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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재 Jul 03. 2020

범인을 잡은 사람은 과거의 나였다.

형사님을 만나 다행입니다.

2017년 11월 4일 당시 나는 여성청소년수사팀에서 성폭력 사건 수사를 전담하고 있었다.

오늘 밤 조용히 지나가길 바라던 내 마음과 달리 무전기는 쉴 새 없이 울리기 시작했다.


3건의 사건 현장을 다녀오고 나니 어느새 새벽 1시가 넘었고 선배와 야식을 먹으려는데

무전기에서 우리를 다급하게 찾기 시작했다.


"여기 여청수사팀입니다."

"코드 제로! 주거침입 강간 사건 발생. 장소는 OOO. 바로 출동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올해 우리 관내에서 처음 발생한 주거침입 강간 사건이었다.


강력사건인 만큼 긴장을 놓지 않고 사건 현장으로 달려가 피해자를 만났다.

피해자는 사시나무 떨 듯이 온몸을 떨며 하염없이 울고만 있었다.


여경인 내가 먼저 피해자에게 다가가 단 둘이 방으로 들어갔다.


"제가 선생님 담당 형사입니다. 많이 힘드시면 의지할 수 있는 가족이나 친구분 불러드릴까요?"


피해자는 울면서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선생님 힘든 얘기인 것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께서 말씀해주셔야 제가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범인은 지금도 도망가고 있을 거예요. 선생님께서 힘들게 얘기해주시는 만큼 제가 꼭 잡아드리겠다고 약속할게요. 조금만 힘 내주실 수 있으세요?"


"형사님..... 제가 친구들이랑 술 먹고 집에 들어왔는데 갑자기 어떤 남자가 따라와서 현관문을 못 닫게 잡아 열고 저희 집에 무작정 따라 들어왔어요... 그리고 문을 잠그고 갑자기 저를 침대에 눕히더니 옷을 벗겼어요.. 제가 하지 말라고 울면서 매달렸는데도 저를..."


"범인은 아는 사람인가요? 범인에 대해 말해주세요."


"아니요. 전혀 모르는 사람이에요. 그리고 외국인이었어요... 꼭 잡아주세요. 형사님."


"알겠습니다. 범인 잡는 건 제가 할 테니 선생님은 일단 병원에 가셔서 치료를 받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모셔다 드릴게요. 혹시 오늘 선생님이랑 같이 있어줄 사람이나 머무를 곳이 있으신가요?"


"네... 친구한테 연락할게요. 꼭 잡아주세요."


그렇게 피해자를 병원에 데려다주고 나는 다시 현장으로 돌아와 CCTV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어두운 골목길을 비추고 있는 CCTV와 자동차 블랙박스를 모두 확인해서 범인의 인상착의를 특정하였다.


11월 초의 날씨였지만 새벽 날씨는 제법 추웠다.


어느새 새벽 3시가 되었다.

범인은 외국인이어서 수사에 더욱 난항을 겪고 있었지만

범인이 피해자의 집을 알고 있는 만큼 검거가 늦어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피곤한지도 몰랐다.


그때 내 머릿속을 스친 한 가지 생각.

우리 지역에서 외국인이 일할 수 있는 곳은 공장 아니면 일용직 사무소가 아니겠는가.

일용직 사무소는 새벽 4시면 문을 여니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희망이 생기기 시작했다.

내가 수험생 때 일했던 일용직 사무소 사장님께 한 번 찾아가 보기로 한 것이다.

(일용직 사무소 이야기는 https://brunch.co.kr/@smy4339/1 을 참고해주세요.)


"사장님 안녕하세요! 저 기억하세요?"


"어이구 이게 누구야. 하나도 안 변했네. 잘 지내고 있어? 경찰시험 합격은 했고?"


"네. 사장님 덕분에 합격해서 지금도 근무 중입니다. 다른 게 아니라 사장님 도움이 좀 필요해서 찾아왔습니다."


"아이고야 진짜 축하한다. 소주 한잔 해야겠어. 그래 민재야 내가 뭘 도와주면 될까?

민재 부탁이면 당연히 들어줘야지."


"사장님 제가 추적하고 있는 사람인데 외국인이라서요. 혹시 사장님 사무소에서 일한 적 있는 사람인가요?"


"음... 우리 사무소에서 일한 친구는 아닌데..... 아. 저기 앞에 있는 OO인력사무소에서 일하는 친구 같아.

우리 사무소에 한 번 지원 왔던 그 친구 같은데... 가만있어보자. 맞네 맞아. 거기 가봐. 내가 전화해둘게."


