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그앙 왕의 졸전
영국서의 즐거움을 마치고 바다 밑을 달리는 열차 유로스타에 몸을 맡기고 파리에 도착했다. 우리는 파리의 랜드마크인 에펠탑이 엠블럼 중심에 있는 축구팀 PSG(파리 생제르맹)의 리그앙 7라운드 현지시간 9월 25일 경기를 관람했다. 네이마르와 음바페의 강력한 공격진과 단단한 수비의 마르퀴뇨스, 티아고 시우바 등 스타 플레이어들이 가득한 팀인 PSG의 경기력에 잔뜩 기대하고 이날만을 기다렸다.
우리는 도착하기 전 우리는 파리 15구를 통과하는 10호선 열차를 타고 왔다. 경기장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지하철역에서 10분을 걸었는데 그 중간 우리나라에서 2006년 사라진 까르푸 매장을 볼 수 있었다. 어디서 많이 봤다 싶은 브랜드 로고와 이름을 읽자마자 어렸을 때 부모님과 함께 카트 한가득 채운 추억이 잠시 스쳐갔다.
친구와 동시에 ‘카..레포우르.. 칼르포... 아!...까르푸!’라고 소리쳤다. 이른 저녁 시간에 경기장에 도착했던 우리였기에 허기를 달랠 수 있는 음식을 사고 경기장으로 다시 향했다.
경기장에 도착한 뒤 우리는 PSG의 여러 물품이 있는 팬 샵으로 가는 도중 다른 경기들과는 다른 분위기를 느꼈다. 유독 경찰들이 몇 미터 가지 않아 계속 배치되어 있었는데 팬 샵으로 가는 길이 하필 원정팀이 입장하는 게이트였다.
구글 지도만을 들고 가는 도중 경찰이 우리의 길을 가로막았다. 불어로 이야기하는 경찰에게 우리는 팬샵으로 향한다고 아무리 번역기를 보여줬지만 갈 수 없었다. 조금 더 일찍 왔어야 했던 아쉬움을 가지고 가려는 찰나에 ‘정말 마지막이다’라는 심정으로 구단 직원에게 도움을 요청해 가려 했지만 구단 직원도 경찰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결국 시내에 위치한 팬 샵에 가고 아쉬움을 달랬다. 여행 중 핀 배지를 모았던 난 PSG 배지만 구하지 못했다.)
경기 시작 1시간 전 우리는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이날 만큼은 경기장에 대해 미리 준비해서 갔었다. 검색하던 도중 찾은 글에서 이곳은 가방을 맡길 수 있는데 돈을 받지 않고 그냥 맡겨준다는 글을 믿고 가방을 챙겨 갔다. 여행 중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가방을 마치 도라에몽 주머니처럼 쓰는 난 이게 뭐라고 기뻐했다. (영국서 겪은 일이 있어서 그런지 행복을 느낀 것 같다.)
근데 정작 경기장에 들어가서 보니 가방을 맡길 곳이 없어 보였다. 또다시 우리는 번역기를 들고 ‘가방 맡기는 곳이 어딘가요?’라는 문장을 들고 여러 직원에게 물었지만, 오늘 하루만 일한다며 나도 잘 모른다고 말할 뿐이었다. 그러다가 이상한 구조물 앞에 직원이 있었는데 그곳이 바로 가방을 맡길 수 있는 곳이었다.
일단 맡기고 들어가자 싶었던 우리는 가방을 맡긴 뒤 나중에 우리의 가방임을 증명할 수 있는 종이를 받았다. 여태 갔었던 토트넘, 맨유의 경기장에서 돈을 내고 가방을 맡긴 우리는 이때까지도 글을 믿지 못하고 돈 낼 준비도 했었다. 종이를 받으며 ‘진짜 공짜 맞나요?’라고 반신반의의 말투로 물었다.
