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덕분에 행복하고 풍성했던 3개월
시카고에서 메릴랜드로 이사하자마자 코로나가 터지고 집콕하면서 책을 여러 권 읽었다. 어느 날 밀리의 서재에서 김민식 작가님의 <매일 아침 써봤니?>를 읽다가 ‘브런치’라는 플랫폼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세상에, 이런 게 있었어? 왜 이제 알았지?’
설레는 마음으로 브런치에 날마다 들락거리며 나도 브런치 작가가 되어 내 안에 품고 있는 이야기들을 글로 풀어내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다. 그런데 막상 첫 관문인 글 한 편과 브런치 활동 계획을 제출하려니 얼마나 막막하던지. 브런치 창을 열었다 닫았다, 브런치 앱을 만지작거렸다 닫았다, 반짝거리는 민트색 커서만 멍하니 바라보며 하릴없이 시간만 보냈다.
7월의 어느 토요일, 어둑어둑한 새벽이었는데 갑자기 눈이 번쩍 뜨이면서 정신이 맑아지는 것이었다. 아침잠이 많은 나에게는 거의 일어난 적이 없는 일이다. 아기천사처럼 쌔근쌔근 잠들어있는 둘째 아이 옆에서 아이폰으로 최초의 브런치 글 “39세 부부, 이민을 결정하다”를 꼼지락거리며 써서 작가의 서랍에 넣어 놓고, 내친김에 활동 계획까지 휘갈겨 브런치팀에 보내버렸다. 그렇게 막막하더니만 막상 쓰기 시작하니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넘쳐나는 것이었다. 참 신기한 새벽이었다.
주말이 지나고 브런치팀으로부터 “합격” 메일을 받고는 얼마나 날아갈 것 같던지, 남편과 아이들, 가족들, 친구들에게 신나게 자랑을 했다. 내 안에서 꿈틀대던 작가의 꿈을 더 이상 외면하지 않으리라 결심하면서.
코로나로 아들 둘과 하루 종일 집콕하며 지지고 볶던 여름. 맨 정신으로 버티기 힘든 시간이었지만 밤마다 새벽마다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울고 웃으며 보냈다.
이민을 준비하던 시절의 이야기부터 고국을 떠나오며 느낀 감정들,
시카고에 도착해 본격적으로 시작된 삽질 시리즈,
형님댁에 얹혀 지내며 느낀 군중 속의 고독,
남편의 구직 기간 중 경험한 좌절감, 실망감, 패배감, 설움,
그 와중에 절실히 와 닿은 이민자들의 삶의 무게,
영어 한 마디 못하던 아이를 시카고 학교에 보내 놓고 안절부절못하던 엄마의 기도...
글을 쓰면서 신기하게도 그 글 속으로 들어가 그 글을 다시 살고 있는 나를 만났다. 힘들고 서러웠던 내 마음을 어루만지기도, 수고했다고 잘했다고 토닥 거리기도, 참아왔던, 잊고 있었던 눈물을 활자들과 함께 쏟아내기도 했다. 낯선 땅에 다시 태어난 신생아들의 성장통을 하나하나씩 불완전한 언어로나마 표현해 보면서 내 마음을 치유하고 정리(closure)하며 해소감을 느꼈던 시간이었다.
그러다가 내 글이 다음 포털 메인에 처음으로 올라가던 날, 밤새도록 울려대던 진동의 흥분을 잊을 수가 없다. 드르릉~ 드르릉~ 요란한 진동 소리와 함께 “미국 이민 3종 선물 세트” 조회수가 천, 이천, 삼천을 넘어 무려 2만을 돌파했다는 알림이 떴을 때의 그 짜릿함이란! 바로 다음 글이었던 “자기, 나 코스트코도 떨어졌어...”는 무려 조회수 17만을 넘기고 브런치 추천글과 다음 직장IN 인기글 2위에 오르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폭발적인 조회수보다 더 감격적이었던 건 독자들이 달아주신 감동적인 댓글들이었다. 내 글을 읽고 일부러 브런치에 가입까지 해서 댓글을 남긴다는 분도 계셨고, 같은 이민자로서 본인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며 달아주신 공감의 댓글, 아들 둘을 키우는 사십 대 가장이 달아주신 눈물의 댓글, 구독에 알림 설정까지 해놓고 새 글을 기다리신다는 격려의 댓글, 친구들과 지인들이 브런치까지 찾아와 남겨준 사랑의 댓글들까지... 세상에는 진심 어린 격려와 공감을 할 줄 아는 좋은 사람들이 참 많구나 생각하며 마음이 따뜻해졌다.
초보 작가의 부족한 글을 발굴하여 여기저기 노출시키고 여러 독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쁨을 누리게 해 준 브런치팀에게 감사를 전한다. 특별히 브런치 첫 글부터 라이킷을 누르며 응원해주시고, 따스한 공감과 격려의 댓글을 달아주신 독자분들께도 감사를 드린다.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며 내 마음을 정리하고 치유하는 것만 해도 경이로운 경험이었는데, 내 글을 재미있게 읽으셨다고, 글을 통해 격려와 위로를 받으셨다고 표현해주신 분들 덕분에 힘이 났고, 행복했다.
우리 네 식구가 지나온 1년 간의 모험과 일상을 브런치북 <마흔에 떠난 미국 이민>으로 펴내며, 남인숙 작가님이 최근 MKTV <한글날도 다가오는데 나도 내 이름으로 된 책 한 권 써볼까?>에서 하셨던 말씀이 가슴에 와 닿는다. 내가 대단하고 특별해서 글을 쓰는 게 아니라, 글쓰기를 통해 내 인생의 의미와 성장을 만들어가는 거라고, 글을 쓰다 보니 내가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으로 변하는 거라고. 앞으로도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며, 내 삶 속에서 찾아가는 재미와 의미를 이야기로 만들고 나누는 ‘작가’로 살고 싶다.
PS. 브런치북으로 묶어 발간한 글들은 드리머소녀의 브런치 매거진 <저도 이민은 처음입니다만>에서는 더 이상 볼 수가 없네요. 브런치북으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앞으로의 미국 생활은 매거진에 계속해서 연재할 계획입니다. 모두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