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내가 느낀 거리감은 두 종류였다. 먼저 사회적 거리감이다. 사람들이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대화 주제는 비슷하다. 바로 대학, 여행, 취미, 고향 등이다. 먼저 한 명이 정해진 주제에 맞게 자신의 정보를 던지면 다른 사람들이 호응하는 식이다. 지난밤에도 그랬다. 행사를 마치고 뒤풀이를 위해 비슷한 나이대 사람과 한 테이블에 앉았다.
대화 주제는 엇비슷했다. 근데 대화 내용이 달랐다. 다들 대학은 인서울 상위권 대학이었다. 해외여행은 1~2주 정도의 휴식이 아니었다. 6개월, 1년 등 장기적으로 체류하는 교환학생이었다. 한 명은 자신이 해외에서 그 나라 문화가 어땠으며 그곳에서 자신이 겪은 일화를 말했다. 그 레퍼토리 끝에는 항상 '정말 그 나라 사람들은 한국하고는 다르다'는 식의 말을 덧붙였다. 나는 경기권 대학이고 교환학생도 가보지 못했다. 그런 대화에서 내가 할 말은 부럽고 신기하단 식의 반응 따위였다.
언젠가 친누나가 말했다. 재력, 배경 등의 차이는 오히려 일상적인 상황에서 느낄 수 있다고. 또 그럴 때가 훨씬 슬프다고. 그날 나는 그들에게서 경기권 대학 출신 토종 한국인을 배제하려는 의도까진 느낄 수 없었다. 그들도 할 말이 없으니 얘깃거리를 던졌을 것이다. 물론 그 점이 더 씁쓸했다. 그들에게 일상이며 자연스러운 일들이 나에겐 미지의 영역이니까. 그리고 관계는 바로 그렇게 형성되니까. 그날 나는 다양한 관계가 형성되는 걸 목격했다. 내가 모르는 분야에서 얘기가 나오고, 거기서 또 새로운 주제가 이어진다. 이를 통해 서로는 접점을 발견하고 그 점을 파고들어 유대를 형성한다. 술까지 먹으며 서로 웃는 모습은 언뜻 친한 친구처럼 보인다. 저 모습이 정말로 숨겨진 공통점을 찾아 반가운 모습인지 아님 계산된 연출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사회적인 관계는 어떻게 보이는지가 중요하다.
다음은 정서적 거리감이다. 이 감정은 본격적으로 느낀 건 이 회사에서 일하면서부터다. OTT 시청, 사진 촬영, 낚시, 문화 예술 공연 등 사람들은 꽤 다양한 취미를 지녔다. 나는 취미라고 할 만한 활동을 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 요즘 이런거 해요' 등의 활동을 잘 안하는 편이다. 가끔씩 운동, 코노를 가면서, 아주 가끔 책 읽는다. 그 외 대부분은 누워서 유튜브를 보며 지낼 뿐이다. 여기에 연애까지 하면 시간은 정말 남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취미가 뭐냐는 질문을 들으면 '누워있기'라고 대답한다. 내가 가장 편안함과 행복을 느끼는 활동이기도 하니 아예 틀린 말은 아니다. 이렇게 말하면 예상 외 답변이라 흥미롭게 봐주는 사람도 있지만 마치 이상한 것이라도 본 듯 당황한 모습을 드러내는 사람도 있다.
그날 밤도 서로 취미를 묻는 질문이 오갔다. 내 취미는 여전히 '누워있기'였다. 내 대답에 형식적인 질문이 오갔다. 다른 사람들에 취미에 비하면 내 취미는 시간을 오래 끌지 못했다. 곧이어 누군가 새로운 화두를 던졌다. 이번 주말 맥주 행사를 시작으로, 최근 유행하는 OTT 콘텐츠, 좋아하는 가수까지. 얘기는 종횡무진 이어졌다. 여기에도 내가 할 말은 없었다. 그런 주제들도 생소하거니와 관심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같은 나이대라는데, 왠지 멀게만 느껴졌다.
사회적 거리감은 나에게 무력감을 안겼다면 정서적 거리감은 나를 비참하게 만든다. 사회적 거리감에서 비롯한 무력감은 탓할 대상이 있었다. 대학의 서열화와 학연에서 비롯한 특혜는 불공정하다는 시각이 있으니까. 사회에 불공정이 판친다며 탓할 수 있었다. 정서적 거리감은 남 탓을 할 수 없다. 취미는 꼭 좋은 대학을 나오거나 집이 부유해야만 가질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당장 주변에도 다양한 취미를 가진 친구들이 많다. 정서적 거리감은 따로 취미를 개발하지 않은 내 책임이었다. 물론 술자리에서 대화에 참여하기 위해 꼭 취미를 개발할 필요는 없다. 타인에 시선 맞추기에 급급해 행동하다 보면 자신을 잃기 십상이니까. 그런데 이 업계는 부득이하게 사람들과 많이 만나 관계를 맺어야 한다. 좋은 관계에서 좋은 정보가 나온단다. 결국 남의 시선에 맞춰 내 몸을 깎을 필요가 있다. 실제로 그날 봤듯 그것이 관계 맺기에 더 유리하다.
그날 자정이 넘을 즈음, 나는 직감적으로 느꼈다. 앞으로 사회생활 잘하긴 글렀다. 나의 사회적 간판은 다른 엘리트들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 색다른 취미도 별로 없다. 대중적인 취향에 맞춰 문화 예술 등을 즐기지도 않는다. 술도 마시지 못한다. 술자리도 별로 안 좋아한다. 시끄럽고 대화를 위한 대화도 어색하다. 아첨, 아부를 잘하냐면 그것도 아니다. 오히려 술자리에서 나오는 오히려 소모적인 정치질, 허세의 향연에 짜증이 난다. 이런 점은 이 업계가 요구하는 미덕과는 다르다. 개성이 열성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그날 내 앞에는 '인서울 상위권 대학'에 '어학연수'를 갔다 온 인턴이 옆 테이블 부장에게 자신의 미국살이 얘기를 하고 있었다. 부장은 자신의 미국살이 이야기로 응수했다. 나는 술을 얼마 먹지도 않았지만 정신이 아득했다. 지난한 미래가 그려지고 스러저가는 내 모습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