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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봉기 Sep 23. 2020

헬싱키 여행

심플 라이프

사치에는 서점에 들렀다가 미도리를 발견하고는 그녀가 부르는 노래 가사를 물어보면서 친해진다. 사치에가 미도리에게 핀란드로 온 이유를 묻자 그녀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어디든 떠나고 싶었어요. 세계지도를 펼친 다음 눈을 감고 아무 데나 찍은 곳이 바로 핀란드였어요.


해마다 여름이 되면 산소 탱크같이 시원한 북유럽의 헬싱키를 떠올린다. 그곳에는 자동차가 많이 다니는 도심 한 복판이라도 북유럽 특유의 싱싱한 공기로 항상 상쾌하다. 헬싱키 여행의 시작은 초록이 가득한 시벨리우스 공원부터이다. 시벨리우스 공원은 핀란드 민족주의 음악가인 장 시벨리우스를 기념하는 곳으로 1945년, 그의 탄생 80주년에 조성되었다.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바닷가 옆에 만들어진 시벨리우스 공원은 언제나 한적하고 여유롭다. 공원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강철을 쏟아부어 만든 시벨리우스 두상과 파이프 오르간 모양의 기념물이다.



독특한 시벨리우스의 초상과 파이프 오르간을 만드는데 강철이 24톤이나 들어갔다고 한다.


얀 시벨리우스는 19세기와 20세기를 살다 간 핀란드의 민족주의 음악가로 핀란드에서 가장 위대한 음악가로 칭송받는 사람이다. 그는 핀란드가 러시아에서 독립하려던 시기 <핀란디아> 등의 음악을 통해 민족적 정체성과 자긍심을 높이는데 기여하였다.



시벨리우스 기념물을 뒤로하고 바닷가 옆에 조성된 공원을 산책하면 이국적인 북유럽 특유의 햇살과 여유를 만끽할 수 있다.



그리고 공원의 끝자락에서 탁 트인 바다를 마주하는 오두막을 발견한다. 헬싱키에서 가장 오래된 명물 카페 레가타이다.



이곳에 앉아서 한적한 바다와 하늘을 보며 여유롭게 커피 한잔과 시나몬 롤을 먹는 행복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카페 레가타에서 해안선을 따라 산책을 하며 30분 정도 걸으면 헬싱키의 대표적인 관광명소인 템펠리아우키오 교회가 나온다.



거대한 바위 언덕을 파내고 자연 그대로의 바위를 벽으로 사용하는 교회는 밖에서 보면 평범한 바위 언덕 같다. 입구 옆에 철제로 만든 작은 십자가를 보지 못한다면 누구도 교회라고 생각하지 못한다. 1969년 교회 건축 양식의 형태를 완전히 깬 독특한 디자인으로 바위를 파고 들어가 만든 성당의 실내는 로마 판테온 신전을 연상케 한다.



내부 장식은 울퉁불퉁 하지만 단단한 돌벽으로 꾸며져 있고 지붕은 유리와 구리로 장식되어 있다. 유리 돔을 지탱하고 있는 기둥들 사이로 햇빛이 쏟아지면  성당 안 전체로 빛이 가득하고 이는 다시 바닥에 반사되어 교회 전체가 따뜻하면서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자연스러우면서도 경건하고 경건하면서도 아름다운 교회는 아무것도 과장하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받아들이고 있다.


감동은 디테일에도 있다. 교회 입구에 위치한 성수를 담는 그릇은 교회와 같이 울퉁불퉁한 돌로 만들어져 있으며 바위벽 한편에는 간결하고 기능적인 철제 옷걸이가 자연스럽게 놓여 있다. 또한 설교단도 나무색과 녹색으로 전체적인 조화를 유지하고 있다.


교회의 진정한 매력은 예배를 진행하면서 나타난다. 예배를 시작하자 아무것도 없는 바위벽에 하얀 숫자가 보이기 시작한다. 무슨 암호인가 싶어 유심히 살피니 예배 중에 읽는 성경 구절과 찬송가의 페이지를 표시하고 있다. 내용이다. 예배 중 오르간이 연주되면 교회는 세상에서 가장 성스러운 장소로 변한다. 자연의 음향 효과를 고려해서 만들어진 바위 교회는 넘쳐나는 빛 속으로 아름다운 소리들이 돌아다니며 빛과 소리의 향연을 보여준다.


종종 음악회장으로도 이용되는 교회는 누구나 간섭받지 않고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으며 모든 행동도 자유롭다. 이곳에서 매일 음악회가 열린다니 현지 사람들조차 여기가 교회인지 문화공간인지 구별이 안 된다고 한다.


템플리 아우키오 교회에서 15분 정도 걸어가면 캄피 교회가 나온다.



컵이나 욕조 모양을 닮은 캄피 예배당은 2012년 2월에 지어졌다. 캄파 교회의 독특한 외관과 분위기로 인해 잠시 고요한 시간을 가지고 싶어 하는 헬싱키 사람들에게 좋은 휴식처로 사용된다.



