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움
핀란드의 국립 미술관인 아테네움은 고풍스러운 외관이 눈에 띄는 고전 미술관이다. 이 곳에는 고흐와 뭉크 등 유럽의 유명한 화가들의 작품이 있지만 평소에 접하지 못하는 핀란드 화가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어 꼭 방문해야 하는 곳이다.
스웨덴의 700년 그리고 연이은 러시아의 100년의 지배에 맞서 저항해오면서 조국에 대한 사랑과 민족적 정체성에 대한 자각이 담긴 핀란드 화가의 작품들은 보는 내내 우리 민족과 그 땅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을 떠 올리게 한다. 먼저 핀란드를 대표하는 화가인 악셀리 갈렌 칼렐라의 <까마귀와 소년>이라는 작품을 만나보자.
소년과 까마귀가 풀밭 위에 서 있다. 서로를 마주 보고 있지만 시선은 각자이다. 그래서 쓸쓸함이 느껴진다.
그러나 한참을 보고 있으면 소년과 까마귀가 쓸쓸함으로 하나 됨을 알 수 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혼자이다. 하지만 억압적인 식민지 조국에서 살다 보면 가끔은 주위에 함께하는 타인뿐만 아니라 하나의 생명체만으로 힘이 될 때가 있다.
이 작품은 칼레라가 열아홉 살에 그린 작품으로 파리 미술계의 데뷔작이었다. 핀란드가 러시아의 지배를 받던 시절에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핀란드 사람으로 민족적 정체성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민족 서사시인 <칼레발라>와 핀란드의 풍경은 그가 화가가 되기 이전에 이미 그를 매혹시켰던 주제들이었다.
다음은 그가 조국의 자연을 노래한 작품인 <카이 텔레 호수>를 감상하자.
카이 텔레 호수에 어스름한 기운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아득히 멀리 보이는 산까지 품에 안은 호수 위로 잔물결이 일렁인가. 이 곳 저곳으로 흐르는 물길은 북유럽의 쓸쓸함과 적막감을 보여준다. 그리고 화면 깊이 담긴 고요함이 아름다우면서도 슬픈 감정을 자아낸다.
파리에서 미술공부를 하고 활동을 한 칼레라는 새로운 영감을 찾아온 가족과 함께 아프리카의 나이로비로 떠난다. 하지만 자신에게 영감을 주는 곳은 자신이 태어난 곳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1911년 핀란드로 돌아온다. 당시 핀란드는 러시아의 지배를 받는 있었으며 칼렐라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싸웠다.
다음 작품은 그녀가 조국의 독립과 핀란드인의 정체성을 노래한 <삼포의 방어>라는 작품이다.
작품에서 칼을 휘두르는 영웅 배이네뫼이넨이 새의 모습을 하고 있는 사악한 마녀 로우히에게서 마법의 유물 삼포를 훔치고 있다. 이 작품은 핀란드 민족의 대 서사시의 <칼레발라>의 43번째 노래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 작품에 등장하는 삼포는 핀란드 신화에 나오는 정체불명의 물건으로 소유자에게 복을 가져다준다고 한다.
또한 주인공인 배이네뫼이넨은 우주 창조 과정에서 나온 최초의 반신반인의 영웅으로 항상 지혜로운 노인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그를 하얀 머리카락과 수염을 날리며 마녀와 대적하는 근육질의 몸매를 지닌 영웅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 작품은 칼렐라의 대표작품으로 핀란드의 영혼을 지키기 위한 투쟁으로 핀란드 사람들에게 인식된다.
다음으로 아테네움 미술관에서 가장 유명한 휴고 짐 베르크의 작품을 감상하자.
핀란드에서는 <아마란스> 꽃에 관련한 다음과 같은 전설이 내려온다.
눈에 상처를 입고 날개가 꺾인 천사가 마을 근처 시냇가에 쓰러져 있었다. 물가에서 놀던 두 아이가 천사를 발견하고 치료하려고 들것에 태워 마을로 데려온다.
하지만 마을 어른들은 천사는 부상을 입을 수 없다며 아이들이 데려온 천사는 변장한 마녀라고 주장하며 불태워 죽이려고 한다.
그때 천사는 슬퍼하며 하늘로 올라간다. 당시 천사의 눈에서 흘러 떨어진 피는 영원히 시들지 않는 꽃인 아마란스가 되었다.
이 작품은 19세기 핀란드 상징주의 화가인 휴고 짐 베르크의 <부상당한 천사>이다.
작품에서 두 소년이 부상당한 천사를 들 것에 실어 옮기고 있다. 천사의 두 눈엔 붕대가 감겨 있고 날개에선 피가 흐르고 있다. 또한 천사는 아픈 와중에도 하얀 꽃 뭉치를 손에 움켜쥐고 있다. 들 것을 들고 있는 두 소년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두 검은색이다. 그러나 앞의 소년은 무엇인가 말을 못 하지만 불만에 찬 표정이고 뒤의 소년은 심각한 표정으로 화면 밖의 관객을 응시하고 있다.
