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에서 낚시글의
냄새가 솔솔 나지요?
저는 정치에 별 관심이 없지만,
전씨는 제가 이 에피소드를
떠올릴 때면
항상 소환되는 사람입니다.
때는 서울에서 아시안게임이
열렸던 1986년,
제가 대학교 새내기였을 때입니다.
그 당시에 아시안게임 즈음해서
이런저런 문화행사가 많았는데요,
영국 로열 오페라단의 내한소식이
제 맘을 설레게 했습니다.
그것도 제가 가장 좋아하는
오페라 ‘카르멘’
메조소프라노
아그네스 발차(Agnes Baltsa)가
타이틀롤을 맡았다고 해서
더욱 기대가 됐었죠.
호세 카레라스(Jose Carreras)도
출연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저는 아그네스 발차의 내한소식이
훨씬 더 기뻤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성악가인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는
1977년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제가 실연을 보는 것이
불가능했지만,
칼라스와 비슷한 음색을 가진
아그네스 발차의 공연을
생눈으로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던 것입니다.
요즘에야 세계적인 음악가들의
내한공연이
너무 흔한 시대가 되었지만,
1986년이라면 해외여행도
자유롭게 하지 못하던 때였으니
이런 공연을
서울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흥분할 일이었죠.
문제는 돈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 오페라 표는
평범한 대학생이
선뜻 살 수 있을 정도의
금액이 아니었습니다.
대학생 과외도 금지된 시절이라
아르바이트도 어려웠던 그때,
저는 여름방학을 이용해
햄버거집 알바를 했습니다.
최저임금이 언제부터
고시되기 시작한 지는 몰라도
아무튼 그때 제 시급은 500원,
하루에 4시간 일을 하면
2천원을 손에 쥘 수 있었습니다.
그 해 여름방학 두 달동안
햄버거집에서 버거를 만들고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해서
번 돈으로 9월에 있을
오페라표를 사니 알바비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드디어 공연 날!
그날따라 강의도 늦게 끝났고,
데모 때문에 시내에 차가 막혀
공연에 늦을까 봐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시간에 딱 맞춰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
도착할 수 있었는데...
그런데, 생각지도 않은 복병이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전두환 대통령 내외가
오페라 관람을 하러
온 것입니다.
그것이 저와 무슨 상관일까요?
대통령 내외의 안전을 위해
모든 관객은 공연장 정문에서
한사람씩 검문을 하고
들어가야 했습니다.
2천명 이상되는 관객이
검문을 하는데는 시간이
제법 걸려서
저처럼 시간에 맞춰
공연장에 도착한 사람은
오페라 첫 부분을
놓칠 수밖에 없었죠.
공연 10분당 제 하루 알바비가
들어간 셈이었는데,
누구 때문에 금쪽같은
20분이 날아갔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아쉬운 일이지만,
그래도 아그네스 발차의
하바네라와 세기디야,
집시의 노래를
온전히 들을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었습니다.
그후에 수도 없이
많은 공연을 봤지만,
이 공연은 제가
베스트 오브 베스트로
꼽는 공연입니다.
아그네스 발차의 전성기 때
그녀의 목소리를
생귀로 듣다니!
비록 전씨 때문에
놓친 20분, 아니
이틀치 알바 분량이 아깝지만,
공연의 감동이
지금까지 남아있으니
이제는 그를 용서하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