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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활발한골방지기 Dec 30. 2023

국화빵과 수어



  목포로 놀러 간 적이 있었다. 즉흥적이었다. 그냥 맛있는 것만 먹고 오자는 목표로 무작정 내려갔다.

  호텔 직원에게 "여기 근처 맛집 추천 해 주실 수 있으세요?" 라며 눈을 반짝이며 묻자, 호텔 직원은 '여기 오는데 맛집 하나 안 찾아봤나?'라는 당황한 표정으로 더듬더듬 말해주었다. 스마트폰으로 찾지 않고 직접 물어보는 사람이 몇 없었나 보다. 끝내 알아낸 맛집으로 설렁설렁 걸어 근처에 관광지가 있는지도 표지판을 보며 다녔다. 

  식사를 한 후 산책 겸 호텔까지 걸어가는데, 길목에 국화빵을 파는 포장마차가 보였다. 신랑은 반가운 얼굴로 "어! 국화빵!"라며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우리 가족은 우르르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포장마차 안에는 할머니가 열심히 국화빵을 만들고 계셨다. 나는 할머니에게 자연스레 "국화빵 한 봉지 주세요."라고 했다. 할머니는 못 들었다는 듯이 뚫어지게 내 얼굴을 보고 있자, 나는 다시 "국, 화, 빵, 하, 나, 주세요!"라고 입을 크게 벌려 이야기하며 검지 손가락도 세워 보여드렸다. 할머니는 알았다는 표정으로 씩 웃고는 만드는데 열중하셨다.

  포장마차 밖에서 기다리는 우리에게 할머니는 직접 봉투를 들고 나오셨다. 나는 "헉. 부르시지! 감사합니다~"라고 봉투를 건네어받았다. 하지만 할머니는 대꾸 없이 나를 지나쳐 아이들을 보고는 씩 웃으시고는 자신의 볼에 검지손가락을 대고서는 사랑스럽다는 듯이 아이들을 쳐다보셨다. '예쁘다'는 수어였다. 순간 지나간 나의 행동이 머릿속을 스쳤고, 고맙다는 수어를 알고 있었지만 너무 오래전에 배웠던 터라 정확한지 몰라 냅다 허리를 숙이며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아이들은 처음 본 수어를 생소해했고, 그런 아이들에게 "할머니가 너희 예쁘대!"라고 했지만 언제 그런 말을 했냐는 듯한 표정으로 나와 할머니를 번갈아 보았다. 그래서 "감사합니다, 해야지."라고 인사를 시켰다. 

할머니는 인자한 웃음으로 잘 가라고 손인사를 하시고는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가셨다. 


  수어를 정식적으로 배운 적은 없지만 중학생 때 합창대회에서 <마법의 성>을 수어와 함께 노래한 적이 있었다. 그때 수어에 대해 살짝 알았고 지화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던 터였다. 

때문에 할머니의 '예쁘다'는 말에 수어로 답 할 수 있었지만 농인을 만난 적은 그때가 살면서 처음이었기에 버벅댔던 것이었다.



  그 후로 나는 지금까지 수어를 조금씩 배우고 있다. 재밌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다. 무엇보다 팔이 굉장히 아프다는 걸 알았다. 또, 하루라도 하지 않으면 잊는다는 것도...


소리를 내어하는 언어와 손과 표정으로 하는 언어는 그저 '소통'의 기술이다. 방식의 차이일 뿐인 것이다. 어느 것 하나 잘나거나 못나지 않은 그저 '언어'일뿐이고, 소통의 기술이 다른 이들끼리도 대화를 할 수 있다는 매력을 느껴 나는 앞으로도 계속 수어를 배울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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