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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보더리스

던파와 메이플은 어떻게 전통공예 작품이 되었나?

<BORDERLESS : 전통, 차원의 문을 열다> 비하인드 스토리

찬란한 백제의 고도 부여에 전통문화와 국가유산을 교육하는 국내 유일의 국립대학 한국전통문화대학교가 있다.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캠퍼스 곳곳에서는 학생들이 전통문화를 배우고 익히며, 전통을 이어 새로움을 만들어 나가는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전통미술공예학과에서 회화, 도자, 조각, 섬유 등을 배우고 있는 7팀 13명의 신진예술가들은 넥슨재단이 후원하는 《BORDERLESS : 전통, 차원의 문을 열다》 전시를 위해 단청, 도자, 목칠, 자수, 회화, 조각, 매듭, 염색 등 자신만의 방식으로 네오플과 넥슨의 게임 던전앤파이터와 메이플스토리를 담은 전통 공예 작품을 제작했다. 던전앤파이터 대표 직업을 단청 기법으로 그리고, 달항아리와 목칠로 메이플스토리만의 감성을 표현하고, 오방색 비단 주머니에 차원의 도서관을 수놓고, 도원경의 사계를 새롭게 해석해 그려 족자에 담고, 검은 마법사에게 조선시대 곤룡포를 입히고, 메이플스토리 캐릭터를 노리개에 담아 매듭짓고, 천연 염색으로 픽셀을 표현한 단풍나무 조명으로 만들었다.



넥슨재단은 지난해 연말 덕수궁에서 국가무형유산 전승자들과 현대 공예 작가들과 함께 진행한 보더리스 Craft판 전시 <시간의 마법사: 다른 세계를 향해>의 굿즈 판매 수익금 3,300여만 원 전액을 가장 뜻깊게 사용하기 위해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신진예술가 양성 지원 사업에 기부했다. 이를 통해 한국전통문화대학교에서는 전통미술공예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넥슨 IP를 활용한 전통 공예 작품 공모전 ‘게임, 헤리티지가 되다’를 진행했고, 전문가 심사와 대중 투표를 거쳐 메이플스토리와 던전앤파이터를 담은 7점의 작품이 최종 선정되었다.
작품은 11월 12일부터 24일까지 경복궁에서 열리는 특별 기획전 《BORDERLESS : 전통, 차원의 문을 열다》에서 최초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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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슨재단과 한국전통문화대학교가 함께 하는 특별기획전
<BORDERLESS : 전통, 차원의 문을 열다>
일정 : 2025년 11월 12일 - 24일 (화요일 휴무 / 12일 오후 3시 전시 오픈)
장소 : 경복궁 생물방


메이플스토리는 2003년에, 던전앤파이터는 2005년에 처음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번에 《BORDERLESS : 전통, 차원의 문을 열다》 전시를 함께한 한국전통문화대학교의 신진예술가들도 비슷한 시기에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형제자매와 함께 메이플스토리를 플레이해 온 용사님이었고, 친구들이 던전앤파이터를 플레이하는 모습을 어깨너머로 지켜보기도 한 게임 세대가 만든 전통 공예 작품은 어떤 모습일까?


넥슨재단은 부여의 한국전통문화대학교에서 한창 마무리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학생들을 만났다. 2학년 학부생부터 국가문화유산 이수자인 대학원생까지 작가들의 경험치는 조금 달랐지만, 열정만큼은 똑같이 뜨거웠다. 쪽 염색을 배웠다며 새파래진 손을 펼치며 환하게 웃는 학생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보더리스 작품을 제작 과정의 즐거움과 어려움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게임을 한 땀 한 땀 전통 공예 작품에 수놓고 칠하고 그리고 조각한 작가들의 열정과 정성은, 나도 내 게임을 위해 내가 잘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어린 시절 다정한 추억과 지금의 빛나는 청춘을 담아 만든 보더리스 작품과 작가들이 들려준 소중한 뒷 이야기를 소개한다.



