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에 관한 생각』 8장 ~ 10장 리뷰
여성의 사회 진출 확대에 부정적인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이 있다. 생물학적으로 봤을 때 남성이 지배자의 역할을 맡는 것이 자연스러우며, 여성의 부상은 오히려 여성을 불행하게만 만들 뿐이라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여성의 행복과 안녕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것은 별개로, 과연 여성은 생물학적으로 지위나 권력과 거리가 멀까?
알파 암컷은 알파 수컷만큼 흥미로운 행동을 보이지는 않아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어렵지만 엄연히 존재한다. 친밀한 유대, 첨예한 갈등, 지위 변화와 권력 행사는 수컷과 암컷 모두 경험하는 것이다. 다만, 그 양상이 다르게 펼쳐지기는 한다.
8장. 폭력성
젠더 편향이 강한 한 가지 측면은 물리적 폭력이다. 폭력의 원천은 수컷이 압도적으로 많다. 이것은 사람에게도 보편적으로 적용되며 대부분의 나머지 영장류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수컷도 피해자가 되지만, 일반적으로 가해자는 같은 수컷이다. 수컷의 잔혹성은 지배성과 세력권과 관련이 있거나 성관계와 관련이 있다.
수컷 침팬지는 생식 능력이 있는 암컷을 괴롭히기도 한다. 이런 행동이 수컷의 생식에 도움이 될까? 암컷을 괴롭히는 수컷 침팬지가 후손을 더 많이 남기기는 한다. 하지만 그 연결 관계가 어떻게 성립하는지는 알 수 없다. 수컷의 괴롭힘이 교미로 이어지는 경우는 없기 때문에 그 연결 관계는 간접적일 것이다. 공격적인 수컷에게 두려움을 가진 암컷이 이후 결정적인 순간에 마지못해 수컷의 요구에 응할 수도 있고, 아니면 그런 수컷이 생존 가능성이 더 높은 정자를 만드는지도 모른다.
훨씬 더 직접적인 형태의 강압은 강간이다. 저자는 사육 상태의 침팬지 사이에서 일어나는 짝짓기를 수천 번 이상 관찰했지만 암컷의 의사에 반하는 성관계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반면 우리와 유전적으로 덜 가까운 오랑우탄은 수컷이 암컷에게 행사하는 성적 강압이 심각하다. 오랑우탄은 수컷이 암컷에 비해 상당히 크며 무리를 지어 살아가지 않고 홀로 살아가기 때문에 이러한 것으로 추측된다. 모든 수컷 오랑우탄이 이런 식으로 행동하지 않으며 암컷이 항상 성행위에 저항하는 것도 아니다. 강압적 교미는 대개 몸집이 작은 수컷이 저지른다. 암컷은 몸집이 큰 수컷을 선호하고, 멋진 수컷의 경우 암컷이 먼저 적극적으로 짝짓기를 유도한다. 암컷의 의사에 반해 짝짓기를 하려고 하는 것은 2차 성징이 제대로 발달하지 못한 수컷이다.
강간이 후손을 퍼뜨리기 위한 적응 전략이라는 견해를 펼치는 사람들은 오리나 오랑우탄처럼 강압적인 교미를 하는 소수의 동물을 불러낸다. 하지만 진화의 논리를 생각해 보면 강압적인 교미의 사례가 왜 이 동물들뿐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강간이 그토록 훌륭한 수정 기술이라면 강압적 교미가 자연에 만연해야 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또한 생식이 목적이라면 생식연령의 범위에 벗어나는 여성 혹은 남성을 왜 강간하는가?
일반적으로 수컷 영장류는 암컷에게 공격성을 억제한다. 물리적으로는 암컷을 쉽게 죽일 수 있지만 심리적 억제가 발휘된다. 진화론적으로 수컷의 공격성의 주목적이 생식이라면 그것을 암컷에게 사용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비생산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수컷의 공격성은 대부분 다른 수컷을 향한다. 사람들 또한 남성보다는 여성을 희생, 처벌, 살해하는 것에 더 큰 거부감을 느낀다.
