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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사랑한미술관 Aug 22. 2021

지나가버리는 것들을 사랑하는 삶

박형진 작가 <일년의 숲><개나리 동산> & 김화영 작가 <행복의 충격>


* 유튜브 영상의 스크립트입니다. 영상은 아래 링크를 참조해주세요.


지나가버리는 것들을 사랑하는  | 박형진 작가 | 하이트 컬렉션 | 번역가 김화영 | 산문집 | 행복의 충격 https://youtu.be/IvZUCHKDSmo



안녕하세요. 내가 사랑한 미술관입니다.


번역가 김화영의 산문집 「행복의 충격」은 1969년 스물 아홉 살이었던 작가가 남프랑스에서 유학생활을 시작해 지중해 연안에서 공부하고 여행하며 보고 느낀 바를 이야기한 책입니다. 작가는 지중해 사람들이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여러 작가들의 말이나 글을 자주 인용합니다. 그 중에는 프랑스 프로방스 출신 소설가 장 지오노가 '삶의 목적'에 대해 이야기한 글도 있는데요. 장 지오노는 삶의 목적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문명은 우리들이 무엇인가를 향하여, 어떤 머나먼 목적을 향하여 가고 있다고 설득시키고자 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의 유일한 목적은 사는 것이며, 삶은 우리가 매일같이 항상 하고 있는 일이며, 하루의 매 시각 우리가 살기만 한다면 우리는 진정한 목적을 다 달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중략) 우리는 그 어떤 목적을 향해서 가고 있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바로 모든 것을 향해서 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언제든 느낄 태세를 갖추고 있는 오관과 살을 가지는 그 순간에 모든 목적은 달성되었다. 날들은 과일과 같다. 우리들의 역할은 그 과일들을 먹는 일이다. 우리들 본성에 따라 부드럽게든 탐욕스럽게든 그 과일들을 먹는 일이다. 그 과일이 담고 있는 모든 것을 섭취하여 우리의 정신적인 살을, 우리의 영혼을 만드는 일, 즉 사는 일이다. 산다는 것은 그 밖의 어떤 목적도 없다.'


여러분은 삶의 목적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일이나 취미 등에서 이루고 싶은 여러 목표에 대해 생각해본 적은 있지만 삶의 목적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삶의 목적은 여러 목표를 통해 이루고 싶은, 단 하나의 궁극적인 방향이나 이상 같은 거라서 한 평생을 고민해봐야 하는 것 아닐까 싶기도 한데요. 쉽게 답을 찾지 못하고 고민하는 제게 장 지오노는 삶의 목적 같은 건 필요하지 않다고 이야기합니다.


조금씩 다른 해석이 있을 수 있겠지만 제겐 오감을 총동원해 삶의 매 순간을 열심히 느끼고, 그것을 가지고 각자의 영혼을 만들어 간다면 그 밖의 삶의 목적은 필요하지 않다는 이야기로 들렸습니다. 얼핏 보면 간단하고 쉬운 이야기 같아 보이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렇게 사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모호하고 막연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장 지오노의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작품이 있어서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지난 7월 하이트 컬렉션에서 열린 전시 <인 블룸>에서 본 박형진 작가의 작품입니다. 이 작품들은 흔히 볼 수 있는 캔버스가 아니라 모눈종이를 소재로 하고 모눈종이 위에 수많은 점들이 빼곡하게 찍혀 있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지금 보시는 작품 <일년의 숲>은 2019년 7월부터 2020년 6월까지 1년간 작가가 작업실 바깥 풍경을 관찰하고 거기서 찾은 색들로 모눈종이를 한 칸 한 칸 채워 나간 기록입니다. 모눈종이 한 장에 한 달을 담아 총 12장의 모눈종이로 이뤄진 작품인데 여름, 가을, 겨울, 봄, 그리고 다시 여름이 되기까지의 1년 간의 자연의 변화를 볼 수 있습니다. 모눈종이를 한 장씩 들여다보면 7월에서 8월로 넘어가면서 초록빛이 더 진해지고 9월부터는 단풍이 들면서 노란빛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11월에는 단풍이 절정에 이르러서 또 하나의 봄을 보는 것처럼 다양한 색이 섞여 있습니다. 12월부터 2월까지 세 달간은 무채색과 어두운 빛깔의 색들로 가득하다가 3월에는 밝은 회색이 많이 보여서 전체적인 색감이 한결 밝아지는데 늦겨울에 내린 눈 때문이었을까 궁금해집니다. 그러다 4월이 되면 연한 연두색이 나오기 시작하고 드디어 봄이 다시 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다른 작품 <개나리 동산>은 지난 봄 서울 응봉산에 개나리가 피고 지는 모습을 기록한 것인데요. 시간이 흐름에 따라 다양한 빛깔의 노란색이 점점 진해졌다가 사라지고 그 빈자리를 다양한 빛깔의 초록색이 채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박형진 작가는 우리가 일상에서 간과하는 주변의 것들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모눈종이 한 칸 한 칸을 자신이 본 색들로 채워 넣음으로써 계절이 오고 가는 것을 한 눈에 보여줍니다.  


모눈종이를 칸칸이 채우고 있는 수없이 다양한 종류의 색을 보고 있자면 장 지오노의 말처럼 삶의 목적이란 다른 데 있지 않고, 이렇게 매 순간 우리를 둘러싼 것들을 오감으로 열심히 느끼고 나만의 감각으로 삶을 채워 나가는 데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은 어떤가요? 박형진 작가의 작품을 보고 나니  지오노의 이야기가    닿지 않나요? 저는 저만의 삶의 목적을 찾기 전까지는 이들이 보여준 것처럼  순간을 충분히 느끼며 사는 것에 집중해보는 것도 좋을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김화영 작가가 책에서 인용한 프랑스 작가 알프레드  비니의 말처럼 우리가 사랑할 것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 지나가버리는 것이기 때문이죠. 여러분도 영원한 것보다는 지나가버리는 것들을  열렬히 사랑하는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영상이 마음에 드셨다면 좋아요와 구독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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