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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봉석 Mar 23. 2021

한 돌봄 노동자의 죽음

돌봄과 노동, 그리고 학교

지난 15일 대구 한 초등 돌봄 노동자 한 분이 생명을 달리 했습니다. 초등 1, 2 학생 53명을 담당하던 고인은 신경 약을 복용하고 병가까지 쓰는 등 과중한 업무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학교장에게 심각한 스트레스와 피로를 호소하였으나 업무 조정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다른 지역에서는 돌봄사 한 명이 20명 내외의 학생을 담당하도록 규정했지만 대구에서만 돌봄사 한 명이 그 두 배의 인원을 담당해야 하는 정책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학교장은 교육청 지침을 이유로 고인의 목소리를 외면했고 대구교육청은 방과후특기강사가 있으니 운영에 문제가 없다며 돌봄 전담사들의 고통과 목소리를 외면했습니다. 어찌 보면 예고된 비극입니다.

  고인이 된 당사자가 업무 과로를 호소했지만 학교와 교육청 누구도 귀 기울이지 않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서려 하지 않았습니다. 교장은 당사자의 사퇴 요청을 개인적 사유로 치부했고, 대구교육청은 고인의 사망 원인이 개인적인 이유일 수 있다며 물타기를 시도했습니다. 그렇다 한들 비정규직 노동자였던 그에게 불합리한 학생 배정이 이루어졌고 과도한 업무에 노출되었다는 사실이 바뀔 리 없습니다. 도대체 누가 거짓말을 하는 것이며 누구에게 책임과 해결책을 물어야 할까요?

  대부분 타 시도에서는 돌봄사 한 명이 20명 내외의 아동을 담당하도록 규정합니다. 초등 저학년임을 고려한다면 이것도 적은 인원이 아니지만 유독 대구교육청은 특기적성강사가 있으니 돌봄 전담사 한 명이 두 교실의 아동을 담당해도 문제가 없다는 식입니다.

   그동안 대구교육청이 해고가 쉽고 인건비가 상대적으로 적게 들어가는 비정규직 강사를 활용해 돌봄 시간을 메꾸는 데에만 급급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방식의 돌봄 교실 운영이 파행을 유발하고 안정적 운영을 어렵게 한다는 것은 자명합니다. 다품교육을 외치는 강은희 교육감과 대구교육청이 저렴한 인건비와 효율성을 우선순위에 두고 돌봄의 가치와 공공성을 외면한 결과입니다. 그사이 학교 돌봄 노동은 교육노동자들끼리 ‘서로 누가 맡을 것’인지 떠넘기는 핑퐁 게임이 되었고 갈등 유발 요소, 기피 업무로 전락했습니다.

  작년 코로나 사태 이후에 돌봄의 중요성은 증대되었고 돌봄의 가치와 의미는 재발견되었습니다. 감염병이 심각해지자 돌봄은 필수 업무로 지정되었고, 맞벌이 노동자가 기댈 수 있는 몇 안 되는 생존 안전망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돌봄이 어떠한 전문성이나 숙련도 요구되지 않는 하찮은 일로 간주될 때 돌봄을 담당하는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의 목소리는 외면되고 그들의 열악한 처우와 정당한 요구는 도외시됩니다. 급기야 오늘에 이르러 또 다른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의 죽음을 맞이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아동에게 돌봄 역시 배움의 과정이고 삶이며 교육의 한 현장입니다. 돌봄 없는 학교민주주의, 학교 자치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의 절규와 절박한 요구를 외면하는 학교에서 협력, 배움, 공존, 그리고 연대의 가치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교육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인간 존중이고 학교는 이를 배우고 체험하는 공간입니다. 그럼에도 교육공동체 일원인 교육공무직 노동자의 죽음 앞에 그 의미를 축소, 폄훼하거나 노-노 갈등을 유발하는 발언을 하면서 책임을 회피하려는 대구교육청의 태도는 잘못된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그의 죽음을 진심으로 추도하고 진상규명에 나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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