9장. 알파 수컷과 알파 암컷
암컷 유인원의 서열은 나이에 따라 정해지고 암컷이 지위를 위해 경쟁하는 일은 드물다. 암컷의 높은 지위는 숲에서 살아가는 데 별로 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어차피 혼자서 여행을 하고 먹이를 찾고 새끼를 키워야 한다. 수컷이 육체적으로 쇠약해지면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반면 암컷 침팬지는 나이가 들수록 지위가 높아져서 편안하게 자신의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는데, 이 과정을 ‘줄 서기’라고 부른다.
서열은 공식적인 것으로 누가 누구에게 복종 제스처를 취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는데, 이 서열을 관찰하면 알파 암컷 침팬지가 수컷 어른을 한 마리도 지배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알파 암컷 침팬지는 무리 내의 모든 암컷에게 복종의 제스처를 받지만 수컷들보다는 복종의 제스처를 훨씬 덜 받는다.
그러나 권력은 서열과는 또 다른 층위이다. 알파 암컷이 행사하는 권력은 알파 수컷보다도 클 수 있는데, 알파 암컷은 알파 수컷의 권좌를 유지할지 말지 혹은 내쫓긴 알파 수컷을 복권시킬지 말지를 결정하기도 한다. 수렴청정을 하는 대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암컷은 다른 암컷과 비교해 자신의 서열이 어디인지를 신경 쓰고, 수컷은 다른 수컷과 비교해 자신의 서열을 의식한다. 수컷은 수컷들 사이의 사회적 사다리를 오르기 위해 투쟁하고, 암컷은 암컷 사이에서의 자신의 지위가 중요하다. 다른 수컷보다 지위가 높은지 낮은지는 암컷에게 중요하지 않다. 수컷과 암컷은 각자 다른 세계에서 각자 나름의 문제를 맞닥뜨리며 살아간다. 수컷은 지위와 암컷과의 짝짓기를 두고 경쟁하는 반면 암컷에게는 섹스가 먹이보다 덜 중요하다. 암컷은 태아를 키워내야 하기 때문에 영양이 중요하다.
우리의 역사 시대와 선사 시대 대부분에 걸쳐 노동은 젠더에 따라 나누어졌다. 산업화 시대에 들어선 뒤에야 젠더가 뒤섞인 노동 현장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흔히 계층화된 직장 환경이 덜 위계적인 여성에게 맞지 않다고들 한다. 그러나 여성이 비위계적이라는 것은 널리 퍼진 미신이다. 거의 모든 사회적 동물에서 각각의 성은 수직 방향으로 서열이 매겨진다. 남성이 여성보다 더 위계적임을 입증하는 데이터는 없으며 유일한 차이점이라면 남성이 여성보다 더 빨리 순위를 정한다는 것뿐이다. 여성들 간의 위계질서 문화를 목격하는 남성들이 "여자들이 더 하다니까."라는 말을 내뱉곤 하는데, 그것은 여성들이 덜 위계적일 것이라는 믿음이 배신당한 데서 오는 당혹감일 것이다.
병원 수술실은 강력한 위계질서를 보인다. 긴장도가 높아 강력한 협응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남성 외과의는 더 권위적이고 여성 외과의는 더 부드러울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관찰 결과 양 젠더는 똑같은 지도력과 태도를 보여주었다.