나무로 쌓은 성당 안으로 들어가면 실내는 오직 예배당만 있다. 이곳은 평일에는 명상과 기도의 공간으로 사용하지만 주말에는 결혼식 장소로 사용된다고 한다.


헬싱키 여행에서 빼놓을 없는 것이 디자인이다. 헬싱키를 여행하는 여행자라면 세계적인 건축가인 알바 알토의 흔적을 따라가는 여행을 하기도 하고 대표적인 북유럽 디자인을 보여주는 이탈라와 마리메꼬 그리고 핀레이슨 매장을 방문한다.



알바 알토는 핀란드 지폐에 얼굴이 새겨질 정도로 핀란드에서 사랑받는 국민 건축가이다. 그는 건축뿐 아니라 유리공예와 가구 그리고 조명 등의 디자인으로도 적지 않은 업적을 남겼는데 그중에서도 합판을 활용한 가구 디자인이 유명하다.


그의 가구 디자인은 나무를 주재료로 하였으며 형태는 직선이 거의 없는 자유로운 곡선을 사용했다. 그래서 그의 디자인들은 언제나 자연을 연상케 한다. 스페인의 유명한 건축가인 가우다는 곡선은 자연의 것이며 직선은 인간의 것이라고 이야기하였다.


1937년  그는 역시 디자이너이자 아내인 아이노 마르시오와 함께 자작나무 판을 풀로 붙인 후 증기로 휘는 기술을 이용하여 만든 알토 부부의 의자를 선보였다.




강철만큼 견고하면서 단순하고 따뜻하면서 자유로운 알토 부부의 휘어진 의자는 세계적인 찬사를 받으며, 알토 부부를 핀란드를 넘어 세계적으로 디자이너로 만들었다. 이후 알토 부부는 아르텍 Artek이라는 가구 회사를 설립하고 자신들이 디자인한 제품을 판매하고 있는데 지금도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핀란드를 대표적인 디자인 제품을 보고 싶다면 시내 중앙에 있는 에스플라나디 공원으로 가면 된다. 공원 주변에 오묘한 색의 이딸라와 깜찍한 패턴의 마리메꼬 그리고 핀란드 패브릭의 대표주자 핀레이슨의 가게들이 있다. 근처에는 일본 영화 <카모메 식당>에도 등장한 아카데미아 서점도 있다.



헬싱키를 대표하는 영화는 <카모메 식당>이다. 헬싱키의 길모퉁이에 새로 생긴 카모메 식당은 야무진 일본인 여성 사치에가 운영하는 조그만 일본 식당이다.


일본 사람과 핀란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연어를 좋아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식당을 차림 사치에는 오니기리 주먹밥을 대표 메뉴로 내놓고 손님을 기다리지만 한 달째 손님이 없다. 그런 식당에 이방인들이 한 사람씩 몰려들기 시작한다.


눈을 감고 세계지도를 손가락으로 찍은 곳이 핀란드여서 여행을 왔다는 미도리와 일본 만화 마니아인 핀란드 사람 토미 그리고 공항에서 짐을 잃은 후 우연히 들르게 된 마사코가 그들이다.그들은 식당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며 그들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를 하나씩 꺼내놓기 시작한다.


병든 부모님을 모시다가 두 분이 돌아가시고 자유로워졌지만 삶의 방향을 잃은 마사코는 하기 싫은 일은 안 할 뿐이라고 이야기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모르지만 지금처럼 살아서는 안된다고 미도리는 이야기한다.


영화 중반, 식당에서 술 취한 핀란드 사람을 데려다준 후 이들은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눈다.


조용하지만 친절하고 언제나 여유로운 사람들. 핀란드 사람들은 다 그런 줄 알았어요. 근데 그게 아니네요.
어디에 가든 외로운 사람이 있으며 누구에게나 남모를 슬픔이 있는 법이지요.



이렇게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이들을 따스하게 어루만지는 카모메 식당의 주인 사치에는 그들에게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당신은 누구냐고 물어보지 않는다. 그저 따뜻한 음식을 대접할 뿐이다.



영화가 끝날 무렵 갑자기 늘어난 손님들을 위해 사치에는 연어를 굽고 식재료를 다듬는다. 군더더기 없으면서 깔끔한 이 장면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삶의 기쁨과 즐거움이 무엇인지 알게 한다.  


헬싱키에 있는 <카모메 식당>은 영화 속 실재 무대가 되었던 곳으로 일본 여행객과 식사를 하러 온 현지 사람들이 어울려 항상 붐빈다. 영화를 본 여행자들은 이곳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사치에를 떠 올리기도 하고 모든 것을 이유 없이 받아주는 따뜻한 쉼터를 갈망하기도 한다.


또한 내가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행복을 찾을 수 없다면 낯선 타지에서도 역시 행복을 찾을 수 없다는 메시지를 담은 영화 속 대사를 떠올리기도 한다.


만약 내일 세상의 종말이 온다면
오늘 소중한 사람들과
가장 맛있는 요리를 해 먹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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