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드리머소녀 Dec 08. 2020

블랙 프라이데이, 득템들 많이 하셨나요?

생산적인 쇼핑이란 무엇인가

11월 넷째 주 목요일은 추수감사절, 다음날인 금요일은 블랙 프라이데이다. 연말이 다가오면서 창고에 쌓인 재고를 한번 털고 가는 날. 쇼핑몰들이 새벽부터 오픈하기에 밤새 몰 앞에 진을 치고 기다리다 문을 박차고 들어가 도어버스터(doorbusters, 한정된 시간 동안 파격적인 가격에 파는 행사상품)를 득템 하는 날. 한 달 후 있을 크리스마스에 사돈의 팔촌까지 챙겨 줄 선물들을 할인된 가격에 미리 쟁여놓는 날. 이제는 전 세계 직구족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온라인 할인행사가 되어버린 날이기도 하다.


작년에는 시카고에서 소셜 시큐리티 오피스와 운전면허 시험장, 아이가 입학한 학교에 어리바리 왔다 갔다 하다가 추수감사절과 블랙 프라이데이를 맞았었다. 대가족이 둘러앉아 추수감사절 만찬을 먹고 치운 후 밤 10시를 훌쩍 넘긴 시간, 아주버님과 남편은 블랙 프라이데이 전야를 체험해 보겠다며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아웃렛으로 떠났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난 남편은 자정이 다 될 때까지 인기 브랜드 매장 앞에 줄을 서서 입장하던 사람들, 발 디딜 틈 없는 매장에서 정신없이 옷을 주워 담던 사람들 이야기를 신나게 해 주었다. 형이랑 둘이 크리스마스 선물을 하나씩 미리 교환했다면서 사온 재킷과 바지를 내 앞에서 입어보기도 했다.


다음날인 블랙 프라이데이 당일, 아주버님은 대뜸 우리 부부에게 블랙 프라이데이 쇼핑을 하고 오라고, 아이들을 봐주시겠다고 하셨다. 아주버님은 우리를 몰에 내려주시고는 아이들 셋을 데리고 근처 젤리 공장으로 견학을 가셨다. 세 아이를 혼자 감당하실 수 있을까, 둘째 아이가 엄마를 찾으며 울지 않을까 살짝 걱정도 되었지만, 아이들 없이 쇼핑을 하라니 이게 웬 떡인가. 하다 말고 나오는 한이 있더라도 이런 기회는 덥석 물어야 했다. 우리 부부는 금쪽같은 시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각자 원하는 브랜드 매장 세 개씩만 콕 집어 다녀오기로 하고 헤어졌다.


아주버님 혼자 아이들 셋을 데리고 젤리 공장에 견학을 가신 것도 대단한 일인데, 조르르 줄 세워놓고 사진도 몇 장 찍으셨다. (Photo by IK)


시카고 겨울 날씨가 너무 추워 그날 나는 발목까지 내려오는 패딩, 두꺼운 니트류, 방한조끼 같은 것들만 보고 다녔다. 남편도 나도 아무 벌이가 없던 때라 뭐 하나를 집었다가도 들었다 놨다 한참 고민을 했다. 밖에서는 웬만하면 음식도 안 사 먹고 물도 안 사 마시려고 집에서 바리바리 챙겨 싸들고 다니던 시절이었다. 남편은 그 와중에 리바이스에서 인생 청바지를 두 벌이나 건졌다며 요즘도 그때 이야기를 하며 한 번씩 웃곤 한다.


How was shopping?
Was it productive?
(쇼핑 어땠어? 생산적이었어?)


두 시간 후 아이들 셋을 무사히 데리고 돌아온 아주버님이 우리에게 물으셨다. 덕분에 좋은 시간 보냈다고 대답하면서 '생산적인 쇼핑'이란 대체 무엇일까, 짧은 시간 동안 물건을 많이 샀냐(돈을 많이 썼느냐)는 뜻일까, 좋은 물건을 저렴한 가격에 득템 했냐는 뜻일까, 잠시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불과 1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다른 세상 이야기처럼 들리는 블랙 프라이데이 도어 버스팅(door busting). 사람들로 북적북적 발 디딜 틈 없던 아웃렛 몰, 마스크 없이 거리두기도 없이 마음껏 돌아다니고 입어보고 만져보던 매장들, 목적이 이끄는 쇼핑 외에는 잘 하지 않는 나조차도 그때 그 시절이 가끔 그리워진다. 타임머신을 타고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떤 느낌일까.


