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첫째와 한 판 전쟁을 치렀다. 일곱 살 첫째는 벌써 사춘기라도 온 건지 도통 그 속을 헤아리기 힘든 감정을 휘감고 잔뜩 뾰족해질 때가 많다. 오늘 사건의 발단은 이러했다. 저녁을 먹고 동생이 아빠랑 목욕할 때는 더 놀고 싶어서 씻기를 미룬 첫째가 잠들기 전까지 버티다 이제는 씻어야 하니 이번엔 별안간 엄마랑 씻으면 너무 오래 걸린다며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이미 한 차례, 하원 후 첫째의 긴긴 짜증에 여러 번 참을 인을 새기며 저녁시간을 보낸 나는 화장실 문 앞에서 잔뜩 골이 나서 나를 노려보며 짜증 내는 첫째를 보고는 결국 폭발해버렸다. 아이들이 다 그렇지, 아이니까 그렇지 하면서도 아이의 앞뒤 없는 짜증이 내 앞에 쏟아질 때면 시커먼 먹구름 한가운데 갑자기 벼락이
내리치듯 번쩍, 꼬깃꼬깃 겨우 틀어쥐고 있던 인내심이 순식간에 끊어진다.
엄마의 마음으로 아이를 바라보고 이해하려는 다정함이 사라진 자리엔 도무지 몇 번을 생각해도 이해되지 않는 아이의 말과 행동에 분노한 어른의 이성만 남는다. 그렇게 한동안 아이의 잘못을 신랄하게 꾸짖다 보면 분명 방금 전 벼락 맞고 박살 났던 엄마의 마음이 어느 순간 다시 살아나 내 앞에 서 있는 아이의 작은 어깨나 울멍울멍 붉어진 눈망울 같은 것들을 보게 한다. 아이의 작은 어깨와 쳐져 있는 눈가를 알아보고 나면 진하고 씁쓸한 괴로움이 서서히 마음에 번진다. 분노에 불타는 마음보다 괴로움에 젖은 마음이 더 강력하다는 걸 알게 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사실은. 아이의 고집과 예민함에 화가 나는 게 아니라 그런 아이를 끝까지 다정하게 담아주지 못하는 내 부족함이 괴로운 거였다. 괴로움에 젖어 물에 빠진 청바지 같은 무게를 느끼며 널브러져 글을 쓴다. 오늘 밤 나는 몇 번이나 잠든 아이를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리려나. ‘**야,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앞으로 나는 얼마나 더 분노하다 아이의 작은 어깨를 깨닫고 괴로워하려나. 내 짤막한 인내심과 부족한 사랑이 못나게 버거운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