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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리머소녀 Nov 28. 2020

직접 구워본 추수감사절 칠면조

코로나 속 우리 가족의 추억과 전통 만들기

추수감사절에 시카고 가족들과 함께 칠면조 만찬을 하려던 계획은 코로나 확산으로 무산되었고, 이런 상황에서 친구네 집에 갈수도 친구네 가족을 부를 수도 없었다. 결국은 늘 그래 왔듯 우리 식구끼리 알콩달콩 지내기로 했다. 이웃들과 친구들이 보스턴 마켓, 크래커 배럴 같은 음식점에서 디너 세트를 주문해서 먹어 보라고 알려주어 열심히 검색을 시작했다. 4-6인 세트 메뉴는 칠면조 가슴살, 그레이비, 크랜베리 소스, 디너롤(빵), 샐러드, 사이드 두 개로 구성되어 있었다. 사 먹으면 간단하고 편하긴 하겠지만, 그래도 새 보금자리에서 맞는 첫 추수감사절인데 기억에 남는 하루를 보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트 메뉴 구성도 생각보다 별 게 없었고 말이다. 남편이랑 의기투합해 집에서 칠면조를 한번 직접 구워보기로 했다. 어차피 시간은 많고 갈 데도 없고 만날 사람도 없는데 경험 삼아 한번 해보자면서. 이것도 다 때가 있는 것 아니겠냐면서. 누가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해보려는 의욕이 있는 걸 보니 우리 부부 아직 젊은 모양이다.


추수감사절 디너 세트. 올해는 대가족 모임이 힘들어 이런 세트 메뉴들이 더욱 히트를 쳤다고 한다.


추수감사절 D-5. 아이들과 함께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을 했다. 세상 분위기도 우울한데 집안이라도 반짝반짝 밝고 환하게 만들어놓고 싶었다. 트리는 블랙 프라이데이 딜 뜬 것 중에 하나를 주문하고, 트리 장식은 아이들과 함께 마이클즈에 가서 골랐다. 큰아이에게 컬러 코드를 먼저 골라보자고 했더니 “크리스마스는 무조건 빨강, 초록이지! 이게 좋겠네!” 라더니 그 많은 장식들 중에 쨍한 빨강, 초록, 골드 장식 세트를 대번에 선택하는 것이었다. 크리스마스 음악을 틀어놓고 아이들과 함께 트리를 장식하며 분위기를 즐겼다. 얼마나 즐겁고 뿌듯해하던지, 예쁜 아이들 모습에 절로 엄마 미소가 지어졌다.


우리 집은 벌써 파티 모드 (by dreamersonya)


D-4. 터키와 사이드 재료 쇼핑을 하러 마트에 갔다. 미국 곳곳에서 10인 이상 모임 금지령, 자가격리 명령을 내려 대가족이 모일 수가 없는 상황이라, 작은 사이즈 칠면조나 가슴살만 불티나게 팔린다고 들었는데 진짜 그랬다. 20lb(9kg)가 넘어가는 큰 칠면조는 많이 남아 있었는데, 아담한 사이즈의 칠면조는 별로 없었다. 남편은 퍽퍽한 가슴살보다는 다리와 날개쪽 살이 맛있다며 이왕 하는 것 한 마리를 통으로 구워보자고 했다. 슈퍼마켓 칠면조 코너를 이 잡듯이 뒤져 11lb(5kg) 짜리 한 마리를 집어 얼른 카트에 담았다. 사이드로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옥수수, 군고구마, 매시드 포테이토, 그리고 터키 디너에 빠지면 섭섭한 그레이비, 스터핑, 크랜베리 소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미니 양배추 구이를 하기로 하고 열심히 장을 봤다. 냉동 상태의 칠면조는 추수감사절 당일까지 4일 동안 냉장고에서 천천히 해동하기로 했다. 5킬로짜리 새 한 마리가 들어가니 안 그래도 작은 우리 집 냉장고가 미어터졌다.


원래 냉동육을 파는 코너인데 칠면조로 가득차 있던 동네 슈퍼. 미국에서 추수감사절에 소비되는 칠면조가 약 4,500만 마리라고 한다.


