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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리머소녀 Nov 03. 2020

오늘의 행복은 내일로 유보하지 않는다

코로나 속 우리 동네 할로윈 축제

몇 주 전부터 동네 아이들은 할로윈 당일 어떤 루트로 캔디를 받으러 다닐지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이 동네에 몇 년째 살고 있는 옆집 아이는 어느 집에서 캔디를 후하게 주는지 훤히 꿰고 있다며, 자기만 따라다니면 된다고 큰소리를 쳤다. 그 아이는 올해 할로윈 분장과 메이크업을 직접 해보겠다며 벌써 두 달 전부터 연습을 시작했고, 그 애 엄마는 코로나 때문에 몇 집이나 참여할지 모르니 올해는 캔디를 넉넉하게 준비해야겠다고 했다.


캔디가 뭔지 확실히 알아버린 둘째 아이는 매일 아침 반짝이는 눈으로 엄마, 오늘이 할로윈이야?”라고 물었다. 큰아이 학교 미술시간에도 호박으로 작품을 만들어 사진을 찍어 제출하고, 할로윈 전날은 각자 준비한 의상을 입고 온라인 수업에 참여했으며, 동네에는 할로윈 장식을 해놓은 집들이 많아지면서 점점 더 들뜬 분위기가 되어갔다.


드디어 아이들이 손꼽아 기다리던 할로윈 오후,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캔디를 포장했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면서 메릴랜드에도 코로나가 심해지고 있는 상황이라 캔디를 직접 나눠주기는 힘들 테니, 지퍼백에 캔디를 종류별로 넣어 바구니 안에 담아 집 앞에 두었다. 1개씩 가져가라는 안내와 함께.


할로윈 ‘Trick or treat’을 시작하며 (Photo by dreamersonya)


오후 5시가 넘어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기 시작하자 고요했던 우리 동네에 마법사, 마녀, 공룡, 공주, 괴물, 닌자, 요정, 드라큘라들이 하나둘씩 활동을 개시했다. 단, 의상에 마스크가 추가되었다는 게 예년 할로윈과의 차이였을 거다. 동네 사람들도 캔디 바구니를 집 앞에 하나씩 내놓고 멀찌감치 떨어져서 신나게 캔디를 주워 가는 아이들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캔디를 집어가며 아이들은 “Thank you! Happy Halloween!”을 외쳤고, "Happy Halloween!" 인사가 돌아왔다.


집 앞에 작은 테이블을 내놓고 그 위에 사탕을 둔 집, 크라임 씬 테이프로 출입구는 막아놓고 2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캔디를 던져주는 집, 대문에 캔디를 줄줄이 붙여놓고 한 봉지씩 떼 가라는 집, 계단 손잡이에 긴 통을 매달고 사탕을 하나씩 미끄러져 내려가게 해 놓은 집... 제한된 상황 속에서 모두들 얼마나 창의적으로 소셜 디스턴싱 스타일의 할로윈을 즐기던지, 동네 한 바퀴 돌면서 구경만 해도 정말 유쾌했다.


우리동네 할로윈 풍경 (Photo by dreamersonya)


우리 아이들처럼 작은 호박 바구니를 들고 다니는 아이들은 별로 없었고, 대부분이 커다란 자루를 들고 다니며 캔디 수확을 했다. 우리 동네는 타운하우스 촌이라 워낙 가구 수가 많은 데다가, 한 집에서 캔디가 여러 개 들어있는 지퍼백이나 풀 사이즈(full-size) 캔디를 받기도 하니, 호박 바구니 가지고는 택도 없을 걸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혹시 몰라 둘째 아이 유모차에 에코백을 하나 걸고 다녔는데 그게 없었으면 캔디를 다 받아오기 힘들 뻔했다.


부모들은 아이들을 쫓아다니며 거둬들인 캔디를 하나씩 까먹기도 하고, 사진도 찍어주고, 무거워진 자루를 대신 들어주기도 했다. 아이들과 함께 할로윈 분장을 하고 한껏 축제 분위기를 즐기는 적극적인 부모들도 보였다. 앞마당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맥주 한 잔씩 하며 가족 단위로 축제 분위기를 즐기는 사람들도 있었다. 학교도 못 가고 친구들도 만나지 못해 우울한 아이들을 위해 아이들이 열광하는 게임 캐릭터 의상을 직접 만들어 주었다는 엄마, 손녀가 좋아하는 할로윈 리스(wreath)를 핸드메이드로 만들어 주셨다는 할머니, 매년 온 가족이 하나의 테마로 의상을 정해 입고 가족사진도 남긴다며 아이들만큼이나 들떠 보이던 엄마... 할로윈에 얽힌 이웃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덩달아 신이 났고, 오랜만에 ‘진짜 미국’에 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한 시간 남짓 이웃들과 동네를 돌며 캔디를 수확한 후, 아이들은 작당대로 옆집에 모여 캔디를 세고 좋아하는 캔디로 물물교환도 했다. 할로윈 음악을 틀어놓고 신나게 춤도 추고, 초콜릿, 사탕도 열심히 까먹고, 그 집 아이가 미리 준비해놓은 간식들까지 흡입하면서 혈당 수치를 급속도로 높였다. 두 아이가 수확한 캔디는 총 256 피스, 연필이나 스탬프, 스티커도 몇 개 있었다. 아이들은 한 시간 남짓 돌아다니고 1년 치(?) 캔디를 추수한 거다. 얼마나 신나고 행복했을까.


미국에서 할로윈이 없어지지 않는 한, 허쉬초콜릿컴퍼니는 영원하지 않을까? (Photo by dreamersonya)


미국인들 사이에서 찐하게 할로윈을 보내며, 이들은 주어진 상황 속에서 최선을 다해 삶을 축제처럼 누리고 즐기는구나 생각이 들었다. 오늘의 행복을 내일로 유보하지 않으면서. 또다시 비상하기 시작한 코로나 확진자수와 코앞에 닥친 대선, 불투명한 미래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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