단풍나무 아래에서 박영주 이진한

작품 설명 : 전통 달항아리와 목칠 기법을 현대 게임 메이플스토리와 결합하여,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시각화했다. 달항아리의 부드러운 곡선과 순백색은 어린 시절 추억을, 단풍나무와 선반의 목칠·나전칠 기법은 성장과 영원한 기억을 상징한다.

조각을 전공하는 박영주 작가와 도자를 전공하는 이진한 작가가 함께 한 작품이다. 이진한 작가가 달항아리를 빚고 박영주 작가는 목칠로 제작한 선반에 나전 칠기로 단풍잎을 새겨 넣었다. 거기에 삼베와 생칠로 만든 작은 버섯을 얹어 귀여움을 더했다. 이진한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해온 친근한 게임이라 공모전 공고를 보자마자 메이플스토리가 떠올랐다며 메이플스토리의 단풍에서 느낀 풍성한 한가위 정취를 달항아리와 단풍나무로 표현했다고 말했다. 가을의 경복궁과 무척 잘 어울리는 작품이 될 것 같다. (전시에선 실제 단풍나무를 꽂을 예정이다!)

달항아리에 꽂힌 단풍나무 가지를 따라 시선을 옮기면 마치 단풍잎이 떨어진 듯, 선반에 살포시 새겨져 있다. “나전칠기로 단풍잎의 색깔을 표현하기 위해서 진주패 뒷면에 일일이 칠을 했습니다. 그래서 각도에 따라 단풍의 붉은빛으로 보이기도 하고 진주패 특유의 하얀빛으로 보이기도 해요.” 박영주 작가는 옻칠의 깊이감을 감상해주셨으면 한다는 당부를 전했다. 그 옆에는 작은 버섯도 놓여 있다. “귀엽다!”라고 외치는 우리에게 작가는 작품을 선뜻 건네주었다. 어, 무척 가볍다. 삼베와 옻으로 만들어서 단단하면서도 가볍단다. 무거운 달항아리와 가벼운 버섯 조각의 조화로움이 인상적이다.


도깨비 노리개 박주희

작품 설명 : 메이플스토리 대표 몬스터 핑크빈, 주황버섯, 슬라임, 돌의 정령, 예티의 모습과 아이콘을 노리개 중앙에 위치한 옥색 장식물에 담고, 대표하는 색깔로 매듭을 이었다. 노리개 아래에 달린 낙지발술 또한 캐릭터마다 다른 기법과 조합을 사용하여 표현하였다

섬유 전공 석사 과정에 재학 중인 박주희 작가는 평소 전통에 현대적인 요소를 넣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이번 공모전 소식을 접하고, 노리개에 게임을 담는다면, 얼마나 구현할 수 있을지 스스로 궁금해져서 공모전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박주희 작가의 도전이 보더리스의 취지를 그대로 담고 있어 무척 반가웠다.

메이플스토리 대표 몬스터 별로 실 색깔을 골라 매듭 지었으며 가운데 장식은 실제 옥으로 하고 싶었으나 여의치 않아 옥색 레진으로 표현했다. 장식에는 캐릭터와 연관된 아이콘을 함께 배치했으며 노리개 끝의 낙지발 술에도 캐릭터별 특징을 볼 수 있는 매듭 기법을 섞었단다. 자세히 들여다보며 디테일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놓치지 않기를!