도대체 천사는 왜 다쳤고 아이들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이 작품의 화가인 후고 짐베르크는 이 작품에 대해 어떤 설명도 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물으면 각자의 방식대로 해석하라고 대답했다. 이후 많은 전문가들이 내놓은 해석은 다음과 같다.
<부상당한 천사>라는 제목으로 보아 천사는 부상을 입은 상태여서 혼자서는 움직일 수가 없다. 또한 고결한 천사는 더럽고 약한 인간에게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면 크게 자존심이 상할 수 있다. 그래서 눈을 가려 자신을 도운 자들이 누구인지 모르게 하였다.
하지만 자신들이 천사를 돕고 있는 아이들의 생각은 달랐다. 자신들이 천사를 돕고 있는 사실을 감추는 것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 그래서 심통 맞은 표정을 짓고 있다.
또 다른 해석은 화가 자신이 천사라는 이야기이다.
이 작품의 배경은 헬싱키의 동물원과 인근 강가로 동물원 안에는 양로원과 병원 그리고 시각장애 소녀들을 위한 학교와 기숙사 등 많은 자선기관이 있었다. 그렇다면 이들은 지금 천사의 치료를 위해 동물원에 있는 병원으로 향하는 길이다. 멀리 보이는 산에는 아직 눈이 녹지 않았고 휑한 들판에는 드문드문 봄 꽃이 피어나고 있다. 천사는 아픈 와중에도 희망의 상징인 하얀 꽃 뭉치를 손에 쥐고 있다.
이른 봄에 피는 이 작은 꽃은 치유와 부활 그리고 희망을 상징한다. 이 그림을 그리기 전 화가는 수막염으로 수개월간 병원에서 지냈다. 그래서 희망의 꽃을 쥔 천사는 병마와 싸웠던 화가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다.
다음은 휴고 짐베르크의 또 다른 작품인 <저녁으로>를 감상하자.
이 작품은 짐베르크가 인간을 주제로 10년 이상 그렸던 일련의 대형 그림 중 마지막 작품이다. 작품에서 화가 자신이 그의 어린 아들 톰과 함께 여름 별장이 있는 니에맨라우터의 강가를 산책하고 있다. 그런데 아버지와 어린 아들이 함께 산책을 하는 모습 치고는 너무 진지하다 못해 숙연해 보인다.
인생을 보여주려는 작가의 의도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작품에서 강물과 하늘이 노인의 지나간 세월을 상징하듯 한 몸처럼 물들어 가고 있고 막 한 걸음을 떼려는 어린아이와 손을 잡고 가는 노인 역시 한 몸처럼 연결되어 있다. 이는 자연과 인간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이 모두 하나로 연결되는 작가의 이상적인 세상을 표현하고 있다.
경건하면서 깊이 있는 이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작가는 자신이 직접 그림을 전시할 나무 프레임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 작품은 2015 년 아테네움에 인수한 것 중 가장 중요한 작품이 되었다.
다음은 핀란드를 대표하는 사실주의 화가인 에로 자르네펠트의 <장작 태우기>를 감상하자.
이 작품은 토양을 비옥하게 만들기 위해 화전을 일구는 농부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모든 농부들이 장작을 태우며 열심히 일하고 있는 가운데 유독 작품 중앙에 보이는 소녀가 일손을 멈추고 우리를 강렬하게 응시하고 있다.배고픔과 가난에 지쳐 세상을 원망하고 있는 소녀의 두 눈 위의 주변은 시커멓게 죽었으며 얼굴과 옷도 엉망이다.
당시 핀란드의 화가들은 서유럽의 사실주의 작품에 영향을 받아 이전의 이상을 보여주는 작품 대신 빈곤이나 인간의 고통을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묘사하였다. 이 그림이 전시되자 가난한 사람들의 인권에 대한 대대적인 논쟁을 불러일으켰으며 그들에 대한 인권을 보장하는 사회적 합의와 정책을 만들어냈다고 한다.
그 영향으로 이 작품은 자르네팰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이 되었으며 이후 핀란드 예술의 황금시대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다음은 페르디난드 폰 라이트의 작품인 <싸우는 새>를 감상하자.
작품을 살펴보면 원경은 흐릿하지만 근경은 생생한 자연 풍경을 배경으로 두 마리의 퍼칼리가 서로를 노려보는 대결 구도로 극도의 긴장감을 자아내고 있다. 그들이 서로 차지하려는 암컷은 구석진 나무 밑에서 평화롭게 기다리고 있다.