"사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소주는 제가 살게요!"


희망을 가지고 사장님께서 알려주신 OO인력사무소를 찾아갔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사무소 사장님 통해서 온 민재 형사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OO를 찾으신다고 들었는데 맞나요?"


"제가 이름은 모르고 사진 보여드릴 테니 한 번 봐주시겠어요? 이 사람이 OO가 맞나요?"


"네. 맞아요! 이 친구 이력서예요. 전화번호랑 주소 다 있고

오늘도 5시에 일하러 나오기로 되어 있으니까 조금 기다려보세요."


그리고 나랑 선배는 범인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한 시간이 지나고 6시가 되어도 범인은 나타나지 않았고

인력사무소 사장님이 범인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전화기는 꺼져있었다.


하긴 내가 범인이어도 도망가지 일을 하러 오겠나

결국 허탕이었다.


하지만 실망하긴 이르다.


피의자를 특정했으니 이제 잡기만 하면 된다.


오늘도 사건 현장에서 아침을 맞이했다.

사무실로 돌아와 수사서류를 작성하고 피의자를 추적할 수 있는 수사를 진행했다.

어느새 퇴근시간 9시를 훌쩍 넘긴 10시였다.


"민재야 생일 축하해. 밤새 근무하느라 고생 많았어. 얼른 들어가 봐. 내일 하자." 

"팀장님 체포영장 검찰청에 접수시키고 퇴근해보겠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그렇다. 2017년 11월 5일은 나의 29번째 생일이었다.

마침 생일날 비번이어서 점심식사는 가족들과 함께

저녁식사는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퇴근 후 집에 도착해서 씻고 어머니가 끓여주신 미역국을 먹으려고 하는데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사무실 전화번호였다.


"O형사입니다."

"민재야 사건 터졌다. 얼른 다시 나와야겠어."

"네. 알겠습니다.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엄마 저 사건 터져서 다시 출근해야 돼요. 다녀올게요."


어제 야간근무 때 터진 사건으로 한숨도 자지 못했는데 또다시 출동이다.


"선배님 무슨 사건입니까?"

"민재야 요즘 왜 이러냐. 또 주거침입 강간이다. 창문을 깨고 들어갔다는데 얼른 현장 가보자."


나는 다시 장비를 챙겨 현장으로 달려갔다.


그래도 이번 사건은 오전 11시에 발생한 사건이어서 CCTV 추적하는데 좀 더 수월했다.

밤에는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지만 오전에는 선명하진 않아도 밤보다는 잘 보이는 편이기 때문이다.

계속 CCTV 추적을 하면서 범인을 쫓아갔다.


점심시간이 지나 오후 2시가 되었고 오늘도 선배와 나는 CCTV를 보면서 빵과 우유로 한 끼를 대충 때웠다.


"선배님 범인 이 아파트로 들어가는데요? 여기가 집인 것 같습니다."

"그래. 얼른 가보자."


선배와 나는 범인이 들어간 아파트로 가서 다시 CCTV를 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범인의 집을 특정했고 술에 취해 잠을 자고 있던 범인을 체포해 사무실에 도착했다.


피의자 조사를 하고 서류를 만들어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나니 저녁 8시였다.


그때 선배님들께서 케이크를 들고 오시더니 나의 생일을 축하해주었다.

선배님들은 비번인데도 퇴근하지 못하고 일하는 막내인 내가 안쓰러웠나 보다.


"민재야 생일인데 어제오늘 진짜 고생 많았다. 영장 선배가 접수시킬 테니까 얼른 들어가서 쉬어라."

"감사합니다. 선배님. 고생하셨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인사를 하고 사무실에서 나와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 나 이제 퇴근했어. 금방 갈게." 


그렇게 나는 연이은 사건에 쉬지 못해 피곤에 지친 상태였지만

범인을 잡아서인지 개운한 마음으로 친구들과의 생일파티를 즐기러 갔다.

친구들은 폭죽을 터뜨리며 나의 생일을 축하해주었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소주 한 잔 하려는 순간 다시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울리지 말아야 할 전화벨이 울리니 불안해서 술을 마시지 않고 전화를 받았다.


새벽에 방문했던 OO인력사무소 사장님이셨다.


"민재 형사님. OO 그 친구 지금 방 빼고 짐 챙기러 왔대요. 그리고 서울로 간다고 하네요. 얼른 가보세요."

"네. 알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얘들아 나 가봐야겠다. 미안해. 재밌게 놀다 가!"


