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러니 - 남자 이야기
‘이상하리만큼 잘 맞는다’
비교적 어두운 집에 혼자 앉아
그녀와 이야기를 할 때면
제법 외롭지 않았다.
마치 오래 만난 사이처럼
맞추어 갈 것도 없이
그렇게 서로에게 스며들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때마다
내 마음속에선 불안감이 밀려들어왔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
나는 아직 결혼이라는 것을 생각하기엔
경제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준비가 되어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오늘도 나를 보며 생긋 웃는
그녀를 보며
그녀를 놓아주어야 하는지 아니면
내 마음이 준비가 될 때까지 조금은 이기적이지만
놓아주지 말아야 하는지
고민을 하느라 미처 그녀의 질문에 대답을 놓치고 말았다.
오래 생각해왔지만
어쩐지 급발진하듯이 이야기가 나와버렸다
‘우리 그만하자’
이내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이는 게 보였고
고개를 떨군 그녀를
나도 한동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가까이 가기에 어쩌면 내 마음은
내 생각 보다도 더 많이
이미 정리가 된 탓이리라..
그렇게 하자는 단호한 말을 남기고 나가버린,
그녀가 없는 내 집은..
내 집 같지 않은 장소가 되어
낯설어졌다.
그렇게나 내가 필요로 하던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도..
혼자 있는 시간도..
이렇게나 의미가 없었던 것인지
미처 알지 못했다.
오늘 같은 날이 오기 전까진..
방금 나간 그녀가..
나는 보고 싶다.
그런데 다가갈 용기가 없는 나는
그저 멀뚱히 침대 끝에 앉아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