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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로 Dec 31. 2022

왜 다 나한테 일본어로 말을 걸지?

나는야 검머외 한국인

*이 글은 해당분야를 전공하지 않은 문외한으로서 쓴 글이다.



일본에 가자마자 느껴진게 있었다. 나는 여기서 외국인이지만 나에겐 아무도 영어로 말을 걸어오지 않는다. 겉보기에 한국인은 일본인과 구별이 되지않는 존재라서인가.


일본어? 조금 할줄은 안다. 다만 초보회화 수준이다.


문법이야 한국어와 거의 같은 구조인게 일본어다. 단어랑 동사활용, 한국어의 [-은(는)/-이(가)/-에/을(를)]에 해당하는 조사(助詞)만 알면 쉽게 한국어와 똑같은 방법으로 문장구성이 가능하다. 한자 읽는 방식이라든가 피동/사동 표현들이 일본어에서만 고려해야 할 다른 측면이 있긴한데 그 정도는 여행용 초보회화에서는 필요없기도 하고, 그래봤자 영어에 비하면야 개꿀. 한국인 입장에선 그 자체로도 대관절 모르겠기도 하고 동사랑 같이쓰면 어떻게 다른 뜻을 가지게 되는지 매번 고민해야 하는 품사인 전치사 같은거도 없다.


거기다가 발음은 전혀 별도로 학습을 안해도 된다. 음가(音價)가 한국어랑 똑같다고 봐도 무방. 영어만 해도 한글로 표기하기 힘든 f나 th발음이 있어서 속을, 아니 혀를 썩히지만 일본어는 그럴게 아예 없다. 모든 일본어는 한글로 거의 ‘완전한’ 발음표기가 가능하다. 유의할게 있어봤자 장단음 정도려나. つ[tsu]발음 정도는 한글로 온전한 표기가 힘들수도.


그래서 한국인 입장에서 제일 쉬운 외국어는 압도적으로 일본어다. 다만 이 모든 쉬움은 각기 50여자에 이르는 일본글자인 히라가나/가타카나를 외우는게 전제되긴 하지만. 알파벳 갯수의 두배로만 외우면 그 다음부터 이 언어는 엄청 쉬워진다.




그래도, 저기요 나 일본어 못한다구요. 몇마디 곤니치와 정도만 하고 들어간 식당, 자리를 잡는다. 약간의 미적거림도 없이 내겐 당연하다는듯 일본어 설명과 함께 일본어 메뉴판이 제시된다. 물론 한자랑 히라가나/가타카나는 읽을 줄 아니까 메뉴를 어느 정도는 알아보려 할 수 있다해도. 지금이라도 자세한건 영어로 뭐라뭐라 물어봐야하나 하다 생각해본다.


아, 그래 내가 여기선 검머외구나. 국내주식판서 유명하다는 그 검은머리 외국인. 그게 일본에선 나같은 사람들을 가리키는 거구나. 근데 정말로 그러하다. 일본어를 구사하는 한국인은 일본인과 구별할 방법이 없다. 심지어 어떤 한국인이 일본어에 유창하다? 그럼 일본인 입장에서도 자기네랑 똑같이 느껴질거다. 마치 한국어에 유창한 중국인이나 일본인이 우리에게 그러할 것처럼. 그런데 이게 약간은 다르다. 뭐냐면, 앞서도 음가(音價) 이야기를 했지만 한국인이 일본어를 발음하는건 허들같은게 전혀 없다. 그냥 생각나는 그 발음 그대로 하면 된다. 일본어는 한국어보다 음가의 다양성이 적은 언어다. 받침부터해서 자음과 모음의 조합이 훨씬 적다. 그러니까 더더욱이, 한국인이 일본어를 하면 일본인 입장에선 구별하기가 쉽지 않겠다 싶다.