그러자 직원은 당연하다는 듯이 ‘그렇다’라고 답했다. ‘free’라는 말이 뭐라고 우리는 직원에게 엄지를 치켜세우며 고맙다고 했다. ‘역시 돈이 많은 구단이라 이런 작은 것들 정도는 돈을 안 받는구나’ 생각하며 기분 좋게 경기장으로 들어갔다. 좋아하는 팀에 돈이 많으면 팬들도 이런 사소함에 긍정적인 기운을 받을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현지시간으로 수요일 저녁에 펼쳐진 경기와는 다르게 가득 찼는데, 약 4만 8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파르크 데 프랭스는 이날 약 4만 7300명이 찾아오며 파리지앵의 축구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평일 저녁 경기에 라이벌 경기도 아닌 랭스와의 경기임에도 불구하고 가득 찬 경기장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거의 만원관중에다가 PSG의 팬들은 정말 대단한 응원 열기를 선보였다.
이날 경기 후 얼마 뒤인 토요일 보르도 원정 경기를 준비하기 위해서 인지 PSG는 선발라인업에 힘을 뺀것처럼 보였다. 거기다가 팀의 주축인 음바페, 이카르디, 카바니등 여러 선수들이 부상으로 대기명단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그래도 선발라인업에는 네이마르, 나바스 등 여러 스타들이 넘쳐났다. 반면에 랭스에는 누구나 알 수 있는 이름이 있는 선수들로 구성되지는 않아 PSG보다 무게감이 떨어져 보였다. (지난 시즌 랭스로 이적한 석현준은 이날 라인업 자체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만약 이날 나왔다면 절반인 3경기가 한국인 선수가 출전한 경기가 될 뻔했다.)
우리가 며칠 전 봤던 맨시티와 왓포드의 경기처럼 PSG가 랭스를 압도할 줄 알았다. PSG는 마치 나사 몇 개가 풀린 자전거처럼 길을 제대로 가지 못하고 좋은 경기력을 펼치지 못했다. 공의 점유는 대부분 PSG가 가져갔지만, 랭스는 한 번의 기회를 제대로 터트렸다. 전반 29분 아프리카 시에라리온 출신의 하산 카마라가 머리로 골망을 흔들며 홈팬들에게 찬물을 끼얹었다.
또한 카마라를 막지 못했던 01년생 수비수 로익 음베 소흐는 본인의 수비 실패로 실점 후 경기에서 집중하지 못해 실수를 연발했다. 관중들은 처음의 몇몇 실수에서는 야유를 보냈었는데, 관중들은 어린 선수임을 알고 로익 음베 소흐가 공을 잡게 되면 일부러 자신감을 북돋아 주기 위해 환호성을 지르고 했다. 그냥 패스만 성공해도 박수를 쳐줬다. 그 광경은 처음 보는 상황이어서 그런지 웃음만 나왔다.
PSG는 리그 우승컵 8번 중 6번을 2010년대에 들어 올렸을 만큼 최근 프랑스 리그 앙의 패권을 쥐고 있는 왕이다. 이런 왕의 경기를 보려 한 게 아니었는데 이날은 이빨 빠진 호랑이보다 더한 발톱까지 빠진 호랑이 같았다. 겉만 번지르르한 가죽과도 같은 선수들이지만 정작 보여주는 것은 없었다. 이런 비참한 경기력을 계속 보여주다 교체로 들어온 랭스의 보레이 디아의 환상적인 발리 골이 후반 추가시간에 터지며 경기는 0-2 PSG의 패배로 마무리되었다.
후반 추가시간 터진 보레이 디아의 골과 동시에 랭스 팬을 제외한 대부분의 관중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만원에 가까운 경기에서 홈팀이 약팀에게 패배한 순간 그야말로 ‘갑분싸’였다. 거기다가 원정도 아닌 홈에서 그런 패배였으니 ‘갑분싸'가 될 수밖에 없었다. 경기장을 나오며 화를 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우리는 최소한의 충돌도 걱정되어 사진 찍을 틈도 없이 빨리 그 자리를 빠져나갔다.
약팀이 강팀을 잡는 놀라운 결과였지만, 우리는 PSG의 많은 득점을 기대하고 가서 그런지 실패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지만 모든 경기는 뜻대로 되지 않기에 실망을 접어두며 다음 경기 보르도와 PSG의 경기를 기대할 수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