올해 블랙 프라이데이에는 몰에 가서 줄을 섰다거나 무언가를 사 왔다는 이야기를 통 들어보지 못했다. 우리도 연휴 내내 마트와 공원에만 나갔다 왔고, 막상 블랙 프라이데이에는 혹여나 인파가 몰릴까 집에만 콕 박혀 있었다. 코로나 확진자수가 날개를 달고 하늘로 치솟고 있는 가운데 굳이 밀폐된 공간에 들어가고 싶지도, 다른 사람들이 들었다 놨다 한 물건을 만지고 싶지도, 마스크 속에서 내가 내뿜은 이산화탄소를 계속 들이마시며 돌아다니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인해 막대한 손실을 본 기업들이 실적 만회를 해보고자 올해는 특별히 더 공격적인 온라인 마케팅에 나섰다고들 한다. 통상 블랙 프라이데이가 시작되는 주 월요일이나 그 전 주말부터 서서히 세일이 시작되는 것 같았는데, 올해는 11월 초부터 얼리 블랙 프라이데이 세일을 하는 브랜드들도 꽤 많았다. 가전이나 가구 같은 고가의 도어버스터들은 일찌감치 온라인 세일 날짜를 널리 알려 재고를 확실히 털어내려고 했다. 회원 가입한 모든 브랜드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할인 쿠폰과 코드를 보내오고, 장바구니에 뭔가가 담겨 있으면 혹시 잊은 물건이 있지 않냐며 주기적으로 상기시켜 주었다. 게다가 지역 단톡방에 하루 종일 올라오는 반짝 세일 정보들 때문에 평소 필요하다고 생각해본 적 없는 물건도 한 번씩 검색해보게 되었다. 같은 물건인데 누구는 얼마에 샀다더라, 며칠 전에는 얼마였는데 지금은 가격이 올랐더라, 난리들이었다. 며칠 동안 눈팅만 하다가 결국 피로감에 못 이겨 그 방에서 탈출하고야 말았다.


브랜드 웹사이트나 이메일 링크를 타고 들어가 보면 적게는 30%에서 60-70%까지 할인을 하고 있었고, 날마다 할인하는 제품이 달라 이미 구매한 사람도 계속 들어가 보도록 유도하고 있었다. 철 지난 여름옷은 정가의 20-30%에 살 수 있는 경우도 있어 사이즈만 정확히 알면 내년에 입을 옷을 미리 득템 할 수 있는 기회처럼 보이기도 했다. 한때 재미있게 보았던 넷플릭스 곤도 마리에의 정리 컨설팅 프로그램(Tyding Up With Marie Kondo)에서 태그도 떼지 않은 새 옷들이 옷장 안에 무더기로 쌓여있는 장면들을 보고 의아했었는데, 이제야 무릎을 쳤다. 블랙 프라이데이와 박싱 데이(크리스마스 다음날)에 파격 세일하는 여름옷들을 미리 쟁여놓았던 거였다.


블랙 프라이데이 주간이 시작되기도 한참 전, 남편은 노려왔던 65인치 TV를 질렀다. 한 집에 TV가 굳이 두 대나 있어야 할까 생각이 들었지만, 남편은 화질 좋은 TV로 손흥민 선수를 응원하며 행복해한다. 나는 사고 싶었던 주방용품 몇 가지를 질렀다. 같은 음식을 만들어도 음식 맛이 다르다는 주물냄비와 커다란 무쇠 웍, 식칼 세트를 블랙 프라이데이 핑계로 새로 들였다. 크리스마스트리, 겨울용 이불, 아이들 겨울 옷, 운동화, 속옷, 기초 화장품, 아이들 크리스마스 선물, 한국 가족들에게 보낼 선물도 주문했다. 덕분에 블랙 프라이데이가 한참 지난 오늘도 여기저기서 택배 박스들이 도착하고 있다.


과연 올해 블랙 프라이데이에 우리는 생산적인 쇼핑을 한 걸까? 온라인 쇼핑이라도 검색하고 비교해서 주문하는데 오프라인 못지않게 오랜 시간이 소요된 걸 보면 상당히 소모적인 일주일을 보낸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면 과연 좋은 물건을 저렴하게 득템 한 걸까? 새 주물냄비에 끓인 배춧국이 상당히 맛있는 걸로 보아 일단 냄비는 성공한 것 같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고 기뻐할 아이들, 가족들 모습을 상상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이것저것 집어 담는 나를 보니 역시 미니멀리스트는 다음 생에나 가능하겠구나 생각이 든다.


블랙 프라이데이 덕분에 득템한 행복 (Photo by dreamersonya)
매거진의 이전글 직접 구워본 추수감사절 칠면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