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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로 Dec 23. 2022

정말 사람이 많다는, 요즘 한 전시

다음 여행은, 무조건 여기로 결심했다

사람이 너무너무 많았다. 평일인데 정말 많다. 전통적(?)으로 미술전시에 가장 사람이 적다는 월요일날 가도 많을 것이다.

그래서 시간대별로 예약도 받고 있다. 사람이 다 차면 해당 시간대에는 들어갈 수 없다. 30분 단위로 쪼개서까지 인원수 배정을 해두고 있다.


https://tickets.interpark.com/goods/22015433

http://ticket.yes24.com/Perf/44035

소문이 나서 그런가 이제는 인터넷 예매도 한달넘게 남은 표까지 거진 매진돼 있는 상태.

전시는 3월 1일까지다.


https://www.museum.go.kr/site/main/exhiSpecialTheme/view/current?exhiSpThemId=648213&listType=list

홈페이지에는 평일에도 오후 3시만 지나도 그날 인원 다 마감되는 편이라고 하네. 나는 평일날 12시쯤 가선가 운좋게도 바로 들어갈 수 있는 시간으로 현장예매에 성공했다.




사실 내가 그렇게 선호하는 류의 전시는 아니다. 내가 미술관서 가장 좋아하는 건 현대 추상미술 같은거에 가깝다. 바티칸 미술관가서도 <천지창조>니 <아테네 학당>이니보다 전시관 말엽에 아무도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는 현대미술품들에 더 인상깊어하던 인간이 나다.(그래서 바티칸은 다음엔 가이드 없이 일찍 개인예매해서 내 템포대로 둘러보고 싶은게 소망이다. 이때는 뒤늦게 예매하느라 가이드 외에는 대안이 없었다.)


한국서 몇년동안 본 미술전시 중에도 가장 기억에 남던게 호안 미로였고 아니쉬 카푸어고 그렇다.

호안미로의 <무용수(Danseuse)>. <블루 II>랑 이게 가장 좋았다.
리움미술관의 야외정원. 가운데가 아니쉬 카푸어의 <큰나무와 눈(Tall Tree and the Eye)>.

아니쉬 카푸어가 리움에 온 16년 전시에서 가장 좋았던건 서서히 돌고있는 거대한 붉은 멧돌이었다. 강렬히 남던 광경이라 일부러 사진찍지 않았다. <나의 붉은 모국(My Red Homeland)>이라는 작품이었다.


그래서 전시회 가기전부터 반드시 꼭 본다 이런 느낌으로 간건 별로 아닌 편. 굳이 따지자면 그냥 시간이 남는데 갈 전시회를 찾아보다갔다에 가깝겠지.

그런데, 이런걸 가면 매번 느끼는거지만(그러면서 동시에 매번 망각하는 것이지만) 실제로 가보면 생각과는 달리 정말 좋다. 실제 그림의 위력이라 해야할지 모르겠다만 직접 가서 보면 정말 다르다. 분명히 디지털화된 2D이미지로만 볼땐 그저 그렇겠지했던게 직접보면 와아하게 된다. 언제나 그렇듯이.

무엇 때문일까. 고흐처럼 두텁진 않더래도 느껴지는 물감의 질감 때문인가? 모니터 틀로 보는 조막만한 이미지 파일이 아니라 원래의 그림크기 그대로 보아서인가? 큐레이터들이 디스플레이를 잘해놔서?

인류가 언젠가 모든 세계를 디지털로 옮긴다해도 미술작은 맨마지막까지 아날로그로 남길 바래—


나는 전시를 가도 설명같은거 거의 안 읽고 그냥 직관적으로 이쁘다만 보면서 다니는 편이지만 그런 태도로 봐도 합스부르크전은 건질게 분명히 많은 전시다. 아무 생각안해도 바로 알게된다.

맥락과 의미는 전혀 다르지만 그대로 갖다써도 이 전시에 맞는 말이라 가져와봤다.

인스타각 그런거 생각안하고 그냥 보시라-


미적인건 즉각적으로 반하면 끝난거다.

이건 정확히 내가 미술 보는 태도랑 일치한다. 배경 그런거 아무 상관없다. 그냥 예쁘면 돼.




초입에는 뜻밖에 그림들이 아니라 웬 갑주 둘이 전시돼 있다. 작품으로서는 모르겠으나 디스플레이된 공간으로서는 여기가 제일이었다. 딱 뭔가 다른 문명권으로 들어서는 듯한.

전시의 마지막에는 고종 때 오스트리아에 선물로 줬다는 조선시대 갑옷과 투구가 있는데 생긴게 정말 다르다. 생각해보니 수미쌍관이네. 처음과 끝을 무장이 지켜주는 느낌은 의도한 것일까.


나는 전시를 보면서 사진을 그닥 많이 찍는 편이 아니다. 시간의 흐름속에 날아가버릴지도 모를 기억에만 남겨두고픈 장면들이 있다. 여행이든 전시든 사람이든 그러하다.


