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위로하는 거룩한 성화
베니스에 올 때마다 늘 생각을 했지만 여러 가지 사항으로 번번이 실패하고 20년이 넘어서야 산 로코 성당과 회관을 방문했다.
16세기 무렵 유럽 인구의 절반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페스트를 치료하는 회관으로 시작해 근세까지 가난한 서민들을 위한 병원으로 사용해 왔던 산로코 회관의 운영자들은 회관을 장식할 화가를 공모하였다.
틴토레토는 사전에 자신의 작품을 회관에 전시하며 자신의 능력과 작품을 기부하겠다고 선언하며 산로코 회관의 장식화가로 선정되었다.
산로코 회관으로 입장하여 2층으로 오르자 예수님의 탄생과 세례 등 신약성서의 내용을 보여주는 성화가 양벽으로 펼쳐지고 천장에는 아담과 이브부터 수태고지와 이집트의 탈출 등 구약성서의 내용이 압도적인 스케일로 펼쳐진다.
틴토레토가 24년 동안 그려낸 54점의 성화를 한발 한발 걸으며 감상하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어릴 적 보았던 <프란다스의 개>의 마지막 장면에서 네로가 추위와 배고픔으로 죽으면서 평생소원이었던 루벤스의 작품을 보면서 울먹거리는 심정이 여행자에게 그대로 다가왔다.
틴토레토의 빠르면서도 느슨해 보이는 붓놀림과 빛과 어둠의 강한 대비 그리고 역동적인 구도는 당시 전통적 스타일을 정면으로 도전하는 혁신적인 기법이었다.
틴토레토는 새로운 기법으로 아름다움보다는 경건함을 화폭에 담아내며 당시 병원을 찾는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 뿐만 아니라 오늘날 영혼이 아픈 사림들에게까지 하나님의 위로와 구원을 선물하고 있다.
바티칸에서 보았던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천장화가 살아서 꿈틀 되는 아름다운 명화이지만 화려한 기술로 완성된 인간의 작품이라면 틴토레토의 천장화는 인간의 기술을 뛰어넘어 영적인 힘이 보이는 거룩한 성화가 어떤 것인지 보여주는 걸작이었다.
화가들로부터 화가의 화가라고 불렸던 틴토레토는 죽을 때까지 그림을 그렸으며 그림을 그리지 않을 때조차 작업실에 머물렀다.
마지막으로 틴토레토의 작품 아래로 알레고리 조각작품들이 신의 구원을 필요로 하는 인간의 아픔과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호두나무로 조각한 피안타의 조각품들은 인간이 가지는 우울한 감정과 무지와 탐욕 그리고 분노와 호기심을 보여주며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고 위로를 주는 시간을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