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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빛 Jun 28. 2023

식탐대실


나는 캠핑을 좋아하는데, 얼마 전 어떤 베이커리에서 콜라보로 하는 워터저그를 갖고 싶었다. 필요한 물건이기도 했고 디자인이 너무 예뻤다. 게다가 나는 빵순이인지라 그걸 꼭 사야 했다. 그래서 워터저그와 빵을 교환할 수 있는 쿠폰을 구매했다. 빵은 22000원어치 고를 수 있었다.

날짜가 되어 빵을 교환하러 갔는데 22000원이나 하는 쿠폰인데도 생각보다 빵을 많이 고를 수가 없었다. 일단 남편과 아이가 원하던 빵을 고르고 나니, 2만 원이 훌쩍 넘었다. 나는 크루아상 류의 빵을 좋아하는데 그렇다고 금액을 오버해서 사기가 왠지 아까웠다. 또 가족들이 원한 빵을 좋아하기도 하고. 그냥 같이 먹어야지 싶었다. 그래서 남편과 아이의 빵만 사서 돌아왔다. 22000원에 빵이 네 개인가 다섯 개인가를 샀다는 것에 현타가 왔다.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우리나라는 빵이 너무 비싸다.)


우리 집은 아침에 밥을 먹지 않는다. 남편과 아이가 부담스럽다고 싫어한다. 아침에는 거의 빵과 과일, 커피랑 우유를 먹는다. 나는 아침에 전날 산 빵들을 꺼내 남편과 아이에게 주었다. 그리고 주방에서 과일을 깎았다.

식탁으로 과일을 가져가니 세상에, 그 많은(?) 빵을 그 새 둘이 다 먹어치운 게 아닌가. 그것도 내 건 하나도 남기지 않고 말이다.


나는 표정이 싸늘해졌다.

굉장히 화가 났다.

무엇이든 음식은 나눠먹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걸 다 먹었다는 것은, 같이 먹을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을 전혀 배려하지 않은 행동이기 때문에.


“내 건?”


그제야 남편과 아이가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 오빠. 이건 좀 아닌 것 같지 않아? 뭐든 나눠먹어야지. 나한테 먹을 거냐고 묻지도 않았잖아. 왜 별거 아닌 걸로 사람을 쪼잔하게 만들어? 음식 앞에서 자기 입으로만 들어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오빠도 그런 것 같다.

이상한 식탐이 있네 진짜. 이게 식탐이야!

내가 이런 말 까진 안 하려고 했는데, 어제 너네 둘이 부탁한 빵들 사니까 내가 고를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었어. 그건 알아? 진짜 너무들 하네.

그리고 너도, 음식을 나눠먹어야 한다는 건 유치원에서도 배우지 않아? 엄마가 맛있는 음식을 너도 안 주고 나 혼자 다 먹음 너는 안 서운할까? “


그제야 둘은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둘이 떠난 식탁을 치우는데 빵 부스러기들을 보고 있자니 부아가 치밀었다. 어제 그냥 크루아상을 사 올걸. 나도 내가 챙길걸. 그냥 그들에게 묻지 않고 내가 원하는 것들로만 잔뜩 살 걸.

단순히 빵을 다 먹어 버렸다고 화가 나는 게 아니었다. 내가 배려한 만큼 그들은 나를 배려하지 않았다는 것이 화가 났다. 빵 하나로 촉발된 이 분노는 나는 이 집에서 뭔가 하는 서글퍼지는 감정으로 번졌고, 나는 종일 우울했다.


늘 깨닫는 거지만 결국 나를 챙길 사람은 나 자신뿐이다. 그게 가족일지라도, 다 내 맘 같을 수는 없었다. 예전에 마트에서 가족들이 먹고 싶은 장을 잔뜩 보고도 정작 내가 먹고 싶던 그 만두를 살까 말까 고민했었던 것처럼, 사지 않고 집에 와서 만두를 살걸 하고 후회했던 것처럼. 가족만 생각할 게 아니라 작은 거라도 나도 나를 챙겨야 하는 거라는 걸, 또 한 번 깨달았다.





갖고 싶었지만 비싸서 눈도장만 찍어 놓은 원피스 한 벌과 티셔츠 세 벌을 시원하게 샀다. 총 17만 원이었다. 긁었다. 일부러 남편 카드로.

비싸다고 가보고 싶다고 생각만 했던 브런치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샐러드, 오믈렛을 골랐다. 2만 5천 원이 넘는 세트였지만 고민 없이 먹었다. 물론 남편 카드로.


세상에, 너무 맛있다. 이래서 드라마에서 우아한 아줌마들이 아침에 예쁘게 차려입고 브런치 카페에서 만나는구나! 사실 브런치 카페를 처음 가본 나는 감탄하며 맛있는 브런치와 분위기를 즐겼다. 이것을 시발비용이라고 하던데.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면 쓰지 않았을 돈을 요즘엔 그렇게 부른단다. 비속어다. 뭐 어떤가. 틀린 말도 아니다.


남편은 아침에 퍼부어서(?) 그런지 내가 카드를 그렇게 긁어대도 연락이 없다. 아마 연달아 오는 결제 문자들을 보며 식탐대실을 느끼고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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