하지만 이 얘기는 그 역의 경우는 성립하지 않는다. 음가의 다양성 차이가 이젠 역으로 허들이 된다. 일본인이 한국어 발음을 유창하게 하는 건 좀 더 노력이 필요한 일일게다. 일단 한 음으로 발음되는 받침 갯수부터가 한국어가 더 많다. 그래서 일본인이 맨 처음에 한국어를 말할땐 받침을 연어로 뭉개서 발음하기 쉽다. ‘하겠습니다.’는 [하게스무니다]가, ‘멀리’는 [머리]나 [머루리]가 되거나. 파찰음과 된소리도 좀 그래보인다. '카'와 '까'를 쉬이 구별할 수 있을것인가. 아니면 '욘' '연' '염' '욤' '용' '영'은 일본인에게는 모두 'よん'으로만 들려 모두 같게 발음하게 되기 쉽다.


한국인에게 일본어는 말하기 쉽다. 그런데 그 역의 경우도 성립하는지는 모르겠다. 문법은 똑같이 그럴테지만 발음은.


그래서 일본인이 한국어를 발음한다면 어느 한국인이든 단박에 어눌함을 눈치챌 것이다. 저 사람 한국인 아닌데? 그에 비해 한국인이 하는 일본어 발음은 네이티브 일본인도 유심히 들어야 무언가 다름을 나중에 겨우 구별하는 것 같았다.


일단 내가 일본어를 조금이라도 완결된 문장으로 하면 그 다음부터는 다들 내게 자연스럽다는듯 일본어로만 말을 걸어왔으니까 .




아니, 심지어 내가 아무말 안해도 걷는 중에 길이 어디냐 물어보는 일본인이 그렇게 많았다.


"스미마셍, 와따시와 니혼진쟈 나이데스."(죄송한데, 저는 일본인이 아닙니다.)


그리고서 한마디 덧붙였다.


"니혼고와 데키마셍."(일본어는 못해요.)


그러면 상대 일본인도 흠칫하더니 약간 당황하는 기색이 있기도 했다. 그러면 나도 먼가 그 흠칫함에 대응이라도 해줘야 될거 같달까. 몇마디 더 기초적인 표현에다가 영어 섞어서 얘길 하기도 한다. 몇마디를 알아듣겠는 경우엔 외국인인 내가 심지어 구글맵을 켜서 현지 일본인에게 근처 역이나 마트 같은거 찾아준일도 있었다! 어흑...




아무말도 없이 가만히만 있던 내게 일본어로 먼저 말을 걸어오는건 특히 오사카 하라부지들이었다. 좀 과장섞어서 열번 좀 안되게 그런거 같다. 내가 요기 하라부지들한테 좀 먹히는 상인가... 하루는 어떤 하라부지가 길을 묻는투로 머라머라 말을 걸어오길래 앞서처럼 난 일본인이 아니에요ㅠ 이러고 일본어 몬함요ㅠ 이랬는데, 그 하라부지가 먼가 신기한걸 본 눈빛으로 날보며 계속 머라 문장을 이어갔다. 내가 알아듣기 힘든 단어들의 연결 사이에서 "코토바" 어쩌고란 말이 반복적으로 들렸다. 코토바? 나중에 찾아보니 코토바는 말이란 뜻이더라. 한자로는 [말씀 언]에 [잎 엽]자, 言葉이라 쓰는. 아 그래서 언어의 정원이라는 애니메이션 제목이 있었지 생각났다.

덕후들이 그렇게 열광한다는 신카이 마코토의 그 '언어의 정원'. 일본어로 언어가 言葉, 한자뜻으로 풀어보면 '말+잎'이기에 가능한 언어유희다.

뭔가 한국인 검머외가 일본어를 못한다는 말을 유창하게 일본어로 하는게 신기할수도 있었겠다 싶다.




아, 빼먹을뻔 했는데 한국인의 입장에서 일본어를 할 때 그런건 있다. 대개의 경우 일본인들은 일본어를 한국인이 상정한 것보다 하이톤으로 말한다. 이거는 내가 일본에 갈때마다 적응안되는 것 중 하나이지만, 일본어 네이티브들의 발화에는 그 특유의 하이톤이 있다. 가게 들어가면 듣는 "이랏샤이마세~"부터 나올때 듣는 "아리가또 고자이마스~"까지. 어떤 말이든 여기 네이티브들은 한국인이 상정하는 것보다 더 높은 톤으로 말한다. 정말 옛적에 도쿄갔을때부터 느꼈다. 편의점을 들어가면 나오는, 한국인 입장에서 조금은 과도하다 싶은 간드러지게마저 들리는 높은음의 이랏샤이마세~. 여기 사람들은 말은 왜 이렇게 귀엽게 하지. 심지어 건장하기 그지없는 산(山)만한 사내마저. 뭘까, 대체.


