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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소 Jun 21. 2022

아이를 혼내고 알게 되는 것

오늘도 첫째와 한 판 전쟁을 치렀다. 일곱 살 첫째는 벌써 사춘기라도 온 건지 도통 그 속을 헤아리기 힘든 감정을 휘감고 잔뜩 뾰족해질 때가 많다. 오늘 사건의 발단은 이러했다. 저녁을 먹고 동생이 아빠랑 목욕할 때는 더 놀고 싶어서 씻기를 미룬 첫째가 잠들기 전까지 버티다 이제는 씻어야 하니 이번엔 별안간 엄마랑 씻으면 너무 오래 걸린다며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이미 한 차례, 하원 후 첫째의 긴긴 짜증에 여러 번 참을 인을 새기며 저녁시간을 보낸 나는 화장실 문 앞에서 잔뜩 골이 나서 나를 노려보며 짜증 내는 첫째를 보고는 결국 폭발해버렸다. 아이들이 다 그렇지, 아이니까 그렇지 하면서도 아이의 앞뒤 없는 짜증이 내 앞에 쏟아질 때면 시커먼 먹구름 한가운데 갑자기 벼락이

내리치듯 번쩍, 꼬깃꼬깃 겨우 틀어쥐고 있던 인내심이 순식간에 끊어진다.


엄마의 마음으로 아이를 바라보고 이해하려는 다정함이 사라진 자리엔 도무지 몇 번을 생각해도 이해되지 않는 아이의 말과 행동에 분노한 어른의 이성만 남는다. 그렇게 한동안 아이의 잘못을 신랄하게 꾸짖다 보면 분명 방금 전 벼락 맞고 박살 났던 엄마의 마음이 어느 순간 다시 살아나 내 앞에 서 있는 아이의 작은 어깨나 울멍울멍 붉어진 눈망울 같은 것들을 보게 한다. 아이의 작은 어깨와 쳐져 있는 눈가를 알아보고 나면 진하고 씁쓸한 괴로움이 서서히 마음에 번진다. 분노에 불타는 마음보다 괴로움에 젖은 마음이 더 강력하다는 걸 알게 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사실은. 아이의 고집과 예민함에 화가 나는  아니라 그런 아이를 끝까지 다정하게 담아주지 못하는  부족함이 괴로운 거였다. 괴로움에 젖어 물에 빠진 청바지 같은 무게를 느끼며 널브러져 글을 쓴다. 오늘  나는  번이나 잠든 아이를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리려나. ‘**,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앞으로 나는 얼마나  분노하다 아이의 작은 어깨를 깨닫고 괴로워하려나.  짤막한 인내심과 부족한 사랑이 못나게 버거운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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