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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재현 Jun 06. 2024

건축학도의 영화 월지

3월의 영화 터미널

영화 동아리를 만들고 운영을 지속해 온 지 3년이 지났다. 2년 차부터 이 모임에서 어떤 방식으로든지 결과물을 창출해 내고자 했는데 결국 고른 방식은 직접 본 영화들에 대한 이야기와 생각을 담아내는 글이다. 우리 모임은 늘 진중하거나 영화사적 의미가 깊은 작품만을 감상하는 모임은 아니다. 영화에 대한 깊은 감상과 해석 토론을 목표로 하기보다는 친근한 분위기에서 각자 보고 싶은 영화를 조금 더 편하게 그리고 꾸준히 보기 위해 모이는 곳이다. 그래서 앞으로 후기가 남을 영화들 또한 공통된 주제 혹은 특징도 뚜렷하지 않고, 작품 선정의 기준 또한 모호할 것이다. 그래도 보통은 재미있는 영화를 보려고 추진하기에 감상하고 후기를 남기기에 재미없는 영화는 거의 없을 듯하다.


출처: <네이버 영화, 터미널-스틸컷>

3월의 영화는 톰 행크스 주연의 터미널이다. 영화의 전체적인 줄거리와 내용은 단순하다. 미국으로 여행을 온 주인공 빅터는 고국에서 쿠데타가 발생해 하루아침에 나라를 잃어버린 신세가 된다. 나라가 없으면 비자도 신분을 증명할 방법도 없다. 그래서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하게 된 빅터는 미국의 JFK 공항에서 밖으로 나가지도 고국으로 돌아가지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버린다. 처음에는 영어도 잘 못하고 낯선 이국의 땅에서 공항 내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출동도 있고 적응하기 어려워 보였지만, 주인공 특유의 낙천적인 성격 탓인지 금세 적응해 내면서 공항에서 살아남기를 착실하게 수행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공항의 삶에 적응하면서 감독관을 제외한 다른 직원들과도 친분을 쌓아나가고 또 공항 내에서 인연을 이어주는 까치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 

출처: <네이버 영화, 터미널-스틸컷>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영화의 도입부 그리고 주인공 빅터와 아멜리아의 사랑 이야기 두 가지였다. 영화가 시작할 때 영어를 몰라서 본인의 상황을 깨닫게 되는 장면을 클로즈업에서 줌 아웃을 통해 사람이 넘치는 공항에서 유일하게 혼자 고립된 주인공의 심리를 잘 표현했다. 특히 톰 행크스의 연기와 더불어 공항 내부의 어수선하고 바쁜 공간에서 빅터의 표정까지 클로즈업이 되는 연출은 타인에게 관심 없는 바쁜 현대사회와 고립된 개인의 대비를 잘 보여준다. 빅터와 아멜리아의 관계도 참 흥미롭다. 빅터는 먼 타국에서 와서 공항에 갇혀있는 신세다. 빅터는 어디에도 갈 수 없고 스스로 자기의 환경을 바꿀 수도 없다. 빅터가 할 수 있는 일은 한 장소에서 기다리는 것뿐이다. 반면 아멜리아는 늘 어딘가로 떠난다. 스튜어디스라는 직업적 특징 때문에 전 세계를 돌아다니기도 하지만, 이 남자 저 남자를 만나면서 마음이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늘 한 곳에서 기다리는 사람과 늘 돌아다니는 사람, 반대되는 두 사람의 성질은 둘의 로맨스를 더욱 매력적으로 만들어준다.


만약 빅터도 여러 곳을 다닐 수 있었다면 아멜리아를 만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계속 jfk 공항에 갇혀있는 덕분에 늘 이동하는 아멜리아를 몇 번이고 마주칠 수 있다. 아무 곳도 가지 않아야 늘 이동하는 사랑을 만날 수 있는 상황이 참 아이러니다. 정 반대의 두 사람 같지만 의외의 공통점도 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바로 기다림이다. 빅터의 공간은 제약되어 있지만 자신이 가야 할 장소 또는 마음이 머무를 곳은 한 곳으로 고정되어 있다. 고국이 될 수도 있고 아멜리아가 될 수도 있다. 반면 아멜리아는 물리적인 공간의 제약이 없어 자유로워 보이지만 마음이 향할 장소 또한 없다. 현재 만나고 있는 상대도 제대로 된 관계가 아니기에 늘 불안정하고, 빅터에게 왔다가 갔다가 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자기 자신도 스스로에 대한 확신과 믿음이 깎여나가는 듯한 대사들을 극 중에서 몇 번이고 들려준다. 이런 대비적인 두 사람의 만남이 영화의 두 번째 주제인 로맨스를 더욱 낭만적이고 매력적이게 묘사해 주는 게 아닐까 한다.

출처: <네이버 영화, 터미널-스틸컷>

어릴 때 봤던 터미널이라는 영화는 영화판 공항에서 살아남기 시리즈 같았다. 적당히 가볍고 드라마도 있고 코미디도 있고 그런 영화였다. 그러고 시간이 지나면서 한 공간에서 영화를, 이야기를 진행하는 것이 얼마나 독특한 아이디어인지 깨닫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본지 약 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매력이 넘치는 영화라고 생각된다. 개봉한 지 꽤 많은 시간이 지났고, 또 당시에 대중성을 노린 작품인지라 24년도에 보기에 세련된 영화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고립과 공간이 가지는 의미를 잘 녹여내고 표현한 영화다. 우리도 한 집에서 오랫동안 지내는 사람도, 한 지역을 벗어나지 않는 사람도, 혹은 늘 이사를 다니는 사람도 있다. 터미널의 공항만큼 고립된 것은 아니지만, 도시에서 우리가 집이라고 느끼는 물리적 공간의 범위를 생각해 보면 고립된 채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우리의 터미널은 과연 어디서 어디까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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