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하게 용감한 딸
3개월 전 즈음, 딸이 좋아하는 남자 사람 친구(S)가 있다고 나에게 털어놓았다. 그때 고백할까 말까, 한다면 직접 말하는 게 나을까, 쪽지로 써서 마음을 전달하는 게 나을까를 이야기했었다. 나는, 고백하면 어떻게 되는지 물어봤다.
딸: S가 고백을 안 받아 줄 수도 있지.
나: 고백을 받아주면?
딸: 이성교제하는 거지 뭐.
이성교제라... 그 단어 자체를 말하는 것도 신기했고 웃음이 터져 나오려 했지만, 참으면서... 이성교제는 어떻게 하는 거냐고 물어봤더니... WHY나 다른 책들을 통해 이성교제에 대해서 배운 딸은, 부모님께 이야기하고, 공부에 방해되지 않도록 시간을 정해두고 만나고, 등등.... 책에서 본 것들을 이야기한다.
이 당시에는 고백을 하지는 않은 것 같았고, 시간은 흘러 흘러 6월이 되었다. 대망의 6월 20일, 딸이 학교에서 S와 다른 남자 사람 친구가 이야기하는 데, 그 근처에서 S의 눈앞에 쁘이(V)를 그렸단다. 그래서 그 다른 남자 사람 친구가 S를 좋아하냐고 물었고, 딸은 S를 좋아하는 게 사실이기도 하고, 아니라고 하면 S가 더 놀림을 받을까 봐 '응'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 남자 사람 친구가, 다른 애들도 다 좋아한다고 할 수 있으니깐, 다른 남자 사람 친구 이름을 대면서, 너 A 좋아해, B 좋아해.... 를 물었는데, 딸이 '아니'라고 일관되게 답했다고 한다.
뭐지? 우리 딸 왜 이렇게 멋지지?
누가 누구를 좋아한다고 하면, 대게 놀림받기 쉽상인데, 딸이 너무 당당하니 다른 친구들이 놀리지도 않았다고 한다.
S: 너는 왜 나를 좋아해?
딸: 나중에 이야기해줄게.
(문자로)
딸: 내가 왜 너 좋아하는지 말해준다고 했잖아.
S: 응.
딸: 나는 웃기고 재미있는 사람 좋아하는데, 너가 너무 재미있는 사람이고, 운동도 잘해서 멋져.
S: 고백임?
딸: 알아서 생각해.
S: ㅇㅇ
딸: 또 질문 있어?
S: 아니^^.
딸이 문자를 보여줬는데, 대충 이런 흐름이었다. 이후에 딸은 S의 운동경기에도 초대받았다 :-)
다음 날, 학교에서 S의 대답이 있을 것 같았는데, 잘해주기만 하고 사귈 거냐는 말에 문자로 회신 주기로 하고 별다른 말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다음 날인 6월 22일 딸과 만나 슬쩍 물어보니, 사귀기로 했단다.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 물어보니, 쪽지를 하나 보여준다. ㅎㅎ
"사귈꺼임? 너가 알아서 해. 내일까지 답장 없으면 내일부터 사귀는 걸로 알게~ 그리고 지금부터(오늘부터) 사귈 거면 o, 안 사귀고 싶으면 x에 체크해. o/x"
Wow! 용기와 당당함이 이 정도일 줄은... 이거 협박 아니지?!
여기에 S가 o를 가리켰다고 한다. >. <
나도 지금 남편에게 인생 처음으로 좋아한다는 표를 팍팍 내고 따라다니기는 했지만, 이런 것도 유전인가…그렇다면 이 유전인자가 더 발전했나 보다-!
무튼 나는 딸의 용기가 너무 멋져서 감동받았고, (남편은 굴욕적이라고 했지만) 작은 꽃다발로 축하해주었다.
너무너무 사랑스러운 우리 딸.
딸과 S, 두 친구가 친하게 잘 지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