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주간연재 (목)
무턱대고 유럽가는 우선적인 목표는 성공했다. 가서 축구를 보는 것도 성공했다. 그렇지만 또 가고 싶다. 그때 제대로 못 느낀 감정들이 이제 와서 들고 있다. 사진 조금만 더 찍어 둘걸, 아 저긴 갔어야 했는데. 그게 여행 후의 묘미지 않을까.
지난 아쉬움들을 사건마다 담아내고 싶다. 이전의 기록들이 잊혀지기 전에. 행복하다고 말하는 기쁨과 왜 그랬을까 하는 아쉬움과 더불어 순간에 느꼈던 슬픔의 감정들을 말이다.
19년 추석 당일 새벽 버스를 타고 인천공항까지 가기로 했다. 친구들과 약속을 하고 어디서 볼지 정해놓고 아버지 차를 타고 가고 있었다. 버스터미널까지 도착하기 전까지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몰랐다.
평소와 다름없던 신호등에서 초록 불을 기다리고 있었고, 늦은 시간이었던 탓인지 도로에는 나와 아버지가 탄 차 한 대뿐이었다. 그러던 순간 뒤에서 큰 굉음과 함께 몸이 앞으로 쏠렸다. 뒤에서 크게 달려왔던 차와 부딪힌 것이다.
그 순간엔 아무 느낌도 들지 않았다. 만약 벨트가 없었으면 밖으로 날아갔을 만큼의 정도였을 것으로 추측한다. 그리고 차체가 워낙 단단해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여행도 못 가고 병원 신세였을 것이다.
그 날의 기억은 무조건적인 행복감으로 가득 찼던 나에게 매우 절망으로 다가왔다. 순간에 느낀 감정들은 모든 것을 막라하고 걱정과 분노가 뒤엉켜 매우 혼란스러웠다. 전 해 여행 출발 날 공항으로 가던 도중의 접촉사고로 여행의 하루가 밀렸던 경험도 겪어 그런지 출발 날에 대한 징크스라 생각되어 분노까지 튀어나왔다.
내렸다. 왜 빨간불에 정지해 있던 차를 뒤에서 크게 박았는지. 이유라도 듣고 싶었다. 운전자 분은 의식이 있는 듯 했지만 불러도 목소리가 작았고, 일단 119에 신고부터 했다.
아버지께서 다급한 목소리로 날 불렀고, 운전자분이 거품을 물기 시작했다. 운전자분을 운전석에서 내려드리고, 도로로 눕혔다. 난 현장서 멀찍이 떨어진 뒤에서 오는 차를 돌아가라고 수신호를 했으며 아버진 심폐소생술을 시도하셨다. 우리가 그나마 외상이 없어 천만다행이라고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구급대원분과 통화로 상황을 말씀드리고 정확한 위치까지 전부 말씀드렸다. 늦게 도착한 건지, 일찍 도착한 건지 파악도 힘들 만큼 정황이 없었다. 심각한 상황인 것은 틀림없었다. 찰나의 순간에도 집에 계신 어머니께 연락드리고 상황을 전달했다.
경찰분들도 오시고 상황을 설명해 드린 다음에 차 파편들이 널브러져 있는 것들이 보였다. 힘겹게 열리는 차 트렁크서 내 여행 가방을 꺼내고 우선 난 출국 전 이상이 없는지 나만 어머니 차를 타고 응급실로 향했다.
도착하고 방금 뵈었던 소방대원 분들이 보였다. 빨간 날이라 그런지 늦은 시간에도 사람이 많았다. 예매해둔 버스의 출발 시간은 한참 남았지만 서둘러서 다른 응급실로 향했다. 정말 다행인게 외상도 없었고 X-레이 결과도 이상없어서 불편한 오금 쪽을 그나마 안정시키는 약만 받아왔다. 아버지의 차량이 단단해서 잘 막아준 듯하다.
혼돈에서 빠져나오니 만감이 교차했다. 나보다 아버지가 걱정되어 30분마다 계속 통화했다. 연신 별일 없다고 말씀하셨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무탈히 시작하는 일이 없다. 안 다쳐서 망정이지 다쳐서 출국 못 했으면 평생의 한으로 남을 뻔했다.
빨리 교통사고를 잊으려했다. 그래야 온전히 여행을 즐길 테니. 그리고 액땜이라고도 말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다치고 액땜이란 단어를 쓴다면 악마도 고개를 내저을 것이다. 그저 잊기만을 바랐다. 여파로 같이 가는 친구들한테 피해는 끼치지 말아야 하니.
언제 뭐가 어떻게 터질지 모른다. 그날이 중요하고 기뻐야할 날이면 더욱이 위험해지는 것 같다. 몸 안다쳐서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늦지 않게 공항가는 버스를 타고 새벽 쪽잠을 겨우 청했다.
어찌저찌 해도 결국엔 해야하거나 하는 일은 어떻게든 돌아가게 되어있나보다.
여행 날만 아버지차를 타면 사고가 나는데 되도록이면 대중교통을 써야겠다.
아직도 그 도로 신호등 앞에서만 정차해있으면 뭔가 무섭다.
뒤가 서늘하달까. 불편한 불안감이 아직 남아있는듯 하다.
+갑자기 쓰고 싶은 TMI) 월급 D-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