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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넉참이 neokcham Jul 04. 2024

엄마, 내 직업은 서비스 기획자야

서비스 기획자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을 위한 글

저는 서비스 기획자로 지금의 회사에 취업하며 서울로 상경했어요. 이 일을 시작한 지 어언 1년이 넘어가던 때, 엄마와 영상통화를 하던 중 엄마가 이렇게 물었어요.

엄마 : 이번에 친구들 모임에서 내 딸이 서울에서 일한다고 얘기하다가 친구들이 네 직업을 묻더라? 근데 엄마는 네가 무슨 일을 하는지 전혀 모르고 있더라고. 사이버 보안 회사에 다닌다는 건 알겠는데, 회사에서 네가 하는 일이 뭐야?

나 : …? 엄마는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는데 나를 서울로 보낸 거야?


순간 머리가 띵- 했어요.


제 친구들은 대부분 IT 전공이고, 취업 이후에 새로 만나게 되는 사람들도 대부분 IT 업계에서 일을 하고 있어서 제가 서비스 기획자로 일하고 있다고만 말해도 다들 제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고 있거든요. 그런데 평생 IT를 제대로 접해본 적이 없는 (심지어 스마트폰조차 잘 다루지 못하는) 우리 엄마에게 서비스 기획자라는 직업은 너무 생소했던 겁니다.


그날 밤, 전화기를 붙잡고 엄마에게 서비스 기획자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내가 어떤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지 열심히 설명했지만, 우리의 대화 주제는 제 직업에서 오늘의 저녁 메뉴로 빠르게 전환되었습니다...^^


저희 엄마처럼 IT 배경지식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서비스 기획자'라는 직업 자체를 처음 들었을 수도 있고, ‘기획’이라는 말만 듣고 '아~ 기획~? 기획 알지!' 하고 대충 어림짐작하는 사람들도 많을 거예요. 그래서 서비스 기획자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한번 짚고 넘어가려고 합니다.



서비스 기획자는 어떤 일을 할까?


우선 서비스 기획이 무엇인지부터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아요. 왜냐하면 세상에는 기획이 너-무 많거든요. 사업 기획, 정책 기획, 마케팅 기획, 전략 기획, 서비스 기획, 광고 기획, 출판 기획, 공연 기획, 상품 기획, 게임 기획… 다 나열하면 이 글의 절반을 채울지도 몰라요. 


심지어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해야 하는 모든 게 다 기획이래요. 친구를 만나러 약속 장소까지 어떻게 갈 것인지 생각하는 것도 기획, 여행 계획을 짜는 것도 기획, 오늘 점심에 무엇을 먹을지 결정하는 것조차도 기획이라고 얘기하더라고요. 기획이라는 말의 범위가 너무 넓어서, 저희 회사에서조차도 기획해야 하는 업무라면 무조건 저를 부르십니다. 서비스 기획이 아니더라도 워크숍 기획(이건 행사 기획이죠?!)이나 사업기획서 작성(이건 사업 기획입니다..) 등 기획이라는 말만 들어가면 다 제가 투입되곤 합니다.


이렇게 모든 업무를 다 맡다 보니 점점 제 정체성이 흔들리더라고요. 나는 서비스 기획자인데 왜 이런 잡무들을 다 처리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돼요. 아무래도 사람들이 서비스 기획이라는 업무를 잘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요? 


오프라인 매장을 온라인 몰로 그대로 옮겨놓은 모습


예를 한번 들어볼게요. 저희 엄마는 이마트를 자주 들리는데요, 이마트에 가면 엄마가 필요한 물건들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물건들이 구역별로 잘 정리되어 있어요. 그리고 엄마가 필요한 물건들을 하나씩 골라서 장바구니에 담을 수도 있죠. 어떤 날에는 특별 할인 행사 포스터가 곳곳에 붙어 있어서 엄마가 더 저렴하게 물건을 살 수 있도록 알려줘요. 이 모든 것들이 잘 작동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이마트를 어떻게 운영할지, 물건을 어떻게 배치할지, 어디에 할인 행사 포스터를 붙일지 미리 기획해야 해요.


이와 비슷하게, 서비스 기획자는 온라인에 모인 사람들이 어떻게 서비스를 이용해야할지 오프라인에서의 경험을 온라인으로 옮겨 놓는 일을 하는 사람이에요. 마트에 직접 가서 원하는 물건을 장바구니에 담고 결제하던 그 경험을, 온라인 몰에서도 쉽게 원하는 물건을 찾고, 어떤 할인 행사가 있는지 확인하고, 장바구니에 담았던 물건을 편하게 결제할 수 있도록 온라인 몰을 기획하는 거죠. 


여기선 온라인 몰을 예로 들었지만, 다른 서비스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은행에서 직접 돈을 인출하거나 통장을 만들었던 그 경험을, 이제는 은행 앱에 들어가서 쉽게 통장을 만들고, 송금할 수 있도록 기획해요. 친구들을 만나 직접 근황을 물었어야 했던 그 경험을, 이제는 SNS에 들어가서 친구들의 근황을 사진으로 볼 수 있고, 댓글도 남길 수 있도록 기획해요. 세탁소에 직접 방문해서 내 세탁물을 맡겼던 그 경험을, 이제는 세탁소 앱에서 내가 원하는 날짜에 내 세탁물을 맡기겠다고 신청할 수 있도록 기획해요.


서비스 기획자는 온라인상에서의 서비스 경험을 사람들이 더 쉽고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숨은 조력자 같은 사람이랍니다. 서비스가 탄생하기까지 이 서비스를 왜 만들어야 하는지, 어떤 사람들에게 이 서비스를 제공할 것인지, 그리고 어떤 기능을 넣을 것인지를 열심히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꼭 알아주세요! 


그리고 엄마... 나 이제 서비스 기획자 4년 차인데 내가 뭘 하는 사람인지 정도는 알아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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