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아기와 나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활발한골방지기 Dec 18. 2023

호기심의 나비효과






딸을 가진 아버지라면 본인의 딸이 연애를 하거나 결혼을 하는 상상만으로도 분노가 치민다는 것을 익히 들어 알고 있다. 

어린 자녀들은 이성 부모와 결혼할 거라는 터무니없는 소리를 내놓기도 하지만 어린 자녀에게 부모란 세상의 전부이기에 충분히 가능한 말이기도 하다.

또한, 작은 내 아이의 세상이 나라는 것에 위안을 받을 수 있어, 부모는 살면서 한 번쯤은 자녀에게 묻기도 한다.

헌데 우리 아이들은 단 한 번도 '결혼'이라는 단어를 꺼낸 적이 없어서 이젠 내가 슬슬 궁금해졌다.

정말로 이성 부모와 결혼한다고 할까?


궁금증을 안고 신랑에게 물었다.


우리 애들은 아빠랑 결혼한다고 할까? 


신랑은 심드렁하게 글쎄?라고 했다.

하지만 한 시간 후에 신랑은 점점 궁금해하는 것 같았고 

어린 딸들에게 점심을 정성껏 차려주고는 물었다. 


나중에 결혼하면 누구랑 결혼할 거야~?


결혼 안 할 거야!


여기서 1차 충격. 하지만 당연히 대답이 '아빠'일 줄 알았지만 예상치 못한 답이 나와 당황한 신랑은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물었다.


자, 잠깐...? 결혼을... 안 해? 그래! 하지 마! 근데... 아빠랑은 안 해?


아빠는 엄마랑 결혼했는데 왜 나랑 해?


라며 큰 딸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신랑을 쳐다보았고 신랑은 2차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이어서 아무것도 모르겠고 밥은 맛있으니 실실 웃으며 먹는 데에 집중하고 있는 둘째에게 신랑이 물었다. 


아빠랑 결혼할 거야?


아니! 


단 1초의 고민도 없이 NO라는 답이 나와 신랑은 시무룩해졌고,

그런 나는 신랑을 다독이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첫째는 태어나 보니 대문자 T이고 

둘째는 그저 언니를 따라 한 것뿐이라고...





평화로운 주말 오후, 큰 딸이 갑자기 말했다.


난 ㅁㅁ이랑 결혼할 거야!


그럼~나는 ㅇㅇ이랑 결혼할래에~ 


한창 언니를 따라 하는 둘째가 고민하는 것 같더니 가장 먼저 떠오르는 남자친구 이름을 내뱉었다.


엥? 그럼 아빠가 슬퍼할 것 같아~


?


너희들이 말하는 '결혼'은 아빠한테 되게 슬픈 단어가 될 수 있거든.


그럼... 나는 아빠랑 결혼할래!


고마운 둘째.

하지만 첫째는 대쪽 같다.


...? 누구 아빠랑?



신랑은 그날 저녁 소주를 마셨다.


세상의 전부이길 바랐지만 그러기엔 요즘 애들은 너무 빨리 큰다.




신랑은 배신감이 들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극단의 설득에 나섰다.


너네 밥 안 줘!


아빠 너무해!


난 아빠랑 결혼한다고 했는뒈에에~? 





둘째의 우유부단함의 힘인지 천진 난만한 성격 덕인지 신랑은 조금 풀어졌지만 첫사랑인 큰 딸의 단호함에 상처 입은 건 어쩔 수 없는 듯 싶었다. 


타격을 입었지만 여전히 사이가 좋은 부녀사이.

앞으로도 사이좋게 지내고 우리 집에서 당분간은 '결혼'이란 단어는 금지 해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무엇으로부터 벗어나야 할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