 얼마나 감상이 달라지는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평면과 입체, 회화와 건축, 2차원과 3차원 사이의 경계를 허무는 이희준 작가의 작품을 보면서 제가 전시를 보는 방식을 새롭게 돌아볼 수 있었는데요. 저는 의식하지 못했지만 그동안 수많은 전시를 이런 경계를 넘나들며 봐왔다고 생각하니 소설 <플랫랜드>의 주인공이 된 것만 같습니다.
전시 <작아져서 점이 되었다 사라지는>은 종로구 삼청동에 위치한 아트선재센터에서 2021년 7월 11일까지 관람하실 수 있는데요. SF 소설을 소재로 한 전시라 딴 세상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저처럼 본인의 이야기일 수도 있으니 '나도 <플랫랜드>의 주인공인 것은 아닐까?' 고민하면서 전시를 관람하시면 더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이희준 작가의 전작을 다룬 영상은 위의 링크를 참조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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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