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근히

조용한 온기가 필요한 날들

by 기억정원

시간은 가끔 끓는 물보다 ‘뭉근한 불’에 더 가까운 것 같다. 눈에 보일 만큼 급박하게 달아오르지도 않고, 그렇다고 완전히 식지도 않는, 어딘가 애매한 온도. 그 온도 속에서 마음도 천천히, 아주 서서히 익어간다.

삶은 늘 빠르게만 움직이길 원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들은 대부분 뭉근히 다가온다. 사랑도, 상처도, 회복도. 급히 끓인 감정은 금방 넘치고 식지만, 오래도록 곁을 지키는 감정은 천천히 온기를 머금는다. 그렇게 마음 안쪽에서부터 스며든다.

나를 울린 말도, 나를 살린 말도 처음엔 그다지 특별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고, 문득 돌아봤을 때야 알게 되었다. 그 말이 내 안에 얼마나 오래도록 머물러 있었는지를. 기억도 그렇다. 선명한 순간보다, 뭉근하게 남아 흐릿하게 그려지는 장면이 더 오래 마음을 붙든다.

세상은 즉각적인 것을 요구하지만, 인간의 마음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지친다. 그러나 괜찮다. 모든 것이 급할 필요는 없다. 느리게 익어가는 삶에도 깊은 맛이 있으니까.

불이 너무 세면 음식이 타듯, 삶도 때로는 태워버린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뭉근한 온도를 찾아야 한다. 삶을 서두르지 않고, 감정을 억누르지 않으며, 조용히 자신을 끓이는 일. 그것이 어쩌면 가장 단단하고 오래가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월, 수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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