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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ULL Apr 26. 2023

커피가 맛있는 시간

커피 마실 줄 안다는 사람들은 커피에 샷추가를 한다. 나는 커피 맛도 잘 모르고 커피에 취미가 없는 편인데 커피에 노동을 추가하면 그렇게 맛있다. 평소에 아무리 카페를 가도 커피는 입에도 안대는 편인데 근로계약서에 도장을 찍음과 동시에 마시기 시작한 커피는 심혈관으로 퍼지는 커피의 향과 맛에 탄식이 나온다. 연출팀으로 일하다가 내부조연출 어시로 일하게 되었다. 흔히들 OJT라고도 하는데 사실 나도 현장에서의 내 정체가 뭔지 모르겠다. 현장에 있는 연출팀을 보며 남의 일 같지가 않아 내가 마음아파하고 편집실에서는 아는 게 없고 숨막혀서 눈치를 보는 뭐 그런 롤을 맡고 있는 거 같다. 내부조연출 그녀의 동선은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기에 약간의 은밀한 자유가 있는 편이다. 갑작스럽게 들어오는 요청과 일들을 해결할 수 있는 노트북을 족쇄처럼 끼고 다닌다는 전제 하에.


오늘도 느즈막히 눈을 뜨고 이 동네 실업자 지선이한테 영상통화를 걸어본다. 이런 심심꼴랑한 시기에 지선이가 백수라서 참 좋다. 아마 지선이도 은밀한 자유가 있는 내가 참 좋을 것이다. 단 두명의 만장일치로 샤브샤브를 점심으로 먹었다. 무한리필 샤브샤브 집이었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서 전투적으로 식사를 마쳤다. 노트북을 끼고 근처 카페로 갔다. 사업자증빙지출 영수증을 끊으며 커피를 시켰고 노트북을 꺼내놨다. 커피를 들이마시며 장기 위치를 확인하고 오늘은 어떤 일이 급작스럽게 떨어질까 기다리며 책을 꺼냈다. 읽던 페이지를 펼치자 도저히 잠이 쏟아져서 펼친 책을 무릎 위에 올리고 벽에 기대 잠이 들었다. 자는 동안 살짝 추워서 이불 있냐고 물어볼 뻔 했다.


요즘 목이랑 어깨가 너무 아파서 마사지를 예약했다. 아픈 이유가 어설프게 유투브 보면서 괄사를 과하게 해서 그런건지 노트북 들여다보고 뚜들기는 일이 늘어서 그런건지 모르겠다. 어쨌든 애초에 괄사를 한 것도 노트북으로 업무를 보면서 목과 어깨에 부담이 가서였고. 괜히 노트북을 켜면 어깨랑 목이 더 아픈 것 같은 기분도 사실이다. 나를 형성하고 있는 세포와 근육도 일하기 싫은 걸까.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는게 이렇게 쉬운거였다니.. 32살 인체의 신비다.


오늘은 날씨가 추웠다. 아침에 이불 속에서 나올 때 부터 추웠다. 아무리 생각해도 전기장판 너무 일찍 철수 한 것 같다. 내년부터는 5월에 철수해야겠다. 이따가 새벽에 화천에 있는 호수로 촬영을 하러간다. 나는 뭘하게 되려나 눈치보다가 오긴 싫고 뭘하기엔 어색하고. 뻘쭘 머쓱 번갈아가면서 하다가 와야겠다. 아 그리고 가만히 있으면 추우니까 옷이나 따듯하게 입고 가야지. 그래도 뭘하게 될지 모르니 대본 한 번 더 보고 촬영 내용 한 번 더 숙지 해야겠다. 그리고 요즘 커피 맛있으니까 텀블러 챙겨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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