그보다 더 소중한 기억은 반추로만 새겨두고파.(이에 대해선 언젠가 길게 쓸 기회가 있으리라.)


이 전시도 사진을 찍을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돌아다니다 보니 웬 배우 아담 드라이버가 그림으로 걸려있는게 아닌가!

너도 합스부르크였니? 주걱턱이었으면 정말로 믿었을거 같어.

웃겨서 찍어뒀다. 정말로, 웃겨서-


합스부르크는 살아있다! 외칠걸.[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마지막 황태자 오토 이래로 지금도 멀쩡히 잘사는 가문을 두고 하는 드립.]



이때부터 몇컷씩 찍기 시작했다. 얼마 안되지만.


꽃그림은 이전부터 필멸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계절과 상관없이 같이 피어있는 꽃들의 조합을 보는 것도 재밌을 거다. 지금은 얼마든지 가능한 광경이나 그려지던 이때는 분명히 '상상화'였을것.


제일 유명한 작품은 홈페이지서부터 여기저기 팜플렛에도 나온 <흰옷을 입은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 그림이겠지만 실상은 왠걸 이 그림이 제일 인기 많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쁘자나! 미적 호소는 설득의 과정이 필요없지.

이 앞에서 서서 사진찍던 사람이 꽤 됐다. 좀만 더 사람많았으면 그림앞에 줄서서 기다릴뻔했다.


이걸 찍은 이유는 다른게 없다. 카이사르는 대머리 난봉꾼이라 놀려야 제맛일텐데. 왜 그래야하는지 꽤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저 넓디넓은 이마를 보라. 자라나라 머리머리! 정숙한 분위기서 크게 놀릴 수 없어 아쉬웠다.(난 왜 이럴때만 똘끼가 발동되려 하는걸까.)


대강 다 보고 나오려니 이러저러한 것들도 찍었는데 초입의 갑주들도 찍어놔야 되는거 아닌가 싶었다. 여기서 여태 사진찍은 기준선을 생각하면 그게 맞다. 다시 초입부로 달려갔다.

이 광경이 퍽 기억에 남는다.

실전에 쓰려 만든건 아니고 당연히 의례용, 장식용이겠지만 생각외로 불편하지 않게 움직이더라. 옆에서 이런 갑주를 실제사람이 입고 움직이는걸 동영상으로 보여준다.


마지막엔 조선시대 갑옷과 투구가 있었다. 고종의 선물이라니. 망국을 향해 치닫던 군주가 마찬가지로 황혼 시기에 들어서던 왕실에 준 기념품인 셈이다. 당시 이걸 선물로 주고받던 두 군주는 다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겠지만.




여기는 빈미술사박물관에서 온 것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전시의 다른 주요 테마는 빈이다. 한 공간을 일부러 할애하여 근대시기 합스부르크 왕가에 의해 이뤄진 빈의 변모 다루고 있기도하다. 이 전시의 주된 제목은 합스부르크일지라도 부제를 달자면 오스트리아의 빈 어울린다.


19세기 파리는 조르주 오스만에 의해 현재의 우리가 아는 모습으로 정비되었지만 비슷한 시기 빈 또한 구 성곽을 해체하고 새로운 거리를 조성하면서 대대적인 변화를 거쳤다.

유럽문명의 절정, 19세기에서 20세기초 당시 대표적 도시는 프랑스 파리만큼이나 오스트리아 빈을 꼽아야 한다.


그때 이곳서 지내던 인물들 이름만으 빈은 얼마든지 파리에 필적다.

정신분석의 프로이트, 물리학자 슈뢰딩거(상자속 고양이를 찾던 그 인물 맞다.), 경제학자 슘페터, 칼 폴라니, 철학자 비트겐슈타인, 칼 포퍼, 경영학에서 모르기 힘든 피터 드러커, 오페라의 푸치니, 클래식의 쇤베르크...


정치사회 분야도 빼놓을 수 없다.

트로츠키, 스탈린, 히틀러, 그리고 시오니즘의 주창자 헤르츨까지 모두 당시 빈에 있었다.


긍정적이었든 파멸적이었든 분명히 당시 빈은 미래를 낳은 도시였다. 이곳에서의 인물들은 20세기 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세상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남겼다.


예술분야는 파리가 우세겠다만 모든 분야를 고려하면 활동하던 인물들의 면면만으로는 나는 파리보다는 빈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난 다음 유럽행은 오스트리아행이라는 생각을 굳혔다. 원래도 그리 생각하고 있었지만. <어제의 세계>를 보아서도, 비트겐슈타인의 드라마틱한 삶에 매료돼서일 수도 있다.(많이들 찾는 이유인 모짜르트는 그가 쓴 음악은 버릴 곡이 하나도 없다는거 외에는 아직 소양이 부족하야 별 감흥이 없다.)


다음 유럽은, 무조건 오스트리아다.


#합스부르크전 #국립중앙박물관 #국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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