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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리머소녀 Oct 22. 2020

어떤 집에 살고 싶은가요?

집에 대한 취향의 발견

자가격리 명령이 해제되고 여름방학이 다가오면서 동네 곳곳에 “For Sale,” “Open House” 사인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다른 미국 집들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집 보는 눈도 키워야겠다 싶어 별다른 일정이 없는 주말이면 동네 오픈하우스들을 하나씩 구경하러 다니기 시작했다. 우리 동네에는 옆집과 벽을 공유하는 타운하우스, 실내 면적과 마당 사이즈가 비교적 아담한 모던 스타일의 싱글하우스, 실내 면적과 마당이 널찍한 클래식 스타일의 싱글하우스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오픈하우스는 대부분 주말 점심시간 전후로 2~3시간씩, 마스크와 손세정제, 신발 커버 등을 준비해놓고 한 공간에 한 가족씩만 들어가 보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우리 가족이 살고 있는 형태의 타운하우스는 마당이 거의 없고, 차고/서재가 1층, 거실/주방이 2층, 방들이 3~4층에 위치하고 있어 계단을 엄청나게 오르내려야 한다. 차고에 주차한 후 장 봐온 것들을 2층 부엌으로 끌고 올라가고, 꽉 찬 쓰레기봉투와 재활용 쓰레기통을 들고 1층으로 내려가고, 밖에 나갔다가도 잊은 물건이 있으면 3층 방까지 도로 올라갔다 내려와야 하는 번거로움이 종종 있다. 세돌 지난 둘째 아이는 계단 오르내리는 게 상당히 익숙해졌지만, 걸음마를 시작하는 아기를 키우는 가정은 아마도 하루 종일 아기 꽁무니만 쫓아다니느라 정신이 없을 것이다. 얼마 전에는 이웃집 할머니가 4층 다락방에서 내려오시다가 계단에서 구르시는 바람에 발목 수술까지 받으셨다는 아찔한 소식이 들려오기도 했다. 그래도 공기만 마셔도 살찐다는 미국에서, 그나마 계단이라도 열심히 오르내리니 체중이 이 정도라도 유지되는 게 아닐까 웃픈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외벽과 맞대고 있는 집은 난방 효율이 떨어진다고 선호하지 않는 편인데, 미국에서는 끝에 붙은 엔드 유닛(end unit)이 더 인기가 좋고 높은 가격에 팔린다고 한다. 외벽 쪽에 창문을 낼 수 있어 채광이 좋고, 이웃집과 한쪽 벽만 공유하면 되니 프라이버시 측면에서도 낫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우리 옆집이 엔드 유닛인데, 중간에 껴있는 우리 집보다 창문이 많아 집안이 확실히 밝고 환하다. 옆집과 벽을 맞대고 있어도 대화 소리나 소음이 들려온 적은 없어서 프라이버시 문제는 별로 와 닿지 않는다. 문만 열고 나가도 엘리베이터나 복도에서부터 사람을 마주치는 한국 아파트 생활을 평생 해온 터라 오히려 집 앞에 나가면 이웃들과 만날 수 있는 타운하우스가 덜 외롭고 좋은 것도 같다.


전형적인 메릴랜드주의 타운하우스. 신축 분양 시 4층 다락, 베란다, 확장 여부, 창문 모양과 갯수, 지붕 모양까지도 선택할 수 있어 집집마다 외관과 내부가 다르게 생겼다.


싱글하우스에는 보통 거실/주방이 있는 공동생활 공간이 1층에 위치해 있다. 차고에 주차하고 부엌으로 바로 들어가니 그로서리를 바리바리 들고 계단을 오르거나 무거운 쓰레기통을 들고 계단을 내려가는 수고를 덜 수 있다. 우리 동네 오픈하우스에서 본 집들은 대부분 1층에 거실과 다이닝룸이 2개씩 있었다. 출입문 쪽에 있는 거실(formal living room)과 다이닝룸(formal dining room)은 손님 접대나 특별한 저녁식사에 사용하고, 안쪽으로 더 들어가면 있는 거실(family room)과 부엌에 붙어있는 다이닝룸은 가족끼리 편하게 사용한다고 한다. 굳이 거실과 다이닝룸이 2개씩이나 있어야 하는지 의문이 들기는 하지만, 미국 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조인 만큼 이곳 사람들의 생활 패턴과 선호도가 반영되었을 것이다. 또 1층에는 변기와 세면대만 있는 작은 화장실(half bathroom)이 있다. 2층 마스터 베드룸(owner’s suite)에는 보통 별도의 욕실과 화장실이 딸려 있고, 같은 층에 침실이 두세 개 더 있고, 복도에 또 공동 화장실이 있다. 최근에 지어진 집일수록 세탁기와 건조기가 2층에 위치한 경우가 많다. 주로 2층에서 씻고 옷을 갈아입기 때문에 빨래를 들고 계단을 오르내리지 않아도 되어 편리하다.


싱글하우스에는 지하실(basement)이 딸려있는데, 그 공간을 가족들의 놀이공간, 영화관, 헬스장으로 만들기도 하고, 당구대나 탁구대를 두고 즐기기도 하고, 개수대와 아일랜드를 설치해 홈 바(bar)로 활용하는 집들도 보았다. 지하실 한쪽에 방과 화장실을 만들어 게스트룸이나 서재로 사용하기도 하고, 지하실 전체를 개조해 세를 놓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지하 공간을 개조하지 않은 집을 저렴한 가격에 매수해 살면서 방과 화장실을 직접 만들어 집의 가치를 높이는 경우도 흔하다고 한다.