전형적이면서 살아 있는 자연의 모습과 세밀하면서 생생한 퍼칼리의 모습 그리고 긴장감을 자아내는 황금비율의 구도로 이 작품은 단박에 핀란드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 중 하나가 되었다.
또한 언제나 외세에 저항하며 전쟁을 해야 했던 핀란드 국민들에게 이 작품은 대 자연 속에서 전쟁과 평화라는 의미를 전달하며 많은 위로를 주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놀라운 인기를 얻으며 핀란드에서 가장 많이 복제된 작품으로 남아있다.
다음은 뭉크의 <수영하는 남자들>을 감상하자.
1890년 극심한 우울증과 폐렴으로 병원에 입원했던 뭉크는 건강을 회복한 이후 인간의 육체와 건강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이를 보여주는 이 작품은 수영과 누드 그리고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을 통해 생로병사의 굴레로부터 벗어난 인간의 자유를 묘사하고 있다.
작품의 전면에 나오는 두 명의 인물은 독일의 바렌문트 해변에서 일하고 있는 인명 구조원들이다. 체격이 크고 당당한 그들의 모습에서 활력이 넘친다. 작품 전체적으로 뭉크 특유의 자유로운 붓질과 선명하고 혼합하지 않는 색상의 사용으로 풍부하면서 생동감이 넘친다.
다음은 헬레나 세르프백의 작품인 <회복기>를 감상하자.
이 그림은 영국 콘월의 세인트 아이브스에서 그린 것으로 세르프백의 가장 유명한 작품이다.세르프백은 1880 년대 후반에 이 지역을 두 번 방문했다. 그림 속의 아이는 6 살 정도의 발랄한 소녀였는데 그녀가 수업 중 딴짓을 하도 많이 해 화가 난 가정교사는 자리를 비운 상태이다.
병이 완전히 낫지는 않았지만 장난기가 가득한 아이는 거대한 직조 의자에 놓인 흰색 시트의 가장자리에 앉아있다. 그리고 컵에 놓인 가시가 많은 꽃줄기 하나를 움켜 잡으며 손 장난을 치고 있다. 유난히 밝은 눈과 열로 인하여 붉게 물든 빰 그리고 유쾌하게 튀어나온 머리카락이 아이의 천진난만한 성격을 보여준다. 또한 아이가 잡고 있는 꽃은 회복을 상징한다.
세르프백이 활동할 당시에는 아픈 아이가 미술의 대중적인 주제였다. 당시 뭉크는 아픈 아이를 통해 인간의 실존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녀는 인상주의를 연상시키는 활기찬 붓놀림과 빛의 처리로 병든 아이의 회복과 활력을 밝게 그려내고 있다.
작품이 파리에서 처음 선보였을 때에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찬사를 받았으나 고국에서는 아픈 아이의 모습 치고는 지나치게 밝고 현실적이다라는 이유로 비판받았다. 그러나 핀란드 미술 학회는 이 작품을 구입하기로 결정했으며 그 이후로 지금까지 아테네움에 전시되고 있다.
이 작품의 작가인 세르프백은 11세에 미술 공부를 시작했으며 83세에 사망할 때까지 수천 장이 넘는 그림을 그렸다. 그녀의 작품 세계는 1870년대의 역사 그림에서부터 1940년대의 모더니즘 작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여 오늘날 핀란드에서 가장 중요한 화가 중 한 명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아테네움이 보유하고 있는 고흐의 작품인 <오베르의 풍경>을 감상하자.
반 고흐는 테오에게 쓴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오베르는 매우 아름다운 마을이다.
전형적이고 그림과 같은 시골의 풍경이
사방에 펼쳐져있다.
오베르는 이미 당시 화가들에게는 널리 알려진 곳이었다. 반 고흐가 그곳에 머무르기 전에 카미유 피사로와 코로 그리고 폴 세잔 등이 오베르에서 머물며 아름다운 풍경들을 화폭에 담았다. 반 고흐 역시 마을의 풍경을 구린 이 작품을 비롯해서 많은 작품을 남겼다. 오베르에 머물던 시절 고흐는 그의 여동생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이곳 집들의 짚을 얹은 지붕은 매우 멋지다. 나는 분명히 이것들을 가지고 무언가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이 작품은 반 고흐가 여동생에게 보낸 글과 같은 모티프에서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고흐는 눈 앞에 보이는 풍경을 그대로 재현하지 않고 대담한 붓질과 구불구불한 선들로 대상에 자신의 감정을 담아 그렸다. 실제로 그의 여동생에게 쓴 다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였다.
사진과 유사하게 표현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내가 느낀 인상들을 그려내고 싶다.
반 고흐가 그려낸 인상은 모네나 르누아르와 같은 초기 인상주의자들이 그린 빛의 변화에 따른 인상과는 달랐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대상에 담아 표현하였다. 이후 그의 작품은 마티스를 대표로 하는 야수파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