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누 Jul 21. 2020

나는 엄마 취향을 몰랐다

"이쁘지 않니?" 엄마는 홈쇼핑을 보고 있었다. 단발펌을 한 여성 쇼핑호스트가 가죽 가방을 들고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가방 필요해요?" 그런데 엄마는 소리를 했다. "밥은?" 엄마는 내 대답도 듣지 않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 나는 아침을 늦게 먹었다고 얘기하려다, 그냥 말았다. "조금만 줘요." 엄마는 새로 산 원목식탁 위에 찬을 꺼내 놓았다.




"선물이에요. 월급 선물." 2005년 봄. 첫 직장에 출근한 지 두세 달쯤 되었을 무렵에야 부모님 선물을 샀다. 첫 월급 선물치고 많이 늦었다. 취업 준비하며 예민한 척은 다해놓고 취업하고는 미련하기 짝이 없었다. 엄마 선물은 장년층 브랜드 매장에서 그럴싸한 가방으로 골랐다. 명품 가방 패턴을 본뜬 모양새였다. 같은 매장에서 아빠 선물도 골랐다. 경조사 다니기 바쁜 아빠를 위한 감파란 겨울 재킷이었다.


아빠는 선물 받은 재킷을 종종 입었다. 하지만 엄마는 가방을 들고 다니지 않았다. 서운한 마음에 물어도 봤다. "아껴 써야지. 우리 아들이 사준 건데." 엄마는 내가 선물한 가방을 고이 모셔뒀다. 예전부터 그랬다. 엄마는 무얼 탐하지 않았다. 본인보다 가족이 우선이었다. 18평 아파트 면적에 부모님과 사남매, 할머니, 고모, 삼촌까지. 아홉 식구 살림을 도맡느라 본인 생각은 뒷전이었다. 삼촌과 고모가 결혼해서 나가고 할머니가 돌아가신  엄마도 이제 좀 쉬나 했는데, 엄마는 직장을 구했다.


사남매 막내인 내가 결혼할 때 엄마는 결혼 비용을 가족 몰래 보탰다. 엄마는 비용이 적다며 도리어 미안해했다. 안 받는다 거절했지만 빌려주는 거라는 말에 받고 말았다. 40년 가까이 된 아파트 재건축이 진행될 때도 그랬다. 새 아파트에 입주하려면 추가 분담금이 필요했다. 엄마는 자식들 부담 주기 싫어 시골로 간다 했지만 아빠와 사남매가 고집부렸다. 아파트 담보로 대출 받아서 사남매가 나눠 내면 이자 부담은 크지 않다고 설득했다. 2년 뒤 준공이었다. 부모님은 준공 때까지 옆 단지 아파트에서 월세를 살기로 했다.


부모님이 새 아파트에 입주할 때 엄마에게 받았던 돈을 이자 쳐서 갚았다. 엄마는 안 받을 게 뻔해서 아빠 계좌로 넣었다. 아빠에게는 엄마 필요한 거 사시라고 단단히 일렀고, 엄마에게는 엄마가 사고 싶은 대로 사도 된다고 말했다. 엄마는 새 집으로 이사하면서 30년 넘게 끌어안고 살았던 가전, 가구, 생활용품을 다 버렸다. 그리고 새 물건으로 새 집을 채웠다. 천연 면피를 두른 소파와 백참나무로 만든 TV장, 옹이가 붙은 원목식탁까지. 새 집은 새 냄새로 가득찼다.




엄마는 TV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마감 시간이 임박했는지 쇼핑호스트가 채근했다. 쇼핑호스트 손에 들린 가방은 심플했다. 내가 엄마에게 선물했던 가방과 달랐다. 품이 넉넉하고 튀지 않는 진회색 인조 가죽 가방이었다. 이제는 안다. 내가 선물했던 가방은 엄마 취향이 아니었다. 그 가방은 크기가 작아 직장에서 먹을 도시락통이 들어가지 않았고, 엄마가 선호했던 무채색도 아니었다. 나는 엄마 취향을 몰랐다. 아니, 알려는 노력도 안 했다. 받는 사람  고려 없이 선물해 놓고 지 않는다고 서운해했다.


쇼핑호스트가 마무리 멘트를 했다. "엄마가 돈 보탤 테니까 주문해볼래?" 엄마는 내가 사준다고 하면 안 사고 말 걸 알았기에 그냥 수긍했다. "인터넷으로 찾아보고 주문할게요." 내가 TV 화면을 스마트폰으로 찍자 엄마는 만족했는지 식탁 위 접시를 치웠다. 빈 그릇 부딪치는 소리가 집안을 울렸다. 홈쇼핑에서는 어느새 원로 여배우가 녹즙기를 소개하고 있었다. 창 밖이 투명했다. 구름을 비낀 햇살이 새 마룻바닥에 넓게 퍼졌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