‘우리 집은 내 손으로’ 취향껏 창조하며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이 참 좋아 보인다. 직업을 떠나서 ‘손’을 쓸 줄 아는 능력이 빛을 발하는 곳이 바로 미국인 듯하다. 나라가 워낙 크다 보니 가족이나 친구들이 타주에서 방문하는 경우를 대비해 게스트룸 한 개 정도는 구비해두는 가정들이 많고, 실제로 가족이나 친구들이 방문해 오랜 기간 머물다 가는 경우도 흔한 것 같다. 손님들이 묵는 방은 가족들의 침실이 있는 2층보다는 1층이나 지하실에 두어 서로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해주는 걸 선호한다고 한다.


싱글하우스의 뒷마당(backyard)에서는 바베큐를 하거나 꽃밭, 텃밭을 가꾸고, 놀이터, 트램폴린, 트리하우스, 간이 수영장, 농구 골대 등을 설치해놓고 즐기기도 한다. 코로나로 온 가족이 재택근무, 온라인 교육으로 집에서 24시간을 보내고 여행도 못하게 되면서 ‘집’에 투자하는 미국인들이 더 많아졌다고 한다. 뒷마당과 실내 공간이 넓은 싱글하우스들의 인기가 더욱 치솟고, 집안에서 즐길 엔터테인먼트도 점점 더 많이 사들이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우리 동네 사람들도 코로나로 재택근무를 하게 되면서 집집마다 레노베이션, 페인트칠, 조경, 텃밭 가꾸기 등에 한창 열을 올리다가 이제야 조금 잠잠해졌다.


실내공간만 100평 이상에 넓은 뒷마당이 있는 클래식 스타일 싱글하우스(위). 실내공간이 100평 미만에 비교적 작은 마당을 가진 모던 스타일 싱글하우스(아래).




동네 집들을 틈틈이 구경하면서 미국인들의 라이프 사이클도 엿볼 수 있었다. 워낙 다양한 인종들이 다양한 경제관, 가족관을 갖고 살아가고 있어 정형화하기는 어렵지만, 미국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보통 만 18세 전후) 독립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집에서 통학하기 힘든 거리에 있는 대학에 입학하게 되면 짐을 싸들고 기숙사나 학교 주변 아파트로 들어간다. 졸업하고 직업을 구하면 직장 근처 원룸이나 소형 아파트로 이사해 급여의 상당 부분을 월세로 내면서 산다. 결혼해서 자녀가 학령기에 접어들 때쯤에는 학군이 좋고 주변 환경이 쾌적한 서버브로 이사해서 라이프스타일과 예산에 맞는 타운하우스/싱글하우스를 구입한다. 집 가격의 20% 정도만 다운페이를 하면 되니 신용 점수와 약간의 목돈이 있으면 집을 구입할 수 있지만, 고액 연봉자가 아닌 이상 다운페이 할 금액을 저축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닌 듯하다. 집을 구입한 후에도 30년간 매월 모기지를 갚아 나가고 높은 재산세(Property Tax)를 부담하며 빠듯하게 살아간다. 나이가 들고 자녀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해 독립하고 나면 다시 다운사이징을 해 작은 타운하우스나 단층집으로 이사하기도 한다.


여러 집들을 구경하며 우리가 어떤 집을 좋아하고 원하는 지도 서서히 알아가고 있다. 처음에는 부동산 중개인들이 꼭 물어보는 "어떤 집에 살고 싶은가요?”라는 질문에 어리둥절 대답을 잘 못했었다. 집이 괜찮으면 이거다 싶은 느낌이 오겠지, 굳이 집에 대한 취향이 있어야 하나 생각했었다. 한국에서야 이 동네 아파트, 몇 평형, 남향, 로열동에 로열층, 확장형 이상으로 딱히 구체화할 것도 없는 집 선택이 아니었던가. 내 취향을 설명하지 못하는 내 모습이 아마도 이곳 중개인들에게는 낯설었을 것이다. 샌드위치 하나를 먹더라도 빵, 야채, 소스 종류까지 일일이 골라 주문하는 이들인데, 하물며 보금자리에 대한 구체적인 생각이 없을 수가 있으랴.


남편과 함께 대화를 나누며 많은 집들을 둘러보다 보니 이제는 어느 위치/학군에 있는 어떤 스타일의 집이면 좋겠고, 방과 화장실은 몇 개며, 거실, 부엌, 뒷마당은 이렇게 생겼으면 좋겠고, 어떤 공간에는 카펫이 깔려 있었으면 좋겠고, 게스트룸은 어디쯤 위치했으면 좋겠는지 등... 부동산 중개인과 어느 정도 대화할 만큼 집에 대한 ‘취향’이라는 게 구체화되고 있다.


이곳의 살인적인 월세를 계속 감당하며 살기보다는 매달 모기지를 부담하면서라도 우리 집을 보유하고 싶어 기웃거리고 있는데, 우리에게 딱 맞는 좋은 집을 언제쯤 만날 수 있을까? 그 집은 어떤 모습일까? 그 집에서 우리 아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자라 가고 우리 부부는 어떻게 나이 들어가게 될까? 가을이라 그런가, 생각이 많아진다.


인생의 계절마다 누려야 할
소중한 것들을 놓치지 않고,
서로 아끼고 사랑하고 섬기며,
일상 속에서 작은 행복을 만들어가는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싶다.


메릴랜드의 가을 (Photo by dreamerson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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