빛의 쉼터 박지민 오하영

작품 설명 : 메이플스토리 속 ‘평화의 단풍나무’를 재현한 작품이다. 다양한 크기의 정육면체와 직육면체로 픽셀 디자인을 구현했으며 모시 직물에 소목, 천근, 치자 등으로 천연염색을 하여 단풍의 색을 표현했다. 중앙에 설치된 조명이 모시를 투과하며 나타나는 빛의 색감이 게임적인 효과를 높이며 동시에 따뜻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박지민, 오하영 작가는 어제 쪽 염색 수업을 해서 손이 이 모양이라며 파란 손바닥을 펼쳐 보이며 환하게 웃었다. 두 작가 모두 섬유전공 2학년으로 본격적으로 전통 공예를 배우기 시작한 지는 아직 일 년도 채 되지 않았단다. 이들에게 메이플스토리는 어릴 때부터 함께한 친근한 게임이다. 게임 속 단풍나무를 표현하고 싶어 ‘픽셀’이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렸고, 단풍나무의 느낌과 따뜻한 빛을 전하고 싶어서 모시 원단에 소목, 치자 등으로 노랑, 주황, 빨강으로 천연 염색을 했다. 조명을 켜면 천연 염색으로 표현한 픽셀이 게임인 듯, 현실인 듯 몽환적으로 빛난다. 작품뿐 아니라 빛도 함께 눈과 마음에 담아 주기를!


도원경전도 강예주 김민솔 오다윤

작품 설명 : 메이플스토리의 도원경 맵을 전통 족자 형식으로 담아낸 작품이다. 도원경 속 족자 아이템이 여러 장소로 이동하는 ‘문‘이 된다는 아이디어를 이용, 도원경의 사계를 한 폭에 담았다. 사계절의 풍경 속에 아라·슈리·백연·가온 등 캐릭터들이 거닌다. 전반적으로 분채를 사용하였으며, 석채를 부분적으로 사용하였다. 족자 매듭은 생쪽, 국화 등 전통적인 양식을 따랐다.

회화 전공 오다윤, 강예주 작가와 섬유 전공 김민솔 작가가 보더리스를 위해 뭉쳤다. 메이플스토리에서 가장 동양적인 맵을 찾다 도원경을 만났단다. 보통 게임 IP를 활용해 그림을 그린다고 하면 대표 캐릭터를 활용하기 마련인데, 맵을 가장 먼저 떠올렸다니 과연 게임 세대답다.

어린 시절부터 동생과 함께 메이플스토리를 플레이했다는 오다윤 작가는 집이 외국이라 여름방학 동안 머물 곳이 없어 큰 화판을 작은 경차에 겨우 싣고 호텔, 친구집, 할머니집 등 전국을 돌아다니며 그림을 그렸단다. 그림과 함께 여행하는 기분이었다며 웃는다. <도원경전도>에는 도원경의 사계뿐 아니라 작가의 어린 시절과 여행의 추억도 담긴 셈이다. 친구들과 다 같이 모여 메이플스토리를 플레이했던 추억을 말하던 김민솔 작가는 함께한 동료 작가들과 모여 노래도 듣고 수다도 떨며 <도원경전도>를 스케치했다는 에피소드를 전했다.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게임과 전통공예가 결코 멀리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도원경전도>에는 마치 친구들과 함께하는 여행처럼, 구석구석 재미있는 포인트들이 많다. 자세히 들여다보며 숨겨진 이야기들을 발견해 주길!


육각마도록 안유진 양지수

작품 설명 : 전통 단청 기법과 현대 게임 세계가 만나는 독창적인 융합 작품이다. 던전앤파이터 속 6개 주요 직업을 대표하는 무기를 한국 전통 회화의 정수인 단청 벽화의 구도와 기법을 차용하여 표현해 게임의 세계관을 시각적으로 풀어냈다.

이번 전시에서 유일하게 던전앤파이터를 표현한 작품이다. 두 작가는 석사 재학 중이며 안유진 작가는 단청장 이수자이기도 하다. 지난해 덕수궁에서 진행한 보더리스 Craft판 전시 《시간의 마법사: 다른 세계를 향해》 전시를 통해 게임이 전통공예에 녹아들 수 있다는 걸 새롭게 알았고, 국내 기업에서 이수자 선생님들을 챙겨주는 것에 대해 좋은 인상을 받았단다. 마침 올라온 공모전을 보고, ‘우리도 한번 신나게 표현해 보자!’ 하며 참여하게 되었다.