물론 이런거도 일본에 여행객으로 방문할 때 이곳이 참 친절하다 느끼게 되는 한 요인이기도 하다. 여기선 이런 말하기가 디폴트래도 외국인 입장에선 나긋나긋하고 배려받는 느낌이랄까. 안 그래도 사람들이 친절한데 거기다가 말투가 귀엽게 들리기까지 한다고?!




그래도 난 끝까지 적응이 안되는 편이긴 해.


이게 일본어톤인거는 알겠는데, 굳이 나까지 그러긴 싫다랄까. 나는 검머외란 말이다! 너무 낯간지러. 나는 굳이 귀엽게 보이고 싶지 않단 말이다. 저게 진짜 일본말인건 알겠다. 나중에 유튜브보니 한국인들도 유창하게 일본어 할때면 목소리 톤이 바뀌더라. 그렇지만 나는 말투를 저러면 스스로가 너무 작위적으로 느껴질지라 저 톤대로 일본어를 구사하는 건 끝까지 거절하기로 했다. 일본어를 하는 일이 생겨도 내 톤은 한국어 그대로였지.




생각해보면 그런걸 느꼈던 순간들은 한국에서도 있었던거 같다. 언젠가 부산에 머물때 어디 토요코인에 있던 적이 있다. 가장 마음에 든건 튼실한 아침이었다. 이게 공짜라니! 아침마다 나는 과식, 아니 폭식하였다.(비교해보면 일본보다 한국지점이 확실히 밥이 더 잘나오기도 한다.) 아침에 내려가서 밥을 먹을때마다 일하고 계신 아주머니들은 합창하듯 “좋은하루 되십시오.”를 연신 외치고 있었다. 그날도 게걸스럽게 먹고 있었다만 이따금씩 그게 괴이하게 느껴졌달까. 이상해, 분명히 한국어가 맞는데 내가 들어본적이 없는 말 같달까.


옛적 유니클로로 이런적이 있다. 유니클로가 한국에 들어오기 시작하던 초창기, 매장에 들어서기만 하면 직원들이 앞다투어 여기저기서 “어서오십시오.”, "어서오십시오.", "어서오십시오."라고 외치던게 메아리처럼 울려퍼지던걸 혹시 기억하는 사람이 있는가.


토요코인이나 유니클로나 일본계 회사긴 하고 그러니 아마 일하는 이들에게 저런 식의 응대가 본사로부터 메뉴얼로 정해져있던 것일터.


난 아무리봐도 그런게 한국말로는 안 들린다. 한국어가 맞긴 하다. 근데 한국말은 아니야. 한국어로 일본말을 하는거라 해야하나. 저건 도저히 한국적 맥락에서는 나올만한 발화가 아니다. 그건 아무리봐도 한국어로 하는 일본말이지 한국말은 아니야.


저 톤에는 “좋은하루 되십시오.”에 “오하요 고자이마쓰.(아침인사)”를, 어서오십시오."에 "이랏샤이마세.”를 쓰면 '말'이 될거 같긴 하다.


유니클로에서도 어느 시점에 이걸 깨달았는지 언제부턴가 더 이상 아무도 그러지 않는다만. 토요코인도 언젠간?




이게 언어학에서 화용론*인가 하는 그거일려나.


여튼 한국어와 한국말은 다르다. 일본어와 일본말도 그럴테지만 이건 내가 일본어를 더 잘하게 되어야만 알 수 있는 일이겠지.




*말하는 이, 듣는 이, 시간, 장소 등으로 구성되는 맥락 속에서의 언어사용을 다루는 언어학의 한 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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