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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과 콜린스 May 10. 2024

영화 <더 랍스터>를 보았다

사랑이라는 언어의 문법을 괴랄한 문학으로 풀어내다

<더 랍스터>_2015__★: 5/5


영화 <더 랍스터>와 관련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더 랍스터>의 세계관은 정말이지 괴랄하다.

짝을 이루어야만 하는 절대 법칙이 다스리는 세상 속.

한쪽은 고독할 권리를 빼앗고, 다른 한쪽은 사랑할 권리를 빼앗는다.

1부.


데이비드(콜린 패럴콜린 파렐)는 아내에게 버림받는다. 호텔로 떠나기 전 그는 아내에게 그녀의 새 파트너가 안경을 쓰는지 렌즈를 끼는지 묻는다.

아내가 안경이라 답하자 마찬가지로 안경을 쓴 데이비드는 더욱 심란해진다.


호텔은 기이한 곳이다. 기한 내에 짝을 이루지 못하는 투숙자를 동물로 바꿔버리는 무시무시한 곳이고, 그 외에도 투숙자가 지켜야 하는 엄격한 규칙들이 있는 곳이다.

호텔은 결혼 정보 업체처럼 투숙자들이 짝을 이룰 수 있게 돕는다. 서로를 알아갈 수 있도록 매일 연회를 열어주고, 사랑에 대한 연극 강의를 하고, 성욕을 해소하기 직전까지만 키워주는 서비스도 제공한다.


호텔에선 실제로 커플이 탄생하는데, 재밌는 건 모든 커플이 서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호텔 주인 부부는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졌다.


어떤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순간에, 또는 사랑이 깊어지는 순간에 공통점의 유무는 중요하다. 그래서인지 누군가와 짝이 되고 싶은 순간, 우리는 본능적으로 상대와 내가 무엇이 닮았는지를 찾는다.


하지만 공통점은 꾸며낼 수도 있다.

모두가 한 번쯤은 상대의 관심을 얻기 위해 평소 관심 없던 로맨스 영화를 좋아하는척한다든지, 매주 교회를 나가본다든지, 입에 안 맞는 음식을 맛있게 먹는 척할 때가 있다.

그런데 영화 속 인물들이 꾸미는 거짓은 그 정도가 눈살을 찌푸리게 할 정도이다.


절름발이 남성(벤 위쇼)은 수시로 코피를 흘리는 코피녀(제시카 바든)와 짝이 되기 위해 일부러 머리를 부딪쳐가며 가짜 코피를 흘린다. 코피를 자주 흘린다는 공통점으로 두 남녀는 짝이 되고 동물로 될 위험에서 벗어난다.

사이코패스 같은 비정한 여인(안젤리키 파푸리아)을 눈여겨본 데이비드는 그녀 앞에서 냉혈한인척하며 호감을 얻는다. 그는 죽어가는 사람 앞에서 비정한 여인 보란 듯 눈 하나 깜짝 안 한다. 데이비드는 감정이란 감추는 것보다, 억지로 만드는 것이 더 어렵다고 믿는 사람이기에 비정한 여인을 앞으로도 계속 속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데이비드는 그녀 앞에서 신음을, 애정을 구하는 몸짓을, 그리고 눈물을 감추지 못한다.


실제 연인 간에도 공통점인 줄 알고 있던 서로의 특징이, 사실 상대가 비슷한 척 꾸며낸 것이란 사실을 알고 좋아할 사람은 없다.

영화 속 호텔 또한 상대를 속여 짝이 되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한다. 데이비드의 경우 냉혈한인 척 연기한 것이 들키자, 곧바로 비정한 여인에게 끌려가 아무도 원치 않는 동물로 변해버릴 위기를 맞이한다.


다행히 데이비드는 누군가의 도움으로 비정한 여인을 제압하고 호텔을 벗어나 숲으로 도망간다.


숲엔 짝이 되길 거부하는 외톨이 집단이 모여 살았다.


2부.


데이비드는 외톨이 집단에 합류한다.

<더 랍스터> 세계관 무법자들이라 볼 수 있는 외톨이들은 호텔로 끌려가기 싫어 숲에서 은둔하는 사람들이다.


호텔과 마찬가지로 외톨이 집단에도 규칙이 있다. 다만 그 규칙은 호텔과 정반대로 짝이 되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이곳에선 성관계는 물론 그 어떤 플러팅도 금지된다. 죽기 전 미리 자신의 무덤을 직접 파 두어야 하는 규칙이 있는 외톨이 집단은, 그 무덤에 들어가기 전까지 철저하게 본인만 의지해야 한다.


어느 날 호텔 사람들을 피해 도망만 치던 외톨이 집단은 역으로 호텔을 기습한다.

이들의 목적은 호텔 사람들에게 상해를 입히는 것이 아닌 그곳의 커플들을 갈라놓는 것이었다.

데이비드는 절름발이에게 갈 것을 자원한다.

절름발이는 요트에서 가족과 식사 중이었고 그들에겐 호텔 측에서 붙여 준 딸도 있었다. 식사 자리에 난입한 데이비드는 코피녀에게 네 남편은 가짜 코피 만들어 너를 속인 것이다 말하지만, 코피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데이비드의 뺨을 갈긴다. 심지어 아이는 한술 더 떠 데이비드를 죽이라고 엄마에게 칼을 건넨다.