그런데 수술실의 젠더 구성과 관련해서는 차이점이 나타났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흥미로운 내용이었는데, 남성이 리더일 경우 팔로워 그룹이 여성일 때 더 높은 수준의 협력이 일어났다. 마찬가지로 여성이 리더일 경우 남성 팔로워 그룹이 더 높은 수준의 협력을 보였다. 알파 개인의 젠더가 다수의 젠더와 일치할 때 갈등이 두 배 더 많이 기록됐다. 영장류 학자라면 누구나 예측했을 결과인데, 알파라는 위치는 같은 젠더 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10장. 평화 유지
유대를 다지는 방법은 성별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여성은 친밀감과 정보 교환을 추구하는 반면, 남성은 행동지향적이며 개인적인 일을 털어놓지 않는다. 남성은 함께 모험하기를 원하고, 여성은 개인적인 이야기를 털어놓기를 원한다. 양 젠더 모두 같은 젠더끼리 어울리는 것을 즐기며, 자신의 젠더가 따르는 우정의 모습에 만족감을 느낀다.
수컷이 갈등을 피하는 방법은 서로 어울리면서 친구가 되는 것인데, 이것을 ‘수컷 바탕질’이라고 부른다. 수컷은 동성 구성원과 자동적으로 같아지는 배타적 네트워크의 일원이다. 수컷 바탕질은 나이가 들면서 변화한다. 늙은 수컷들은 소수의 친구에게만 집중한다. 그들은 가짜 친구에게는 관심을 잃는다. 한 가지 설명은 나이가 들면서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낮아지며 성격이 부드러워진다는 것이다. 경쟁이 치열한 젊은 시절에는 정치적 가치를 위해 우정을 맺다가 나이가 들며 전성기를 넘기면 순전히 재미와 휴식을 위해 우정을 지속한다.
수컷 침팬지들은 암컷보다 빈번하게 싸우지만 쉽게 화해한다. 수컷에게는 가장 큰 경쟁자도 미래의 동맹이 될 수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일어날 수 있으므로 모든 선택의 가능성을 열어둔다. 마찬가지로 남성은 지위를 두고 다투는 경쟁자가 되거나 동맹을 맺는 친구가 될 수 있고, 둘 다가 되는 경우가 흔하다. 남성들은 친구와 경쟁자라는 양자 사이를 순탄하게 왔다 갔다 한다. 남성은 긴밀함을 유지하면서도 자신의 주장을 거침없이 내세우는 데 능숙하다.
암컷 침팬지의 갈등 양상은 수컷과 사뭇 다르다. 두 암컷이 심하게 다툴 때면 양쪽 다 이빨을 드러내고 비명을 지르며 두려움과 고통을 느낀다는 것을 드러낸다. 수컷의 경우 이런 행동은 패배를 자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위에 있는 수컷은 몸을 크게 부풀리고 입술을 꽉 무는 반면, 상대는 겁에 질려 비명을 지르며 도망간다. 그런데 암컷 간의 싸움은 둘 다 울고 있기 때문에 누가 이겼는지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으며, 싸움의 결과로 서열이 변하는 경우는 드물다. 암컷 사이의 대결은 양측 다 괴로워하는 비명을 지르다가 대부분 화해 없이 끝난다.
무리를 지어 결속을 강조하는 소년과 달리, 소녀는 일대일 우정을 연쇄적으로 쌓아간다. 소년들은 항상 다투지만, 그 때문에 우정이 틀어지는 일은 드물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소녀들 사이에서는 싸움으로 인해 그들의 우정이 끝나버리는 경향이 있다. 여성은 남성보다 어려움이 생긴 관계에 대해 더 많이 그리고 더 오래 반추한다.
수컷은 갈등이 분출되었을 때 화해를 하는 데 능숙하고, 암컷은 갈등을 억제함으로써 평화를 유지하는 데 능숙하다. 암컷에게 갈등은 감정적으로 고통스럽고 피해가 크기 때문에 암컷은 모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신경 쓴다. 하지만 피할 수 없어 일단 싸움이 발생하면 매우 강한 형태로 공격성을 드러낸다.
암컷의 협력 능력에 관한 한 더 나은 모습은 침팬지보다 보노보일 것이다. 보노보 사이에서는 한쪽 성이 다른 쪽 성보다 화해 능력이 더 뛰어나지 않으며, 암컷 간의 갈등 후에도 화해가 일어나는 것이 보편적이다.