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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봉기 Sep 25. 2020

탈린 여행

세상에서 가장 낭만적인 도시

세계에서 가장 낭만적인 곳으로 알려진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은 헬싱키에서 배로 2시간 거리에 있다. 탈린은 중세 이후 한자동맹으로 부를 누렸던 흔적과 19세기 이후 제정 러시아와 구소련의 지배를 받은 흔적이 남아있어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도시이다.


발트해의 보석이라 불리는 탈린의 여행은 성문 입구부터 시작한다. 실자라인이나 바이킹 라인을 타고 헬싱키에서 온 여행자라면 배에서 내려서 20분쯤 걸으면 동화 속 도시의 성문이 나온다.



성문을 지나 제일 먼저 만나는 곳이 올레비스타 교회이다. 탈린 어디에서도 볼 수 있는 교회는 13세기에 만들어졌으며 첨탑의 높이가 124미터나 되어 그 옛날 선원들과 선박의 이정표와 등대 역할을 하였다. 탈린의 아름다운 시내를 보려면 성당의 전망대로 올라야 한다.



125미터나 되는 나선형의 좁은 계단을 천천히 오르다 보면 내려오는 사람과 번갈아가며 몸을 바꿔야 한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마지막 나무 계단을 삐걱거리며 오르면 감미로운 탈린의 시내가 숨죽이며 여행자를 기다린다. 조금은 위험해 보이는 철제로 만들어진 난간을 잡고 앞사람과의 간격도 충분히 없는 곳에서 첨탑의 지붕 위를 한 바퀴 돌며 듬성듬성 바라보는 탈린의 모습은 아름다움을 피우는 꽃 같다.



빨간 지붕과 파스텔톤의 벽 그리고 돌로 만들어진 골목길이 발트해의 하늘을 배경으로 활짝 펼쳐져 있다. 교회를 둘러보고 좁은 골목을 따라 시청사를 향하다 보면 이 곳 도시에서 가장 오래된 세 자매 건물이 나온다. 세 자매의 집들은 비슷한 모양과 높이 그리고 색을 가지고 있어 누구나 이 건물을 보면 그 이름이 바로 이해된다.



15세기에 건축된 이 집들은 실제 내부는 설계도 다르고 분위기도 다르지만 마치 쌍둥이처럼 꼭 달라붙어있으며 아름답게 꾸며진 건물의 전면부의 장식으로 인하여 세 자매라 불린다.   


세 자매 건물에서 시청사로 가다 보면 탈린에서 유일하게 르네상스 양식을 그대로 보존한 상인 조합인 검은머리형제단 회관이 나온다. 이 곳 건물을 자세히 보면 3층에 있는 창고에 물건을 올리기 위한 지붕 밑에 도루래가 설치되어 있다. 당시 얼마나 많은 무역이 있었는지 짐작케 한다.



검은머리형제단은 독일에서 온 젊은 미혼 상인들이 만든 조합으로 <검은머리형제>라 이름을 붙인 건은 이집트 출신인 순교자 성 모리스를 수호성인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재력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자동맹의 핵심적 위치를 차지하며 탈린과 리가 등 발트해 연안 도시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한자동맹은 1200년 독일의 항구 도시 뤼베크에서 발족해 서쪽으로는 런던, 동쪽으로는 러시아의 노브고로드를 아우르는 자유무역 벨트를 형성했다.


한자동맹의 설립 취지는 두 가지였다.


첫째는 당시 맹위를 떨치던 해적과 강도들로부터 상인들을 보호하고 안전한 무역로를 확보하는 것이며 둘째는 회원 도시들이 서로 믿고 공정한 거래를 할 수 있는 규정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상인회관에서 광장으로 가다 보면 오래된 약국이 나온다.



이별의 아픔을 치유하기 1422년에 생긴 이후 약 600년 동안 10대째 영업을 하고 있는 유서 깊은 약국은 지금은 일반 조제약뿐만 아니라 이별을 잊게 해주는 약과 같은 정체불명의 약들을 판매하고 있어 많은 여행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약국에서 나와 좁은 골목길을 걷다 보면 갑자기 막힌 숨이 터지듯 탁 트인 광장이 나온다. 광장은 시청 건물이 들어서기 전까지 시장으로 이용되어 왔으며 때로는 축제의 장소로 때로는 죄인들을 처형하는 장소로도 사용되었다. 이곳에 크리스마스가 되면 세상에서 가장 큰 크리스마스트리가 세워진다.