예상과 다른 반응을 보이자, 데이비드는 할 수 없이 요트를 빠져나온다.


데이비드는 외톨이 집단에서 한 여성과 가까워지고 둘은 서로에게 호감을 느낀다. 그 여성도 데이비드처럼 근시를 가지고 있었다.

데이비드는 반골 기질이 있는 걸까? 사랑할 것을 강요하던 곳에선 상대를 속이는 식으로 저항하고, 혼자일 것을 강요하는 곳에선 진솔한 사랑으로 체제에 저항한다.

데이비드의 사랑은 항상 체제에 저항하며 이루어진다.


하나의 공통점으로 가까워진 두 사람은 함께하는 시간이 쌓이며 또 다른 연결고리를 만든다.

절름발이의 경우 아이가 생겼고, 데이비드의 경우 근시녀(레이첼 와이즈)와 비밀연애를 위해 둘만이 알아볼 수 있는 손짓 암호를 만들었다. 데이비드 커플은 손짓으로 말을 주고받으며 대담한 계획을 짠다.


데이비드 커플은 집단을 떠나 도시로 도망갈 계획을 세운다. 이를 안 외톨이 리더(레아 세이두)는 근시녀의 눈을 치료해 주겠다 속이고 그녀를 장님으로 만든다. 이로써 데이비드 커플은 기존에 그들을 연결시켰던 근시라는 공통점을 잃는다.


눈물 흘리는 근시녀에게 데이비드는 이렇게 말한다. ‘해결책이 있겠지’ 

이후 데이비드는 근시녀를 돕기 시작한다. 그는 그녀에게 먹을 걸 가져다주고 촉각 훈련을 시킨다. 그는 근시녀의 혈액형을 묻기도 하고 좋아하는 음식을 물어보기도 하며 상대를 알아가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게 데이비드는 어떤 언어보다 복잡한 사랑 문법을 만들어간다.

그의 사랑은 해결책을 찾기 위해 노력할 때 깊어진다.

지금껏 뒤틀리고 불안했던 영화 분위기와 다르게, 위 시퀀스는 서정적인 음악과 따뜻한 햇볕으로 가득하다.


어느 날 데이비드는 과거 두 사람이 만들었던 손짓 암호를 사용해 근시녀에게 메시지를 전한다. 눈먼 근시녀는 손짓을 볼 수 없으니, 말로 손짓을 묘사한다.

‘왼발을 든다, 팔꿈치를 무릎에 대고 두 번 두드린다….’ 뜻을 알아차린 근시녀는 정말 그렇게 할 거냐 되묻고 데이비드는 그게 유일한 방법이라 말한다.

다음 날 두 사람은 과거의 계획을 실천에 옮긴다.

도시의 한 레스토랑에 도착하자 데이비드는 칼을 챙겨 화장실로 간다. 그는 거울 앞에서 입안을 휴지로 가득 채우고 금방이라도 찌를 듯 눈앞에 칼을 가져다 댄다.

영화는 자리에서 데이비드를 기다리는 근시녀를 보여주며 끝난다.


데이비드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공통점이 있어야만 커플로 발전했던 호텔 사람들과 다르게, 데이비드는 공통점을 잃은 애인을 버리지 않고 해결책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사랑하기 위해 내린 해답이 ‘너와 같아지기 위해 멀쩡한 눈을 도려내야 한다’는 것은, <더 랍스터> 세계관에서 두 사람이 계속해서 짝으로 남을 수 있는 명쾌한 방법이긴 하지만, 사랑에 대해 편협적이고 강압적인 세계관에 주인공이 남겨지는 것 같아 해피엔딩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눈을 도려내지 않았을 수도 있다. 데이비드는 감추는 것보다 만들어내는 것이 더 어렵다 생각했던 인물이다. 그에겐 눈을 도려낸 척 근시녀를 속이는 것보다 눈을 정말 도려내는 것이 더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후 자신을 속인 걸 알게 된 근시녀가 비정한 여인 같은 반응을 보일지, 절름발이 가족처럼 진실을 외면할지는 모른다.

어떤 선택을 했건 사랑은 비극이 될 수도 해피엔딩일 수도 있다.

마치며.


<더 랍스터>의 문학적인 스토리텔링 방식은 탁월했다. 영화는 소설책처럼 제삼자의 내레이션이 존재한다. 이후 내레이션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관객에게 알려주는 시점과, 내레이션이 끝나는 시점은 영화에서 매우 중요한 순간들이다.


영화 초반엔 배우들의 대사 처리 방식이 감정이 결여돼 보여 어색하다는 느낌도 받았지만, 지켜볼수록의 사랑이라는 감정이 결여돼 보이는 <더 랍스터>의 독특한 세계관과 찰떡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는 최근 개봉한 영화 <가여운 것들>의 감독이기도 하다. 해당 영화도 <더 랍스터>처럼 비현실적인 세계관 속 우화 같은 묘사가 많아 즐겁게 보았다. 추후 OTT에서 다시 볼 수 있게 되면 리뷰를 남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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