킥보드 타다 도랑에 빠지다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편의점은 어른 걸음으로는 20분쯤 걸어야 나온다. 날씨가 좋을 때면 온 가족이 마을길을 따라 자전거와 킥보드를 타고 편의점까지 산책을 가곤 했다.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이 남편은 자전거를 타고, 아들은 킥보드를 타고 편의점으로 향하고 있었다. 나 역시 킥보드를 타고 내리막길을 신나게 내려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킥보드 손잡이가 ‘쑥’ 하고 아래로 내려가 버렸다. 내리막이라 이미 속도가 붙은 상태였고, 나는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져 바로 옆 도랑으로 떨어졌다.
그 도랑은 어른 허리까지 오는 깊이의 농수로였다. 다행히 바닥에 물이 잔잔하게 흐르고 있어 완충 역할을 해주었는지, 신기하게도 오른발이 조금 시큰거리는 것 말고는 괜찮은 듯 느껴졌다. 앞에 가던 내가 갑자기 사라지자 놀란 남편이 다가와 나를 잡아 올려주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오른발이 점점 더 아파왔다. 이 상태로는 도저히 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남편은 얼른 집에 가서 차를 가져오겠다며, 아들과 함께 여기서 잠깐만 기다리라고 하고는 자전거를 타고 돌아갔다.
당시 일곱 살이었던 아들은 아픈 엄마가 걱정이 되었는지 내 어깨를 주물러 주며 나를 위로해 주었다. 발은 점점 더 아파오고 머리도 어질어질했지만, 내가 아프다고 하면 아이가 너무 놀랄 것 같아 “엄마 괜찮아. 아빠 금방 올 거야”라고 말하며 버텼다. 시야가 점점 좁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길바닥이고 뭐고 그냥 누워 버리고 싶었지만, 내가 여기서 쓰러지면 아이가 혼자 남게 될 것 같아 이를 악물고 정신을 붙잡고 있었다.
다행히 남편은 금방 차를 가져왔고, 집에 계시던 친정 부모님이 나를 보시더니 “뼈가 부러지면 발가락이 안 움직인다더라. 발가락을 한번 움직여 봐라”라고 하셨다. 다행히 발가락은 모두 움직였다.
“거봐라, 그냥 삐었나 보다. 뼈가 부러지면 말도 못 하게 아프다더라. 말도 하는 거 보니 크게 다친 건 아닌가 보다.”
우리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우선 진통제를 하나 먹고 누웠다. 그날은 토요일이었고, 아직 병원에 갈 수 있는 시간이 남아 있었다. 지금 가지 않으면 내일 더 아파서 응급실에 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남편에게 가까운 정형외과에 가자고 했다. 엑스레이를 찍고 나온 의사는 나를 한참 바라보더니 말했다.
“이거 엄청 아플 텐데, 환자분 너무 멀쩡하시네요. 정말 이상하네요. 뼈가 세 개나 부러졌어요. 큰 병원으로 가보세요.”
큰 병원 응급실에서 진료를 받는 순간, 나는 쇼크로 기절했다. 통증이 아주 심한 경우 그렇게 될 수 있다고 했다. 아마도 아이 앞에서 아픈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었던 것 같다.
검사 결과 다리뼈는 네 군데나 부러져 있었고, 철심 여섯 개를 박는 수술을 받아야 했다.
킥보드 손잡이가 갑자기 내려간 이유는 단순했다. 며칠 전 누군가가 한번 타 보고 싶다며 손잡이 높이를 조절하겠다고 안전핀을 열어 두었다가, 갑자기 안 타겠다고 가버리는 바람에 다시 잠그지 않았던 것이다. 그 사실을 완전히 잊고 있었다. 다치고 나서야 그 장면이 떠올랐다.
처음에는 그 사람이 몹시 원망스러웠다. 꼭 그 사람 때문에 내가 이 고생을 하는 것만 같았다. 분노 때문에 이성적인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원망은 조금씩 가라앉았다. 감정이 가라앉고 나니, 그제야 현실이 보였다. 결국 이 모든 일은 내 사소한 부주의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나는 그날 앞으로 고꾸라지며 머리가 바닥 쪽으로 굴러갔다. 도랑에 빠지지 않았다면 머리를 시멘트 바닥에 부딪혀 더 크게 다쳤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회복할 수 없을 만큼 다쳤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다행히 뼈만 부러졌고, 뼈는 시간이 지나 모두 붙었다.
사고가 난 지 2년이 지난 지금, 나는 다시 멀쩡하게 걸어 다닌다. 물론 날이 안 좋거나 몸이 많이 피곤한 날이면 다리가 욱신거리거나 뻐근해진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날의 내리막길을 떠올린다. ‘쑥’ 하고 내려가던 킥보드 손잡이, 그리고 그 작은 틈 사이로 미끄러져 들어갈 뻔했던 내 인생의 방향을.
다행히 나는 아직, 이렇게 걸어 다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