D-1. 칠면조 구이와 사이드 레시피를 다시 한번 보면서 필요한 재료를 조금 더 구입했다. 파슬리, 바질도 한 병씩, 디저트로 먹을 애플 크럼블 파이도 한 판 샀다. 추수감사절 당일은 대부분의 가게들이 문을 닫으니 갑자기 중요한 재료가 떨어지는 상황이 발생해서는 안된다고 들었다. 유튜브에서 찾은 고든 램지(Gordon Ramsay) 영상을 보고는 그 방법대로 구워보기로 했다. 사이드 디시 만드는 방법도 영상으로 한 번씩 보면서 대충 감을 잡았다.


D-day. 아침 식사 후 주방 싱크대 주변을 싹 정리해놓고 냉장고에서 4일 동안 해동한 칠면조를 꺼냈다. 내장은 이미 깨끗이 제거해 놓은 상태라 따로 정리할 건 없었고, 흐르는 물에 샤워 후 김치 담그는 큰 통에 넣어 목욕도 시켰다. 칠면조 안에는 소금, 후추로 간을 하고 양파, 레몬, 통마늘을 가득 넣고, 허브 버터를 만들어 온 몸을 정성껏 마사지해 오븐에 투입했다. 5킬로짜리 작은 놈이라 세 시간 반 정도 구우니 비주얼이 그럴싸해졌다. 아이들은 오븐에서 익어가는 칠면조를 한 번씩 와서 보며 “와... 맛있겠다!”를 연발했다. 허브 버터를 바른 칠면조가 구워지는 냄새가 온 집안에 퍼지니 정말 미국 명절 분위기가 났다.


우리 집에 온 칠면조의 변천사 (by dreamersonya)


칠면조가 구워지는 동안 크랜베리 소스, 스터핑, 사이드 디시를 하나씩 준비했다. 그레이비는 고든 램지 레시피를 따라 터키 드리핑(칠면조를 구우면서 나오는 기름)을 사용해서 만들어 보려다 망쳐 냄비째 버렸다. 이런 사태가 발생할 줄 알고 남편이 미리 장만해둔 시판 그레이비 파우더(아마도 상당 부분 조미료)가 있어 간단히 해결했다. 매시드 포테이토는 감자와 통마늘을 치킨스톡과 물에 넣고 끓이다가 사우어크림과 버터, 생크림을 넣고 핸드믹서로 갈아서 만들었는데 정말 풍미 좋고 부드럽게 되었다.


무려 다섯 시간 동안 저녁식사 준비를 마치고, 가족들과 둘러앉아 감사 예배를 드렸다. 힘겹게 버텨온 지난 1년이었지만, 네 식구 모두 건강하게 안전하게 여기까지 지내온 것, 코로나 터지기 직전 남편이 일자리를 찾아 메릴랜드 새로운 보금자리에 정착하게 된 것, 자녀들이 행복하게 자라고 있는 것, 비록 온라인상이지만 큰아이가 학교 생활을 즐겁게 하고 있는 것, 좋은 이웃들과 친구들을 만난 것... 감사의 제목들이 줄줄이 떠올랐다.


네 식구가 와인잔으로 짠- 건배하고 준비한 음식들을 감격하며 먹었다. 큰아이는 멋진 레스토랑에 온 것 같다더니 칠면조를 치즈, 군고구마와 함께 김에 싸서 칠면조 김밥을 만들어 먹었고, 둘째 아이는 그렇게 맛있겠다고 침을 흘리더니만 칠면조는 입에 대지도 않고 군고구마와 옥수수, 밥으로 소박하게 먹었다.


어릴 적 사촌 동생들과 둘러앉아 송편을 빚던 추석 전야, 만두를 빚으며 누구 만두가 더 못생겼네 깔깔대며 웃던 까치설날, 엄마랑 하루 종일 앉아서 수다 떨며 부치던 각종 전... 이런 기억들이 가슴 깊이 자리해 가끔 꺼내 보며 빙그레 웃곤 한다. 우리가 수고한 대여섯 시간이 아이들에게 따뜻하고 행복한 어린 시절의 추억으로 기억되지 않을까 생각하니 뿌듯하고 흐뭇했다. 새로운 땅에 다시 태어난 우리 가족은 앞으로 어떤 전통을 갖고 어떤 명절을 어떻게 지키며 살아가게 될까 생각도 해보게 된다. 가끔 한 번씩 특별한 날엔 가족들, 친구들과 둘러앉아 직접 구운 칠면조도 먹을 수 있으려나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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