안유진 작가는 어린 시절에 사촌 오빠 따라 던전앤파이터를 해봤었는데 직업이 마검사였단다. 그때 보았던 던전앤파이터의 동양적인 맵을 단청과 연결해 보자는 아이디어에서 작품이 시작되었다. 다양한 직업군과 던파의 맵을 산수화처럼 그리고자 했고, 이를 단청 사찰 벽화 기법으로 표현했다. 단진은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사자보이즈처럼 표현해 귀엽게 배치했다. 가장 트렌디한 전통 공예 작품이 아닐까 싶다. 더불어 궁궐의 단청에서 볼 수 있는 불수감, 복숭아, 매화꽃 같은 요소를 함께 그려 넣었다. 보는 사람들에게 복을 전하고 싶은 마음을 담았다는 작가들의 고운 마음을 떠올려 주기를!


자수 오방색 주머니 김나연

작품 설명 : 다섯 가지 색의 비단을 모아 만든 주머니다. 오방색 주머니는 오행(五行)에 따라 여러 재앙을 물리치는 벽사의 의미와 복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고 있다. 앞면은 메이플스토리의 마스코트들로 현재를 상징하고, 뒷면은 메이플스토리 테마던전 차원의 도서관을 테마로 과거를 형상화하였다.

보더리스 Craft판 전시 <시간의 마법사: 다른 세계를 향해>에 참여한 매듭장 이수자 김시재 교수님의 추천으로 공모전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김나연 작가는 가족들과 함께 메이플스토리를 아주 오래 해왔다며 어린 시절 어머니가 작가 계정으로 로그인해서 옷을 사주고 가시기도 했다는 에피소드를 들려주며 미소 지었다. 작가가 일일이 수놓은 자수 오방색 주머니에는 그야말로 한 땀 한 땀 추억이 담겨있는 셈이다.

“메이플스토리 마스코트와 제가 제일 좋아하는 스토리인 차원의 도서관을 함께 배치하며 과거와 현재를 통합하는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용사님이 만든 주머니 안에 가득한 복을 만나 보기를!


가장 오래된 어둠, 천년의 잠에서 깨어나다 안지민 우시온

작품 설명 : 조선시대 임금의 예복인 곤룡포를 재해석해 메이플스토리의 상징적 보스 '검은 마법사'의 강렬한 아우라와 무게감을 표현했다. 태조와 태종 시기의 청색 곤룡포를 모티브로 삼아 용문양의 고증을 충실히 반영하며 역사적 깊이와 상징성을 더했다.

'메이플스토리에서 최종 보스로 등장하는 검은 마법사에게 조선 초기 태종과 태종이 입었던 청색 곤룡포를 입히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작업이 시작되었다. 조각을 전공한 안지민 작가가 피규어 조형 작업을 담당하고, 회화 전공 우시온 작가가 채색을 맡았다.

두 작가에게는 이번 작업 자체가 새로운 도전이기도 했다. 3D 프린터로 출력된 조형물을 조각도로 다듬고, 처음 사용해 보는 에어브러시로 채색을 하는 등의 과정이 낯설고 쉽지 않았지만 새로운 방법을 시도하고, 처음 접하는 도구를 배우고 익히는 과정이 또 다른 성장의 기회였다고 두 작가는 입을 모아 말했다.

안지민 "기계로 출력된 형태가 제 손을 거치며 점점 생명력을 얻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조각이라는 것은 결국 무생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습니다."

우시온 "원하는 질감이 나오지 않아 여러 번 실패하기도 했지만, 다양한 자료를 찾아보며 압력과 거리, 색 농도를 조절하는 방법을 익혀 나갔습니다. 새로운 도구를 배우고 익히는 과정이 제게는 또 하나의 성장의 기회가 되었습니다."



<BORDERLESS : 전통, 차원의 문을 열다> 전시 상세 정보

https://borderless.nexonfoundation.org/news/proceeding/3208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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