그리고 곧장 검찰청으로 가서 아침에 접수한 체포영장을 찾았고 팀장님과 선배님들께 전화드렸다.


"팀장님 OO 지금 방 빼고 짐 챙기러 집에 왔답니다. 짐 챙겨서 바로 서울로 간대요.

제가 체포영장 찾아서 가겠습니다."

"그래. 알겠다. 사무실에서 보자."


그렇게 우리 팀은 퇴근한 지 한 시간도 되지 않아 다시 모였다.

다시 모인 우리는 누구 하나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고 애써 웃으며

"오늘 꼭 잡아보자."는 말로 서로를 격려했다.

우리 모두는 범인을 곧 잡을 수 있다는 생각에 힘든 줄도 모르고 일하고 있었다.


우리 팀은 범인 집 근처에 도착했고 정말 거짓말 안 하고 외국인 남성 20명 정도가 모여 있었다.

너무 많은 인원 앞에 긴장을 늦출 수 없었고 내 눈 앞에 범인이 보이는 그 순간

선배가 "제껴"라는 말과 함께 차 문을 열었다.


20명의 외국인 남성들이 모두 세 갈래 골목길을 흩어져 도망치기 시작했다.

나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고 무작정 범인을 쫓아 달려갈 수밖에 없었다.

정말 너무 힘들었다.

죽기 살기로 뛰어 도망가다가 담을 넘다가 넘어지기도 하면서 정말 야밤에 추격전이 시작된 것이다.


흩어진 외국인들 중에서도 동기와 내가 범인을 끝까지 쫓고 있었다.

너무 힘들어 토할 것 같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지금 놓치면 정말 다시는 못 잡을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하니 계속 달릴 수밖에 없었다.


한 20분을 그렇게 달린 것 같다.

그리고 터미널 앞에서 범인이 사라졌다.

터미널에 설치되어 있는 CCTV를 보기에는 그 순간 범인이 버스를 타고 가버릴 수 있어 위험부담이 컸다.


그때 OO인력사무소 사장님으로부터 OO가 서울로 간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 생각났다.

나와 동기는 버스회사 사무실에 들어가 경찰임을 밝히고 서울 가는 버스 차량에 탑승해 있다가

범인이 타면 검거하고 범인이 타지 않으면 내리겠다고 운행에 지장가지 않도록 하겠다며

협조를 구했고 기사님은 흔쾌히 허락을 하셨다.


그리고 동기와 나는 버스에 올라타 기사님 바로 뒤에 앉아 있었다.

버스 출발 시간 3분 전이 되었는데도 범인은 나타나지 않는다.

이번에도 허탕인가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버스 출발 시간 1분 전...

빨간 조끼를 입은 범인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나타났다.


범인이 분명했다.

제발 버스에 올라타라. 제 발로 호랑이굴에 들어와라. 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그리고 범인이 버스에 올라타 중간쯤 자리에 앉아 눈을 감았다.


그때 내가 느낀 희열은 정말이지 뭐라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이다.


나는 기사님께 버스 문을 닫아 달라고 요청했다.

다행히 범인 옆 자리에는 아무도 없어 위험요소 또한 없어 보였다.


그리고 나와 동기는 범인에게 다가가 체포영장을 제시하고 두 손에 수갑을 채워 체포했다.


"팀장님 잡았습니다. 터미널입니다."


그리고 선배들이 차를 가지고 우리를 데리러 터미널로 오셨다.


당시 팀 막내였던 나와 동기는 선배들의 칭찬과 격려를 받으며 사무실로 돌아갔고

그렇게 29번째 나의 생일은 주거침입 강간 피의자 2명을 구속하면서 끝이 났다.




사건을 마무리하고 인력사무소 사장님과 소주 한 잔 하게 되었다.


"사장님 감사했습니다. 덕분에 범인 잘 잡았습니다."

"민재 네가 고생 많았지. 합격할 줄 알았지만

진짜 경찰 돼서 이렇게 술 한 잔 하니까 기분 이상하다. 축하한다."


사장님과 나는 잠시 옛 추억에 잠겼다.


25살 수험생 시절 일용직 사무소에 나가 일을 하면서 수험비용을 마련하고 공부했던 그때의 내가

29살 형사가 된 나에게 주거침입 강간 피의자 2명 구속이라는 생일선물을 전해준 것 같다.


내가 살아온 지난 시간들 모든 경험들이

내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

그리고 내가 앞으로 살아내야 하는 미래에 선물 같은 시간이 되어주길...


그렇게 오늘도 나는 사건 속에서 피해자의 편이 되어 열심히 살아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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