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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봉석 May 06. 2021

미래교육? 4차 산업혁명?

기술이 미래의 전부일 수 있을까?

미래교육? 4차 산업혁명?

지난주 교육청에서 미래교육을 위한 간담회에 전교조도 참석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하지만 내가 거기 낄 일도 없고 그런 자리 자체가 좀 탐탁지 않기도 하다. 대개 교육청 주관 간담회 같은 것들이 자기들끼리 모여서 서로 덕담하다가 끝나는 게 대부분이기도 하고, 전교조가 거기 들어가 비판을 하고 대안을 제시한들 혼자 떠들다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도 하다. 물론 그렇게 들어가서 이야기하는 게 좋지 않겠냐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하지만 무엇보다 미래교육이라는 말 자체에 대한 거부감, 문제의식도 있다. 매일 쏟아지는 교육청 공문에 4차 산업혁명이니 미래교육이니 스마트교육이니 하는 단어가 빠진 것을 본 적이 없다. 이들이 말하는 미래교육은 대개 기술적 진보를 바탕으로 온갖 교육공학적 기법들을 익혀야 미래에 살아남을 수 있는 것처럼 사용된다.

현 상황이나 교육 철학, 가치, 성찰은 빠지고 오로지 드론 체험과 연수, 3D 프린터, 유튜브 활용법 등이 공교육과 학교의 미래가 되는 것처럼 비취지는 것도 불편하다. 그런 단어의 범람 속에서 학교와 공교육 문제의 실상은 은폐되거나 왜곡된다.

 경쟁 몰입 교육으로 인한 사회 양극화와 교육 양극화 문제, 학교의 시장화나 자본 시장의 먹이가 된 학교의 구조적 문제, 기후생태위기, 인권 침해나 혐오, 차별 문제 같은 것은 드론을 배운다고 해서, 유튜브를 배운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학교의 구조적 위기와 문제에 대한 성찰이나 진단은 없고 미래교육과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로 은폐하고 인식을 왜곡하는 수단으로 이용된다.

  전 세계 자본가들의 모임인 다보스포럼에서 만들어 낸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 담론도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를 은폐하는데 이용된다. 노동자, 민중의 저항과 비판보다는 자본의 요구에 맞추어 평생 동안 새로운 기술을 익히고 자기 계발을 하라는 식이다. 즉 노동자(학생)에게 곧 다가올 미래에는 현 직업의 80%가 소멸될 테니 (예비) 노동자들이 끊임없는 자기 계발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민중의 저항이나 단결, 연대보다는 각자도생을 강요하는 수단으로 사용되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 이 단어는 자본주의 체제의 구조적 위기를 인식 못하도록 막는 용어로 이용된다.

  교육부와 교육청이 끊임없이 이런 용어들을 공문에 담아내면서 교사와 학생들이 자본가들의 요구에 맞추어 새로운 기술과 기법 익히게 몰두하게 만들 뿐이다. 결국 그들이 말하는 미래는 민중의 미래가 아니라 자본가들이 원하는 미래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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