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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봉석 Aug 25. 2020

원격수업과 미래 교육

대구교육청 앞  농성장에서

  어제 수업 중에 학생들에게 간단한 발표를 시켰다. 대부분 꿀 먹은 벙어리다. 오랜 온라인 수업 기간 동안 학생들은 받아쓰기에만 익숙했을 것이고, 말하고 표현하는 일이 드물었을 것이다. 등교해도 하루 종일 마스크를 낀 채로 말과 행동이 제한당하면서 자기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으라고  강요당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참고로 우리 반 학생 20명 중 15명은 등교 수업보다 온라인 수업이 낫다고 했다.)

   오늘(2020년 8월 24일)은 농성장에 혼자 있지만 그동안 많은 분들과 함께 했다. 고만고만한 사람끼리 부족한 대로, 아쉬운 대로 고민을 함께 하고 생각을 나누면서 배우는 시간이기도 했다. 반면 학생들에게는 그러한 소통 기회가 차단되었다.(실시간 화상수업이 그러한 문제를 보완할 수 있을 것이란 착각은 마시라.)


    코로나 19가 심각해지니 대구교육청은 학교 방역을 위해 중학교는 1/3만, 고등학교는 2/3만 등교하라는 지침을 내려보냈다. 원격과 대면을 병행하라는 건데 그럴 바엔 아예 원격수업을 하든지... 사실상 방역 안전도 안되고 교육활동도 되지 않는다.  실시간 화상수업도 그러한 격차를 완화하기보다 오히려 심화시키는데 기여한다.


  이러한 지침은 교육보다 수능과 입시에 매몰된 교육당국이나 학부모 민원, 사교육 업계와의 타협 결과로 보인다. 언론에서 말하는 학력 격차는 사교육 정도나 가정환경과 밀접한 관련을 지닌다. 이들은 지난 수능 모의시험 결과를 토대로 상위권은 그대 로거나 늘었지만  중하위권은 오히려 감소되었다는 것을 근거가 든다. 하지만 그보다는 학생들이 상황을 인식하고 이를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감소되었다거나 사회적 관계를 고려해 이에 적합한 행동을 할 수 있는 능력이 감소되거나 하는 최근의 학력 개념을 거론하지 않는다. 지금처럼 수능 결과에 따른 학력 개념만 따진다면 학력격차 문제를 해소할 수도 없고 사교육 의존 문제를 심화시킨다. 


  그런데도 교육부나 교육청은 수능과 입시 서열화 문제는 그대로 둔 채 원격수업과 스마트교육, 온라인 플랫폼을 확대하는 방향을 제시했다.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창의성 교육이나 민주시민 자질 함양 교육과는 무관하면서 소위 학력 격차 문제를 더 악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코로나 사태로 교사 대부분이 최신 디지털 활용 기술과 원격 수업 플랫폼을 익히게 되었다. 스마트 플랫폼을 이용해 수업 영상을 제공하거나 직접 영상을 제작하고 실시간 화상 수업을 하기도 한다. 학생들은 집에서 컴퓨터나 스마트폰만으로 편하게 수업을 들을 수 있지만 아무도 이게 바람직한 미래 교육의 모습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또 원격 수업으로 발생한 학력 격차가 미숙한 유튜브 활용법이나 부족한 영상 제작 기술 때문이 아니다.


  최근 몇 년 사이 교육청은 4차 산업혁명, 미래교육을 화두로 수많은 연수들은 내려보냈다. 인공지능과 딥러닝, GUI, 스마트 플랫폼, 3D 프린터, 드론, 화상회의 기술과 유튜브 영상 제작 같은 내용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리고 그러한 기법을 익혀야만 교사들의 미래 교육 역량을 키울 수 있다고 압박한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 자체가 부자들의 모임의 다보스포럼에서 제시된 말입니다. 미래 자본의 먹거리를 어디서 구할 것인지를 찾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다. 코로나 19와 기후 위기가 자본의 무한한 탐욕 결과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4차 산업혁명 또한 자본의 새로운 탐욕거리를 찾은 결과이다.


  2000년대 초반  3차 산업혁명 대비라는 명분으로 많은 교사들이 한글, 파워포인트, 엑셀 같은 기본적인 오피스뿐 아니라 포토샵, 홈페이지 제작, 컴퓨터 분해와 조립 같은 연수들을 들어야 했다. 당시 이런 최신 컴퓨터 기술을 익히지 않으면 미래 교육에서 도태될 것처럼 교사들을 종용했고 학교당 몇 명씩 강제 연수를 시키곤 했다. 그러나 이렇게 익힌 컴퓨터 기술들은 수업자료 제작보다 주로 공문 처리나 시범학교 보고서, 행정 업무를 처리하는 데 더 많이 쓰였다. 그리고 교실은 여전히 칠판과 분필, 종이 교과서와 종이 학습지가 주된 학습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코로나 시국에 닥친 교육과 사회의 위기 속에서 무한한 기술, 기법 습득이 해법이라고 믿는 교육당국의 대처를 보면 교육이 백년지대계라는 말이 무색하다.  교육청 건물 위에 박힌 미래라는 단어가 왜 이리 어색한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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