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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호 Feb 05. 2024

일기

글쓰기 모임을 하다 보니, 필기구를 손에 쥐었던 감촉이 그리워졌다. 볼펜 촉이 거친 질감의 종이 위를 미끌어질 때 느낌을 다시 느끼고 싶었다. 에너겔 펜대에 사라사 0.5심을 끼웠던 개조 필기구를 주로 사용했다는 사실도 떠올랐다.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볼펜도 종이도 보이지 않았다. 메모장과 필기구 대신 평소에 들고 다니는 태블릿이 책상 위에 덩그러니 자리 잡고 있다(이젠 종이와 필기구를 서재의 친구라 부르기에 좀 민망한 감이 있다).

에전에 쓰던 필통을 뒤적거려 본다. 뭐라도 끄적거릴 종이를 찾는다. 우연히 안 쓴 지 두어 달이 지난 일기장을 발견한다. 흥미가 생겨 예전에 쓴 일기장들을 꺼내본다. 지금에 와서는 피식 웃고 지나갈만한 일이 많았다. 설익은 생각들과 고민들도 가득했다. 그래도 하나는 알 수 있었다. 나는 예전에도 나름 절실했던 것 같고, 나름 치열했던 것 같고, 나름 막막했던 것 같다. 지금처럼. 

다시 볼펜을 잡아본다.
무얼 쓸까 하다가 무엇인가를 써 내려간다.
빈 공간이 조금씩 줄어든다. 

생각도 정리된다.

현실에 대한 고민에 

살아온 오늘에 대한 반성과 후회를 더한다.
마지막 마침표를 찍을 때마다
장밋빛 내일을 꿈꾸며 더 잘 살겠노라 다짐을 한다.


그 때의 다짐을 이제 돌아본다. 

색이 바래져버린 일기장마냥 

예나 지금이나

세상만사가 내 맘대로 흘러가지는 않나 보다.


그래도

한 가지 위안거리가 있다. 

예전보다 조금은 더 나은 사람이 된 것 같다는 착각 혹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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