시청사의 탑 위에는 풍향계인 올드 토마스가 보인다. 풍향계의 모델인 토마스는 마을 경비원으로 평생 동안 마을 광장에 있는 아이들에게 사탕을 주었다. 그가 죽자 마을 사람들은 그의 모습을 가장 높은 곳에 달아서 아이들에게 착한 일을 하면 그가 지켜보고 있다가 밤에 베개 아래에 사탕을 남겨 둘 것이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이후 구리로 만들어져 불멸이 된 토마스는 탈린과 시민들을 계속 지켜보게 되었으며 1944년 3월 폭격으로 파괴되었다가 1952년에 재건되었으나 1996년에 첨탑이 다시 개조되어 세 번째 올드 토마스가 세워졌다고 한다.


시청 뒤로 돌아가면 탈린에서 가장 중세적이며 가장 유명한 식당인 <올데한사>가 나온다. 이 식당은 은은한 촛불 장식과 함께 중세풍의 인테리어와 메뉴판 그리고 중세의 옷을 입은 사람들이 중세의 그릇에 담아서 음식을 가져다준다.



이 식당을 대표하는 음식은 달콤한 허니 비어와 돼지다리 요리이지만 정작 인기 있는 음식은 가게 앞 마차에서 파는 아몬드 땅콩이다. 아몬드 땅콩은 꿀과 계피를 넣고 낮은 불로 볶아 달콤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점심을 먹은 후 오후에 처음 방문하는 곳은 중세풍이 물씬 풍기는 카타리나 골목이다.



중세로의 시간 여행을 하기에 가장 적당한 카타리나 골목은 수공업 길드의 주 활동지역으로 예쁘고 아기자기한 공방들이 모여있다. 카타리나 골목에서 툼페아 성이 있는 언덕을 오르면 중간에 성 니콜라스 교회가 나타난다.


성 니콜라스 교회는 1230년 독일 상인과 기사들을 위해 지어졌으며 탈린 성곽이 지어지기 전까지 요새의 역할도 하였다. 현재 이 성당은 산타클로스의 유래가 된 성 니콜라스를 수호성인으로 모시고 있다.



많은 여행자들이 이 교회를 찾는 이유는 15세기 후반에 그려진 <죽음의 무도회>를 보기 위해서이다. 원래 이 작품은 3미터의 길이에 50명의 인물이 등장하지만 현재는 중앙의 1미터만 전시되어 있다.



작품에서 죽음을 상징하는 해골이 교황과 황제 그리고 황후를 죽음으로 데려가고 있다. 이는 인간의 삶이 일시적이며 죽음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다가온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것을 증명이나 하듯이 작품에서 부자는 앞쪽으로 가난한 사람들은 뒤쪽에서 춤을 추고 있지만 그 형상은 모두 해골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제 니콜라스 교회를 나와 계단을 따라 언덕에 오르면 툼페아 성과 성벽이 나온다. 툼페아는 최고봉이라는 뜻으로 13세기에 석회암 절벽 위에 세워진 성으로 그동안 에스토니아를 점령했던 여러 나라들이 번갈아가며 자신들의 근거지로 삼았던 곳이다. 지금은 에스토니아 공화국의 국회의사당이 있다.



툼페아 언덕 위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물은 알렉산더 네프스키 성당이다. 러시아가 에스토니아를 지배할 당시 자신들의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가장 높은 곳에 세운 성당은 에스토니아인들에게 치욕의 상징이지만 오히려 이를 반면교사를 삼기 위해 그대로 둔다고 한다.


동글동글한 양파 모양의 첨탑이 있는 러시아식 성당은 그 자체만으로 충분히 아름답다.



네프스키 성당을 뒤로하고 파트 쿨리 전망대로 향한다.


항상 많은 사람들이 붐비는 이 곳에서 서면 붉은 지붕 위로 우뚝 솟은 올레 비스타 성당과 고깔모자 모양의 성탑과 성벽 그리고 멀리 핀란드만을 감상할 수 있다.



탈린의 구시가가 2차 세계대전 속에서도 이렇게 완벽히 보호될 수 있었던 이유는 항상 안개가 짙게 끼여 있었기 때문이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탈린이 안개에 가려있어 전투기들은 폭탄의 투하지점을 가늠하지 못했다고 한다.탈린의 날씨가 오늘날 우리에게 이토록 아름다운 구시가를 허락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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